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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May 22. 2024

구하라는 용감하고 멋진 여성이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센텐스로그] ‘버닝썬 게이트’ 재조명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BBC 다큐멘터리 캡쳐 이미지



영국 BBC에서 ‘버닝썬 게이트’를 재조명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영상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로 한국 사회가 다시 들썩인다.


기사로 먼저 취재 내용을 접했는데 활자만으로도 다시 전해지는 역겨움에 치를 떨었다. 영상을 볼 자신이 없어 공개된 지 하루를 넘긴 끝에야 마음을 다잡고 꾸역꾸역 1초도 빠짐없이 보았다. 그것이 이 사건을 밝히기 위해 애쓰고 희생한 이들 그리고 피해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승리(본명 이승현), 정준영, 최종훈. BBC 영상은 성범죄 가해자들의 추악한 범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면 볼수록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의 모습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더군다나 대중 특히 여성의 관심으로 부와 명예를 이뤘던 이들이 팬들을 완전히 외면 아니 배신한 채 많은 여성을 무력화시키고 모욕하고 유린할 수 있는지. 도저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동물 취급도 아깝다.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일 뿐이다.


BBC 다큐멘터리 캡쳐 이미지


BBC는 ‘버닝썬 게이트’가 어떻게 언론에서 터져 나와 수사가 시작되었는지 가장 최초의 시점부터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여성들에 주목한다. ’버닝썬 게이트’가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가해자들이 법의 심판대에 서기까지 반향을 일으킨 두 번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를 보도한 이들은 모두 여성 기자였다. 더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각 보도 당시 임신한 상태였다.


2016년 9월 23일 박효실 스포츠서울 기자는 정준영이 여자친구로부터 성관계 불법 촬영 성범죄 이른바 ‘몰래카메라’로 피소된 사실을 최초 보도한다. 당시 정준영 측은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휴대폰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고 사설 포렌식 업체에 맡겼다. 경찰은 보고서만을 요청하고 정작 휴대폰은 조사하지 않았다. 정준영의 변호사는 포렌식 업체에 ‘복원 불가’를 압박했다. 피해자는 “증거가 불충분하면 오히려 무고죄로 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에 끝내 고소를 취하하고, ‘억울한 피해자’ 정준영은 다시 방송에 복귀한다.


BBC 다큐멘터리 캡쳐 이미지


박효실 기자는 이 보도로 되려 큰 상처를 입었다. ‘악마적인 미디어’의 선봉에 선 기레기가 되어 온갖 괴롭힘에 시달렸다. 정준영 팬들과 ‘반페미니스트’를 주장하는 남성들은 악성 댓글과 이메일은 물론 새벽 내내 전화를 걸거나 메신저를 통해 음란 사진이나 욕설을 보내기도 했다. 이때의 큰 충격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박효실 기자는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제가 관둔다면 그들이 너무 기뻐할 것 같아서
차마 관둘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제 뒤에 많은 여기자들이
또 동일한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저는 ‘이 시간을 버텨내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묻혀버릴 줄만 알았던 정준영의 성범죄는 ‘버닝썬 게이트’라는 폭풍이 되어 돌아온다. 익명의 제보자가 사설 포렌식 업체에서 복구한 정준영의 휴대폰 자료가 담긴 USB를 방정현 변호사 사무실 우편함에 두고 갔다. 방정현 변호사는 언론 보도와 공론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강경윤 SBS연예뉴스 기자와 협업을 도모했다. 강경윤 기자가 가해자들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아픈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로 USB에는 추악한 범죄의 민낯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BBC 다큐멘터리 캡쳐 이미지


2019년 2월 26일 SBS는 성매매 알선 등 승리에 관한 내용을 필두로 기사를 내기로 결정, 강경윤 기자는 이를 보도한다. 승리는 당시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으로 클럽 영업을 종료한 직후였다. 기사의 파장은 컸고 승리는 곧바로 경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정준영과 최종훈. 유명인 가해자들의 범죄를 밝히기 위한 후속 보도를 위해서는 더 확실한 핵심 증거가 필요했다. 그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경찰총장’이 누구인지 밝혀야 했지만 가장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그때, 구하라가 등장해 핵심 증거를 밝히는 결정적인 조력자가 된다.


구하라는 강경윤 기자에게 도와드리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 구하라는 최종훈과 연습생 떄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승리, 정준영, 최종훈의 휴대폰 메신저에 ‘이상한 것‘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경찰총장’의 진위 여부,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강경윤 기자의 요청에 구하라는 최종훈을 설득해 강경윤 기자에게 이 내용에 대해 얘기하도록 했다.


구하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아 가해자들의 배후에 있던 경찰 윤규근의 존재를 밝혀낸 강경윤 기자는 신속하게 후속 보도를 이어갔고 정준영, 최종훈의 성범죄 수사도 곧바로 진행됐다. 구하라는 당시 강경윤 기자를 도우며 ‘저도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잖아요’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했다. 강경윤 기자는 구하라를 “굉장히 용기 있는 여성”이라고 말한다.


강경윤 기자는 해야 할 일을 했지만 ‘페미년’ ‘임신한 페미년’ ‘좌파 페미년’이라는 악의적인 수식어를 3년 동안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악플로 고통받던 구하라의 절친한 연예인 설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던 구하라는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친구의 뒤를 따랐다.


BBC 다큐멘터리에는 클럽 버닝썬에서 마신 술에 정신을 잃고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울음을 꾹꾹 삼키면서도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힘든데 그래도 더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얘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래야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강경윤 기자는 구하라가 설리의 죽음 후 위태로운 모습을 보일 때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하라씨는 너무 너무
용감한 여성이고, 멋있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구하라는 "괜찮다" "열심히 살겠다"고 답장했지만 지금 그는 세상에 없다. 본인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구한 용감한 일들을 해내고도.


지금도 ‘불법 촬영’ ’성폭행‘ ’교제 폭행 사망‘ ‘n번방'을 검색하면 거의 매일 끊임없이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도처에 성범죄가 도사리는 오늘을 사는 모든 구하라가 용감하고 멋진 여성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쓰레기들보다 오래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BBC 다큐멘터리 캡쳐 이미지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 인물 승리(본명 이승현)는 성매매 알선, 성매매,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상습도박, 외국환거래법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 횡령,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폭행교사 혐의 등 9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2022년 승리에게 징역 1년 6개월형을 확정했다. 승리는 형을 채운 뒤 2023년 2월 출소해 외국에서 여전히 사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영은 2016년 1월 강원도 홍천, 같은 해 3월 대구에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2015년 말부터 수개월 동안 불법 촬영 영상을 여러 차례 공유한 혐의 등으로 2019년 3월 구속기소됐다. 정준영은 항소 끝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2024년 3월 만기 출소했다.


'단톡방' 멤버 최종훈은 집단 성폭행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살고 지난 2021년 11월 8일 만기 출소했다. 올해 1월 일본에서 온라인 팬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인사를 전하는 등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written by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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