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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Nov 23. 2019

인도 사막에서 폭풍우를 만나다 (상)

사막에서 수재민이 되다

※ 통신사정이 불량해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0.
 사막에서 별을 보며 잠에 들었다.
 얼굴에 뭐가 떨어져 잠에서 깼다.
 비가 온다.

1.

  난 사막을 좋아한다.

 내가 서있는 곳부터 지평선까지 온통 황금빛 모래로 가득찬 풍경을 생각해보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가본 적도 없는 중동뽕이 있는 것도 사막의 이미지 때문이다. 이런 나의 마음에 기름을 부은 시가 있었으니, 유치환의 "생명의 서"다. 내리쬐는 햇볕과 모든 생명이 사멸한 모래, 그 속에서 나의 생명과 마주한다는 내용의 시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사막을 걷다보면 삶에 대한 철학을 얻을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 환상인걸 알지만 어디 마음이란게 이성적으로만 움직이나? 사막에 대한 향수는 짙어져 갔다.


이 시를 보면 사막을 걷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나? 나만 그런가?

 그래서 도착한 곳이 인도 라자스탄의 자이살메르(Jaisalmer)다. 자이살메르는 사막의 도시다. 인도 서북부 타르 사막의 가운데에 있다. 옛날부터 가까이는 파키스탄, 멀리는 페르시아와 중동까지 무역을 다니던 대상(caravan) 행렬이 모이는 마을이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돌고, 돈이 돌면 마을이 커지는 법. 교역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자이살메르도 커졌었다. 하지만 배나 자동차 같은 운송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대상은 쇠퇴했다. 발이 여덟개 달린 낙타나 짐을 두배 들수 있는 낙타를 만들순 없었으니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이살메르도 영광을 잃었다.

자이살메르 전경. 마을 중심에 요새가 있고, 요새 주변으로 시가지가 펼쳐져있다.


 그런 자이살메르에 다시 활력이 생겼다. 관광업계가 '낙타 사파리'라는 관광상품을 만들면서였다. 마을에서 1시간 차를 타고 먼 사막에 들어가서, 낙타를 한 시간 정도 타고, 사막에서 하룻밤을 잔 뒤에 돌아오는 코스다. 이 상품이 유명해지며 관광객들이 자이살메르를 찾기 시작했다. 그거말곤 정말 볼게 없는 마을이다. 호텔주인들도 이를 아니까 싼 값의 방으로 고객을 유혹한 뒤 이익이 많이 남는 낙타 사파리를 고객에게 제안한다. 호텔 호객꾼들이 많다고 들어 마음의 준비를 했다.



2.
 자이살메르에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던 길, 릭샤가 아닌 웬 지프차가 내 옆을 따라왔다.
 "숙소가 어디에요?"
 "이쪽으로 한 1km 정도 걸어야 된대요."
 "타요. 같은 방향이니까 태워줄게요."
 모르는 사람 차타고 가지 말랬는데, 슬쩍 차 안을 보니 유럽인 여행자들도 있어서 믿어봤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사람이에요."
 "아, 형님! 안녕하세요?"
 "네?"
 뭐야, 한국어를 왜 이렇게 잘하지? '사랑해요, 연예가중계' 마냥 어색한게 아니고 억양이 무척 자연스럽다.
 "한국어를 어떻게 할줄 아는 거에요?"
 "우리 호텔에 한국손님 많아요.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잘해요? 학교에서 배운적 있어요?"
 "없어요. 한두 마디씩 배웠어요."
 한국어를 못쓴 지가 꽤 되서 반가웠다. 원래 중간에 내리기로 했는데, 숙소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단다. 잠깐 이들의 호텔에 들러서 짜이(인도식 밀크티)도 한잔 얻어마셨다. 나보다 나이도 많아보이는 친구가 형님, 형님 소리하는게 느낌이 이상하지만 친절해서 좋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인 대상으로는 낙타 사파리 할인까지 해주더라. (대신 다른 나라 친구들에겐 얘기하지 않기로 한건 비밀.) 내게 베풀어준 친절이 고마워 여기서 낙타 사파리를 예약했다.

3.

요새 안 사원. 건물들이 햇빛을 받으면 금색이 된다. 그래서 골든시티라는 별명이 있다.


