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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정의를 객관화할 수 있을까

가치의 정의를 객관화할 수 있을까.       


   

1. 어머니의 두루마리 휴지  

   

모친이 요양원에서 지내신지가 1년 6개월이 지났다.

저 작년 11월에 장이 꼬여 큰 수술을 하셨다. 그 후로 집에서는 생활이 어려워져 요양원에서 지내신다.    

 

95세가 되셨지만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시고 식사도 잘 하신다.

물론 연세가 있어 치매 증상은 어쩔 수 없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면회를 가지만 갈 때마다 “저녁에 집에서 보면 되지 뭐 하러 왔노” 

“지금 같이 집에 갈까?” 하신다.

“바로 일하러 가야 해요. 저녁에 봬요” 하면 알았다 하시고 바쁜데 얼른 가라고 자꾸 떠미신다.     


두루마리 휴지를 모으시는 게 취미다. 6칸 정도씩 잘라 곱게 접어 두신다. 주머니마다 몇 뭉치씩 넣어 두고 또 검정 비닐봉투에 따로 모아 침대 밑에 귀하게 모셔둔다.

가끔 면회 때 모아둔 비닐봉지를 갖고 내려오신다. 

여기 두면 누가 가져갈지 모르니 집에 갖다 두라고 맡기신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지를 하나씩 꺼내 주시기도 한다. 마치 옛날 이불 밑에 넣어 두었던 지폐를 꺼내 주듯 그런 마음이다. 환하게 웃으시면서 귀한 걸 줄 수 있어 행복해하시는 표정이다.     


어머니에게 휴지는 어려웠던 시절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도 마당에 있던 화장실에 휴지가 있을 자리에 신문지가 있었다.

간혹 선반 위에 갑 티슈가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장식품이다. 뽑아 쓰는 경우는 드물다. 두루마리 휴지만 하더라도 접어서 몇 번을 재활용해 써야 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 앞에서는 휴지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 면회하는 동안 받은 휴지를 테이블에 곱게 올려 두었다가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나온다. 고객의 명함을 받았을 때 하던 행동과 같다.

그리 생각하시니 동일하게 그리 생각해 드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2. 나의 ‘휴지’는 무엇일까?     


휴지와 더불어 우리 인생에 필요한 것들은 많다.

‘돈, 건강, 권력, 인정, 관계....’

수단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나의 집착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돈’얘기에는 관심 없는 것처럼 세련되게 행동하지만 돈만 한 관심사가 또 없다. 고상한 척할수록 표출되지 못한 내적 욕망은 더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화장실에 갈 적마다 휴지를 한 묶음 훔쳐 쟁여오는 것처럼, 목적을 잃은 열심은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하게 한다.     


수단적 가치가 본질이라도 되는 양 의심 없이 돈을 모으고 목표를 정하고 무작정 달리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허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높이 오를수록 추락의 골이 깊다. 틈이 느껴지지 않게 더 뾰족하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은 사색은 실패의 정당성을 위한 변명만 만들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3. 본질적 가치는 어디에 있나?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여러 책이 얘기하고 성인들이 알려주지만 깨달음은 잠시뿐이다. 나는 다시 나로 돌아와, 나대로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아무리 말려도 휴지 모으기를 멈출 생각이 없다. 그것이 잘못이 아니듯 나의 나대로의 삶이 잘못일 리도 없다.

어머니는 그 행위에 대해 의심이 없으시다. 하지만 나는 매번 고민 속에서 자각한다. 

본질적 가치를 꿈꿀수록 위선의 타래 속에서 길을 잃는다.     


언젠가 나만의 답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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