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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Aug 11. 2021

첫 산모교실에서 배운 단 한 가지

'세상에 없던 산모교실' 왜 하냐면요


3년 전,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을 위한 웹진 <마더티브>를 만들며 '산모교실'을 꼭 해보자고 했다. 우리가 '엄마'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불합리와 차별 등은 아이를 낳기 전부터 꼭 알아야 한다고. 기저귀 잘 고르는 것보다 이런 걸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산모교실'이었을까. 충격과 허무에 휩싸였던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죄책감이 이끈 그곳엔...


처음 보는 낯선 이들과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내키지 않는 레크리에이션에 어색하게 장단을 맞춘다. 시간을 허비한듯한 직감에 경품이라도 받아야겠다며 내 경품 당첨 번호가 불리길 2시간 내내 기다렸지만 이마저도 허탕이다. 돌아서니 남은 게 없었던 홍보성 짙은 산모교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6년 전, 첫째 아이 출산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았던 산모교실은 충격과 허무 그 자체였다. 밀도 있는 시간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무의미할 줄이야. 무겁고, 이상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던 그날.


6년 전, 충격과 허무의 현장


당시엔 전문가의 출산∙육아 정보와 고가의 경품을 얻을 수 있는 장이었던 산모교실이 꽤나 붐이었다. 맘카페를 보고 있노라면 출산 전 꼭 한 번은 다녀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내키진 않았다. 마케팅 목적의 행사임이 뻔한데 뭘 그렇게 까지...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는 죄책감이었다. 제왕절개 수술 일주일 전까지 일하느라 태교도, 출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결국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아무리 홍보, 마케팅 목적이더라도 기업에서 진행하는 큰 규모의 워크숍이니 정제된 출산, 육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결말은 처참했다.


태아 보험, 사진 스튜디오, 제대혈 보관, 탯줄 도장 등...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포진해 있는 업체 홍보 부스들을 본 순간부터 '괜히 왔다' 후회가 밀려왔다. 레크리에이션과 경품 추첨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식순을 받았을 때도 곧바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마지막에 예정돼있던 산부인과 의사 특강만을 기다리며 버텼다.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의사가 준비한 내용을 모두 듣지 못했고, 질의응답 시간도 생략됐다. 궁금한 점은 의사에게 진료받으면서 물어보라던 진행자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하...


예상을 뛰어넘는 허술함에 충격이 컸고 '이용 당했다'는 마음에 허무가 밀려왔다. 대체 이걸 왜 '산모 교실'이라고 말하는 거지?


받자마자 뛰쳐나가고 싶었던 산모교실 식순


그래도 딱 하나, 남은 것


그 와중에 유일하게 도움 됐고, 그래서 지금도 기억하는 한 가지가 있다. 모두가 기다렸지만 시간에 쫓겨 찰나처럼 끝나고 말았던 산부인과 의사 특강이었다.


특강이 기억에 남는 건 전문가 강의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사서 고생하지 말라"는 강연 기조 때문이었다. 의사는 출산 과정을 아주 진솔하게, 현실적으로, 객관적이며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특히 "브이백(VBAC, 예전에 제왕절개했던 산모가 자연분만을 시도하는 것)을 시도하다 제왕절개 수술 부위가 잘못된 산모가 있었다"며 "제왕절개 분만과 자연분만에 큰 차이가 없으니 제발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이가 똑바로 있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했던 내 약간의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조언의 탈을 쓴 불편한 간섭을 많이 받았다. 아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고, '왜?'라는 질문이 통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이런 간섭은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더 심해졌다)


"무리하지 말라", "내 몸을 보살펴라", "뭘 해도 괜찮다" 아이도 중요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를 '나'를 위한 이런 말들이야말로 진짜 조언이었다. 이런 말들로 채워진 '산모교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하는 다양한 엄마의 삶


그래서 <마더티브>를 시작했을 때 '산모교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것 같다. 모성신화와 여성 차별, 여성 혐오 등에 맞서고 '엄마'로서 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행동해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다 보니 충격과 허무로 씁쓸하게 기억되는 첫 산모교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전지적 엄마 시점에서 쓴 엄마 발달 백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에서 우리는 아이 아닌 엄마의 이야기를 썼다. 임신∙출산∙육아의 책임은 모두 지면서 '엄마'이기 때문에 삭제됐던 엄마의 서사를 더 크게 말했다.


임신 준비, 태교, 자연분만, 모유 수유, 조리원, 어린이집, 육아휴직, 남편과의 반반 육아, 친정엄마 등 초보 엄마들이 고민하는 키워드에 대해 마더티브 에디터들 현실 조언을 담았다. 태교 일기 대신 배우자와 쓰는 교환일기를 제안했고, 근거 없는 엄마의 죄책감을 회고했으며, 엄마가 된 이유를 되짚어보고 엄마 이후의 삶을 상상했던 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3인의 에디터가 다양한 임신∙출산∙육아 서사를 풀어낸 건 엄마에게도 여러 삶의 모습이 있고, 다양한 서사를 레퍼런스 삼아 내 삶도 내가 스스로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출간한 일하는 보통 엄마 10인을 심층 인터뷰한 책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기획 취지도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쓰다 보니 '이런 걸 임신했을 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왜 이런 걸 이제야 봤는지 모르겠다"며 "더 빨리 알았다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는 피드백도 수없이 받았다. 그럴 때도 산모교실이 떠올랐다.


홍보 일색, 무의미한 레크리에이션으로 채워지는 게 아닌 엄마로서의 내 삶을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진짜 출산 준비'를 하는 산모 교실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 될 남는 게 많은. 그리고 그걸 <마더티브>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이 남는 '세상에 없던 산모 교실'

시작합니다


<마더티브>를 시작하고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해온 3년. 그동안 우린 엄마인 우리뿐 아니라 많은 엄마들을 만나 다양한 엄마 서사를 발굴하고 기록했다.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고민하는 여성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창고살롱'도 만들었다.


3년 동안 만난 우리 스스로와 다양한 엄마들의 삶을 쌓고 보니 이제는 뒤에 올 엄마들이 나를 위한 출산 준비를 하며 덜 헤맬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기로 했다. 나를 지키는 출산 준비 온라인 워크숍 ‘세상에 없던 산모 교실'.



'세상에 없던 산모교실'에서는 모유수유 잘 하는 법, 기저귀 잘 고르는 법 같은 걸 가르쳐 주진 않지만 임신 과정을 겪고 있는 여성 동료들과 만나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며 '엄마'가 된 나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설계해보려고 한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임신한 나의 몸과 마음을 살피며 나를 돌보고, 함께 아이를 양육할 배우자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평등한 가족상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6년 전 그때, '세상에 없던 산모 교실'을 만났다면 엄마가 된 이후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래라, 저래라'하는 간섭에 나를 끼워 맞추고, '엄마'이기 때문에 무조건 참으며 답답해하는 대신 내 커리어, 내 가족이 나아갈 방향을 그리는 건강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하지 못했지만 뒤에 올 엄마들에게는 꼭 나누고 싶은 기회. 나를 지키는 출산 준비 온라인 워크숍 '세상에 없던 산모교실'을 시작한다.




'세상에 없던 산모교실' 자세한 일정과 커리큘럼은 <마더티브> 브런치에서 확인하세요. :)


'세상에 없던 산모교실' 신청은 여기에서.


궁금한 점은 댓글이나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DM으로 언제든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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