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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

낯선 여행지         


 

아침부터 뜬금없이 청도 운문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동곡 오일장을 만나 잠시 어슬렁거리고 인근 다방에서 물커피 대신 6000원 하는 쌍화차를 마셨다. 벽에 붙은 메뉴 중 제일 비싼 것이다. 계란 노른자를 넣을까 묻길래 얼떨결에 그냥 달라고 했다. 넣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운문댐을 기준으로 운문산 둘레길이 있다. 3개의 코스로 운문산을 한 바퀴 돌게 되어 있다. 전체 25.45㎞, 하루 만에 돌아 버리기는 아깝고 천천히 이틀이나 하루 한 코스씩 해서 사흘쯤이면 좋겠다 싶다.     


어제저녁만 해도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특별히 바다가 보고 싶어서는 아니다. 익숙한 곳이기도 하고 고민할 필요 없이 쉽게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청도로 갔고, 다음에 또 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여행을 하지만 새로운 곳보다는 갔던 곳을 가는 편이다. 목적지가 여행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패턴이 되었는지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왜 자꾸 갔던 곳만 가느냐고 물었다.

이제 일본은 가지 않겠다고도 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다낭, 마닐라 등등 가지 않겠다는 리스트가 늘고 있다.

그래도 조금씩 다른 곳, 더 깊은 곳을 가지 않느냐고..  해 보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늘 같은 곳만 여행한다고 느껴지나 보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막막함이 끝없는 파도처럼 밀려올 때 도쿄 이타바시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처음 갔던 해외여행이었다.

새벽에 나가 신주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케부쿠로역 어디에서 일본어 학원을 다니고 수업이 끝나면 야마노테 순환선을 차례로 한 정거장씩 내려 골목을 걸었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르게 다가서는 골목을 여행했다. 얘기 나눌 사람이 없으니 혼잣말이 늘었다. 난생처음 혼자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복잡한 생각에 휘둘릴 때마다 그 골목들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야마노테센의 역들을 걸어서 돌아 볼 계획을 세웠다. 언제 그런 생각을 시작했는지 잊었지만 걷기 여행 리스트에는 항상 적혀있다.

어쩌면 여행을 통해 그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거리

내게

말을 건다     


낯선 거리에 서면 분잡한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질문을 내게 던진다. 가 던지는 것이기도 하고, 낯선 거리가 물어오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은 찾지 못했지만 질문을 잊지 않기 위해 떠난다. 사십이면 한여름은 지났다고 생각했고, 오십이면 꿈꾸는 일은 끝났다고 여겼다. 그러다 흰머리 속에 숨겨 두었던 그 이후의 세월이 네게 묻는다.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나지 않으면 더 이상 호기심이나 질문이 없는 인생이 되어 버릴 것이라 경고한다.

잘 살아야지. 단순히 오래 사는 인생은 허망한 재앙일 뿐이다.     


자주 가던 곳이든, 낯선 곳이든 나는 늘 새롭게 여행한다.

나의 여행 계획은 나를 만나기 위한 기대로 설렌다.          


#우리가중년을오해했다

#다섯시의남자

#낯선거리

#낯선거리내게말을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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