 다음날. 낙타 사파리는 오후 세시에 출발한다. 오전에 간단하게 마을 구경을 한뒤에 출발했다. 팀원은 현지인 가이드 수반과 브라질 커플인 리카르도& 줄리아나, 모로코인 사이드까지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다.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풍경이 황량해진다. 모래사막보단 황무지에 가까운 느낌이다. 1시간을 달려 차에서 내리면 낙타가 우릴 기다린다.

낙타 안녕?
불심검문 받아도 할말없는 수상한 비주얼

 낙타는 승차감(?)이 좋지 않다. 일어서는 것부터 문제다. 서있는 상태로 사람이 올라타는 말과 달리, 낙타는 키가 너무 크기 때문에 앉은 자세에서 올라탄다. 사람이 타고 나면 낙타가 일어난다. 이때 뒷다리를 먼저 펴고 앞다리를 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쏠린다. 걸을 때도 문제다. 낙타의 등은 평평하지가 않고 앞뒤로 좁아서 안장이 편하지가 않다. 등자(안장에 달린 발받침대)가 없어서 발로 몸을 지탱할 수가 없다. 엉덩이를 밀착시키자니 낙타가 걷는 리듬에 따라 엉덩이와 허리에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몸에 전해지는 충격을 줄이려고 다리를 오므려 낙타의 몸통에 고정시키면 이내 허벅지 안쪽이 땡긴다. 10분 만에 왜 말이 탈것의 대명사가 됐는지 알겠더라. 또 말을 탈때는 내 말을 내가 유도해서 달린다는 즐거움이 있는데 낙타는 행렬 안에서만 걸으니 심심했다. 사막의 뙤약볕 아래에서 낙타를 타는 경험은 특별지만 낭만적이기만 하진 않다. 수반은 낙타 위에서 유목민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수반이 부르는 사막의 노래를 들으며 사막을 횡단한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별건 없고 간이침대 몇개를 나무에 쇠사슬로 묶어놨다. 이 침대들을 모래사막 위에 던져놓으면 잠자리 완성이다. 모래사막이지만 비가 조금씩은 내리는지 작은 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라있다. 수반이 장작으로 쓸 나뭇가지를 주워와달라 한다. 주변을 돌며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고 죽은 나무를 꺾는데, 어찌나 잘 말랐는지 편의점 나무젓가락마냥 툭 부러진다.

 짐을 정리하자마자 수반은 요리를 한다. 큰돌 몇개를 괴어 냄비를 올리고 폐지를 불쏘시개로 장작에 불을 붙인다. 화력이 일정하지 않으니 물이든 기름이든 끓는데 한세월이다. 저녁 메뉴는 파코라(인도식 야채튀김), 두 종류의 커리, 짜파티(인도식 빵), 냄비밥, 튀긴 과자다. 스토브(?)도 하나고, 도마도 없고, 싱크대도 없는 환경이니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하나둘 요리가 완성된다. 도마도 없이 양파를 왼손에 쥔채 장난감 같은 칼로 칼질을 하는게 경이롭다. 같이 먹자고 말해도 수반은 요리가 남았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사막의 요리사. 아무것도 없는데서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4.

 깊은 사막이 아니어서 그런가 사막은 그렇게 쓸쓸하진 않다. 악기를 든 유목민들이 와서 간단한 공연을 하고,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개가 모래언덕을 거닌다. 그러는 동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다. 살면서 많은 석양을 봤지만, 이토록 불타오르는 태양은 처음봤다. 곱디고운 모래를 밟으며 석양을 바라보니 사막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어디서 온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댕댕이. 떠돌이 개인것 같다.
사막의 석양은, 내가 여태까지 본 어떤 석양보다도 선명하게 불타올랐다.

 저녁 일곱시면 사막은 완전한 어둠에 휩싸인다. 전기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곳이니 어두워지면 별을 구경하면서 떠드는 일밖에는 할게 없다. 사막의 밤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부르니 다른 세계에 와있는 느낌이다. 비록 보름달과 구름 때문에 별이 쏟아지진 않았지만, 손을 뻗어 달을 가리면 별이 잘보였다. 사막의 하늘을 보며 잠을 잘수 있다니. 꿈같은 풍경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나는 그때, 별빛을 가린 구름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인도 사막에서 폭풍우를 만나다(하)"에요. 비가 안온다던 사막에서 모래폭풍도 아니고 폭풍우라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통신사정상 12월 2일 화요일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


※ 이미지 출처 (출처 생략 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By Katerina Kerd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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