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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22. 2024

전문가가 될 생각 없어요

[센텐스로그#7]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한국의 한 테마파크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입사한 당시 조립식 목조 롤러코스터를 만들려고 하던 찰나였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런 특수한 롤러코스터를 시공한 경험이 없어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목조 롤러코스터만" 수십 년 만든 미국 전문가를 한국에 모셔 왔고 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현장 통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체류하는 데 불편함 없도록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며 여권이나 기타 필요 서류를 챙기는 업무도 동시에 맡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출입국 사무소에 증빙자료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 중 하나로 껴있던 전문가의 급여명세서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숫자 뒤에 붙은 0자리 숫자를 보며 꽤 놀랐고 그때 알게 되었어요. 어떠한 분야에 매우 뾰족한 전문가가 되면 급여명세서상의 숫자에 0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요.


이후 중간 지원조직 성격의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중간 지원조직이니 아무래도 지원금 대상과 금액을 선정할 때, 소위 전문가를 모셔 심사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당시 저를 비롯한 모든 직원의 업무강도가 강했는데요.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원장보고, 시보고, 도보고 내용의 핵심은 하나지만 다른 분량으로 다른 양식에 써 내려가며 오장육부에서 끌어올린 한숨을 꾹 내리참았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왜 이런식으로 일해야하는지 질문을 품지 않고 해왔던 그대로 해야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도내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 총괄대행사 입찰 심사에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대행사 직원이 발표를 하면 심사위원들은 질문을 하는 방식이었죠. 그 과정 중 한 중년의 여성 심사위원의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왜?” 라는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어떠한 분야에 경험과 기술이 깊고 분명하면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왜?' 라고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구나, 놀랍고 신기했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과거 다양한 일 경험을 하며 만난 수많은 전문가처럼 되고 싶었던 저는 결국 전문가가 되지 못했어요. 여기서 전문가란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지닌 사람을 뜻합니다. 통상 한 가지 일을 수십 년 해왔다면 그 분야 장인이나 혹은 전문가로 불리기도 하죠. 늘 호기심을 나침반 삼아 업종과 업태가 모두 다른 회사로 이직하다 보니 오래전 제가 꿈꿨던 전문가가 아닌 매우 얕고 넓은 영역을 커버하는 일당백이 되었습니다. 




사회초년생 시절에 원했던 깊은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와 현재 일당백으로서의 저의 모습은 크게 달랐습니다. 당시의 저는 오늘날의 제가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요. 그런데도 현재의 제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나의 의견을 타인이 존중해주고 또 높은 수입을 얻는 전문가가 여전히 부럽지만, 이제는 그것이 저의 고유한 성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이게 한순간에 내려진 결정이 아닌, 10번이 넘는 이직을 끝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요. 십수 년 동안 열 번 정도 시행착오 하며 알게 된 사실이니 정신 승리가 아님은 확실하고요.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면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이런 질문을 품고 있으니 최근 우연히 시청한 <사고실험>라는 유튜브 채널의 인터뷰 영상에서 응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영상에서는 <한국요약금지>의 저자 콜린 마샬님 출연했고요. 영상이 시작하자마자 그는 한국에서 1년 만에 영어를 마스터하려는 사람들에게 원어민인 자신도 아직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죠. 그 모습이 제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전문가가 될 생각 없어요. 
내가 더 깊게 즐기기 위해서 배워요
한국을 판단할 수 있게 되기보다, 
한국을 더 잘 즐기기 위해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그는 영상에서 와인을 즐기는 ‘와인 코노셔 (Wine Connoisseur)’ 처럼 한국을 즐기는 ‘한국 코노셔 (Korea Connoisseur)’가 되고 싶다고 덧붙입니다. 


아이 같은 호기심을 나침반 삼아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저 같은 사람은 전문가보다는 늘 배우고 감상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그간 제가 왜 더 이상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꼈는지, 그리고 또 전문가가 아니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정리할 수 있었어요. 물론 시간이 흐르며 또다시 저의 사고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겠죠. 그때가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제 주위에 존재하는 사람과 관계 그리고 만남 마음이 끌리는 사물과 콘텐츠를 마음껏 즐겨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룰루랄라김치치즈도 이런 저의 고유한 성질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불어 콜린 마샬님의 인터뷰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언어 공부에 대한 욕구가 뿜뿜 나오실 수도 있는데요. 관련하여 최근 언어 학습과 관련하여 재밌게 읽은 두 권의 책을 함께 공유해 드려요! 



written by 일당백 룰루


책, 게릴라 러닝, 여러 우물을 파는 도파민 학습법 사러가기
� 책, 단단한 영어 공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사러가기
콜린 마샬님이 출연한 <사고실험> 보러가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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