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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Jan 02. 2020

내가 인도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 (중)

페미니즘이 필요한 시간

※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greeda/39)


5.두번째, 여성인권

 지금도 기억난다. 델리에 도착한 다음날, 레드포트(Red Fort)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탔다. 이미 사람들로 미어 터지는데도 사람들이 더 밀고 들어온다. 하다하다 창밖에 매달린 채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인크레더블 인디아!'를 속으로 외쳤다. 그때 한가지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거의 100명은 되어보이는 버스 승객 중에 여자가 없다. 단 한 명도.


뭄바이의 열차 안. 가장 발전한 도시에서도 여성은 교통약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도인들은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걸 정말 좋아한다. 도대체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왜 그렇게 궁금한건가 싶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 식당 종업원은 그렇다 쳐도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들도 숱하게 물어본다. 그런데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 중에 여자는 거의 없다. 처음으로 모르는 인도 여자가 말을 걸어온건 그나마 도시화가 진행된 남인도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인도를 여행한지 1개월도 지난 시점이었다.


남학생 말고 여학생에게 둘러싸여 봤으면...


6.

 여자라고 다 자가용이 있는것도, 외국인이 궁금하지 않은 것도 아닐텐데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걸까. 여성인권이 낮기 때문이다. 성범죄의 표적이 될까봐, 함부로 말을 걸었다가 사회적 눈총을 받을까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인도는 2019년 여성인권지수에서 167개국 중 133위를 기록했다. 안좋다, 안좋다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인도에서 여성은 전통적으로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니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다. 집안일을 하니 교육이 필요없고,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립할 수 없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될 수가 없는거다. 세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인도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131개국 중 120위다. 인도 여성은 GDP의 17%를 기여했는데, 이는 세계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결혼지참금 문화, 다우리(Dowry)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인도는 독특하게도 결혼지참금을 여성이 부담해야 한다. 신랑집에서 사는데도 그렇다. 신랑 측에서 딸린 입이 하나 늘기 때문이란다. 문제는 이 지참금에 한도가 없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대강의 기준도 없어 신랑이 부르는게 값이다. 한도가 무한대다. 신부측은 이 지참금을 준비하느라 가세가 기울거나 아예 파산하는 경우가 있다. 딸은 어차피 남의 식구가 될 사람인데다 지참금까지 잡아먹으니 교육은 고사하고 애물단지 신세다. 그래서 인도는 여아살해로 악명이 높다. UN은 인도를 여자아이가 살아남기 가장 어려운 국가로 선언했다. 2012년 UN의 발표에 따르면 인도의 1~5세 여아는 같은 나이의 남아에 비해 75%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한해에 태어난 1,200만 명의 여아 중에 100만 명이 1년도 되기 전에 죽었다는 추산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인도의 성비, 특히 아동 성비는 크게 왜곡돼있다. 자료에서 볼수 있듯 중부 이상의 대부분 지역에서 여아 100명당 남아가 적게는 107명, 많게는 125명도 넘는 비정상적인 성비를 보인다. 자연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이다. 그 결과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여자보다 남자가 5천만 명이 더 많다. 


일부이긴 하지만 125가 넘어가는, 기적의 아동성비


7.

 이토록 성비가 깨져있으니 한가지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트렌스젠더에 대한 개방성이다. 인도 기차에서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를 봤다. 아름답지만 턱선이 묘하다. 뭔가 싶었던 이질감의 정체는 목소리를 듣자 선명해졌다. 그녀는 노란빛 사리(인도의 전통여성의상)를 입고 기차에 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구걸같은데, 그 눈빛이 다분히 유혹적이다. 신기하게도 그 유혹을 받는 남자들의 표정이 매우 개방적이다. 트랜스젠더가 많기로 유명한 태국보다도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마찬가지로 뭄바이에서도 사리를 입은 트랜스젠더를 봤는데, 옆에 있던 친구 아디티가 바로 '트랜스젠더 매춘부다'라고 귀뜸을 해줬다. 옷차림과 메이크업이 1단계 믿음을 주고, 매춘가를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란다. 신선했다. 난 인도가 성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인줄 알았는데. 하긴 푸시카르에서 만난 압둘과 얘기했을 때도 충격이었지. 얘기하던 중에 뜬금없이 게이와 잠자리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길래 깜짝 놀랐다. 맘 상하지 않게 완곡히 거절하고는 화살을 돌리고자 너는 어떻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트랜스젠더와 잠자리를 가진 썰을 풀더라. 한때 남자였던 사람인데 괜찮냐고 물으니 지금 모습만 마음에 들면 상관없단다. 참고로 그 잠자리는 혼자있던 자리가 아니라, 자기 친구들은 물론 상대 여성들도 여럿있던 자리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인도는 '제3의 성'도 법적으로 인정하고 트랜스젠더 국회의원도 있다.



8.

 물론트랜스젠더가 인정돼도 여권이 낮은건 변함없다. 그래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존재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제도가 구자라트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부부 재산의 명의를 아내의 것으로 등록하면 세금혜택을 준다. 구자라트는 인도 내에서도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문제가 정말 심각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안한 정책이다. 이전까지는 정부가 무슨 얘기를 해도 바뀌지 않던 분위기가 이 정책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여성이 이혼을 당해도 당장의 재산이 있으니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경제력이 핵심이다.


 불행히도 이런 개혁적인 조치들이 모든 주 정부에서 이뤄지는건 아니다. 여전히 인도의 여성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만 보내고 있다. 그 눈빛은 나를 괜스레 죄스럽게 만든다.


 리시케시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인도의 골목을 지나다 문이 열려있는 가정집을 봤다. 낮인데도 창문은 없고 조명은 어두운 탓에 집안은 어두침침했다. 그 안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도 그녀의 멍한 눈빛이 도저히 잊히지 않는다.


인구의 절반이 이런 눈빛을 하고 있는 나라라면, 난 사랑할 수 없다.


해맑은 아이의 미소는 언제까지 드리울 수 있을까.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내가 인도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하)"이에요.
 인도를 사링할 수 없는 마지막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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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Photo by Church of the Ki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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