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성 Oct 08. 2021

단 한 명이라도 날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연결'이 주는 위로와 시작의 힘


오래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세상 왜 사나' 싶을 만큼 괴로워 뭘 해도 잊히지 않거나 '이래서 사는구나' 살아 있음을 느낄 만큼 좋아 기억되는 날. 그날은 후자였다.


예정에 없었던 갑작스러운 만남이었지만 영혼이 울리는 진한 대화를 나눈 날이었다.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저녁 시간 내내 나눴던 이야기가 맴돌아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대화를 정성껏 복기하고 희망적인 앞날을 상상했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안다는

눈빛을 마주했을 때


대체로 잘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상처와 울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하고 눈에 띄게 드문 경험이라 그 시기를 같이 통과했던 소수의 동료 외엔 무엇이 정말 잘못된 것인지, 무엇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가 났는지 완전한 이해와 공감을 받기 어려웠다. 구성원 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조직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그랬다.


그대로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있다. 우선 오랜 시간 많은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 왔다. 결정적인 사건은 책임자와 문제를 일으킨 자가 달랐고, 문제를 일으킨 자는 "잘못은 했지만 악의는 없었다"고 변명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희소한 경험은 본질이 왜곡되기 쉽고, 공감보다는 “예민하게 군다"는 반감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에게 꼭 같은 경험이 있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만큼 나와 같은 것이었고, 우린 함께 분노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대화를 경험했다. 자꾸 속으로만 파고들던 상처를 마침내 드러내고 이해와 공감이라는 빨간약을 톡톡 발랐다.


같은 것에 분노하기란 쉬우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표면적으로는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일이라도 분노가 시작되고 끝나는 사이의 작은 결까지 모두가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 결 하나하나를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안다는 눈빛을 마주하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일 만큼 기뻤다.



김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더랬다



울퉁불퉁 복잡한 내 서사를

이해하는 단 한 명이라도


정해진 틀에 맞게 살지 않아서, 남들이 정해놓은 쉬운 길로 가지 않아서… 그래서 고통받는 걸까 자책할 때, 울퉁불퉁하고 복잡하고 애매한 길이라 잘못 온 건 아닐까 후회되고 걱정될 때.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온 길을 이해해 주고 내가 받은 상처를 공감해 주는 동료를 만났다는 건 큰 위안과 격려였다.


그저 행운이라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만나기까지 서로의 치열한 고군분투가 있었고, 나만의 길을 나아가면서도 연결되기 위해 애썼던 지난날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 커뮤니티 '창고살롱'을 운영하며 비슷한 경험을 종종 했다. '창고살롱'을 찾은 다양한 여성들은 자기만의 서사가 있었다. 하나같이 굴곡 많고 복잡했지만 서로에게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서사와 인물은 다양했지만 여성으로서 유사한 변곡점을 경험한 것, 또 어딘가 비슷한 구석의 취향과 성향이 있는 점이 작용했다. 운영자인 나 또한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깨닫고 위로받은 순간들이 있었고, 그 결이 조금 더 비슷한 동료와 더 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창고살롱에서 연결된 동료들은 내가 경험한 것처럼 서로에게 위안과 격려가 되었다. 나아가 서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 무언가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교환일기, 그림 전시, 브랜드 콜라보, 워크숍 기획, 북토크, 로컬 강좌 등.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받고, 위안과 격려를 넘어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이라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격려하고 지지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였다.



창고살롱 멤버들의 연결과 시도를 보고 있으면, 영화 <바그다드 카페> 브렌다와 야스민의 마술쇼가 떠오른다.



'타인은 지옥'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연결'이 필요한 이유


'사람 댕댕이'라는 ENFJ라지만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도 공감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나서기 좋아하는 외향적 기질도 있지만 눈치를 많이 보고 여러 사람보다는 한두 사람과 깊이 관계 맺는 내향적인 속마음도 갖고 있으므로. 연결을 원하면서도 연결이 꺼려지는 이중적인 마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연결'되고자 커뮤니티 서비스를 창업했다. 습관처럼 냉소하지만 그래서 더 연결이 필요한 나였다. 상처와 울분을 혼자 끌어안고 억울한 마음만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팠던 간절함이 있었다. 단념한 척하면서도 어쩌면 나를 이해하는 그리고 내가 이해해 줄 수 있는 동료를 만나 냉소라는 가면은 벗고 인간애 어린 열정을 키우고 싶었다.


'연결'의 장단점을 세심하게 재가며 커뮤니티 서비스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지만 창고살롱에서 자연스레 벌어지는 긍정적인 '연결'이 기쁠 따름이다. 멤버들 간의 연결도 충분히 기쁘지만 나 또한 그 수혜의 한가운데 있어 벅차다.


단 한 명일지라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곳은 삶의 어떤 시작점이지 않을까. 그날의 대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날 나는 내 마음속 상처가 있던 자리에 씨앗 몇 개를 심었다. 정성스레 돌보고 키워서 다른 이의 마음에 나눠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창고살롱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또 누구와 연결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더 기대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