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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Jan 22. 2020

인도에서 불법체류자 될뻔한 썰

아슬아슬 인도 탈출기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 인도여행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물어봐주세요. 다음 글에 답변해 드립니다!


0.

 평소와 다를게 없는 일상이었다. 그날 저녁까지는.


1.

 인도 남부, 케랄라(Kerala)의 주도인 트리밴드럼(Trivandrum)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구했다. 인도여행의 마지막 도시인데 운이 좋다. 호스트가 보내준 주소로 가니 아담한 주택이 하나 나온다. 호스트의 이름은 자야(Jaya), 대학교수다. 그의 집은 대학에서 제공해준 관사다. 마당에서는 코코넛 나무가 자라는 2층짜리 주택이다. 집에는 자야와 그의 친구의 아들인 가우탐(Gautam), 제자 레지타(Rejitha)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다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학교 측에서 식사를 제공해주는데, 손님이 왔다고 1인분 더 준비했단다. 환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열심히 먹었다.


 식사를 마쳤다. 바쁜 자야를 대신해 레지타가 시내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안 그래도 인도사회와 정치이슈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됐다. 심지어 그녀는 정치학 전공이다. 동물원,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내가 열심히 물어보니 그녀도 열과 성을 다해 대답해준다. 거의 구글이다.

오늘의 호스트, 자야(Jaya)
자야가 준비해준 밀즈(Meals). 남인도식 백반이다.

2.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처음엔 걷는 동안 엉덩이 고관절에서 약간의 뻐근함과 삐걱댐이 느껴지는 정도였다. 이런 적도 처음이었고, 걷는데 문제는 없어서 그냥 걸었다. 걷다보니 점점 심해져서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다 잠깐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일어나니, 왼쪽 고관절에서부터 왼다리로 찌릿한 통증이 전기처럼 퍼져나갔다. 순간 휘청했다. 왼발에 체중을 실을 수가 없다. 어깨동무로 부축을 받고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간신히 릭샤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릭샤를 내려서는 가우탐의 부축을 받았다. 사지멀쩡하게 집을 나간 애가 반병신이 되어 들어오니 자야도 놀란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데 낸들 아는가. 일단 침대에 엎어졌다.


 여기서 정말 기적같은 우연이 겹치는데, 바로 자야가 의대교수다. 비록 정신과 전공이지만 그래도 의사라 간단하게 진찰을 해준다. 몸을 돌려서 누우라는데 혼자서는 돌리지도 못했다. 사촌조카가 변신로봇 만지듯 내 몸을 이리저리 눌러도 보고 돌려도 보고는 말한다.

 "이거 디스크 터진거 같은데?"




3.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군대에서 행군할 때도 멀쩡하던 디스크가 왜 지금 터지냐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럼 이대로 여행은 끝나는건가? 이렇게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그림으로?

 "확실한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전문의인 내 친구한테 물어보게 너 걷는거 영상 좀 찍자."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일어나서 벽을 짚고 걸었다. 한발한발 내딛기가 겁난다. 걷는게 이렇게 겁이 나는 일이었나. 촬영하자마자 다시 침대에 누웠다. 찜질하는게 도움이 된대서 제공받은 찜질팩을 수능부적처럼 고관절에 찰싹 붙여놨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일단 쉬고, 필요하면 내일 진찰을 받든 검진을 받든 하자. 필요한거 있으면 가우탐이 도와줄거야."

자야에게 인사를 하고 쉬었다. 한숨 돌리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진짜 디스크면 어떡하지? 그럼 여행도 끝나는거 아닌가? 아직 못 가본 데가 많은데? 어떻게 여행을 이어간다고 해도 예전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가 있을까? 애매한 거리면 택시타는 대신 '너한텐 두 다리가 있잖아'라며 걷는 것도 못하게 되는거 아니야? 왜 더 의미있고 보람차게 여행하지 못하냐고 자책할게 아니라 무사하게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는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걸까."

 상황이 달라지니 이전까진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나, 완주할 수 있는걸까




4.

 다음날. 걷지를 못하니 잠에서 깨고도 침대에서 밍기적거렸다. 아침부터 어디로 사라졌나 했던 가우탐은 직접 만든 바나나쉐이크를 침대까지 가져다준다. 그러고는 날 먹이려고 소고기찜을 만드는 중인데 내려와서 먹을수 있겠냔다. 이런 정성이면 허리가 부숴져도 내려가는게 예의지. 심지어 요리가 완성되고는 날 부축하려고 다시 올라왔다.


 5성급 호텔의 주방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가우탐의 소고기찜은 완벽했다. 우리나라의 갈비찜 같은 단맛이 기본이면서도 인도요리답게 향신료의 맛을 과하지 않게 섞어냈다. 또 코코넛의 땅이라는 케랄라의 이름에 걸맞게 코코넛 과육을 썰어넣어 부드러운 맛과 꼬득한 식감을 더했다.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했다는데, 인도에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어찌나 정신없이 먹었는지 사진을 안 찍었다. 바보.)


대강 이런 요리였다. 케랄라식 비프 로스트(Beef Roast)
가우탐과의 셀카

 식사를 함께 하며 자야가 말했다.

 "좋은 뉴스야. 친구가 디스크는 아니고 관절이랑 근육에 피로가 쌓인거니 1주일 정도만 쉬면 괜찮을거래."

 디스크가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또 문제다. 내일 두바이가는 비행기 끊어놨는데 어떡하지? 일주일 동안 숙소는 또 어떻게 하고? 비자도 내일 만료되는데?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고민에 빠진 내 얼굴을 본 자야가 말한다.


 "내가 도와줄수 있는건 다 도와줄테니까 여기서 얼마든지 쉬어. 바로 옆에 대학병원 있는 의대교수 호스트를 만났을때 다치다니, 다쳐도 되는 최적의 장소에서 다쳤네."

 상황이 심각하지 않으니 농담도 한다. 그런데 정말 기적같은 우연이다. 집을 나온지 4개월 만에 처음보는 의사였다. 만약 하루만 먼저 일이 터졌어도 인도 길거리 한복판에 쓰러져 못 일어나고, 숙소에서도 죽은 사람처럼 지내야했다. 자야의 말대로 완벽한 타이밍(?)에 염증이 생겨서 큰 무리없이 요양할 수 있었다. 이런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그렇게 꼬박 하루를 더 요양했다. 자야는 몇번씩 내 방에 들러 상태를 체크해줬고, 가우탐은 내가 심심할까봐 틈틈이 들러 말벗이 돼줬다. 오랜 친구도 아니고 고객도 아닌데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들은 이다지도 큰 호의를 베풀어주는 걸까? 마음 편히 쉬다보니 허리도 많이 괜찮아졌다.


꼼짝없는 환자신세


5.

 하지만 다음날, 떠나기로 했다. 원래 다 나을 때까지 있으려고 했지만 불법체류 벌금이 300달러다. 정식절차를 밟아 비자를 연장하자니 악명높은 인도 공무원을 못 믿겠다. 아파서 연장한다고 하면 '아파서 못 나간다는 애가 왜 입원서류도 없냐'는 얘기가 나올것 같았다. 입씨름도 피곤하고, 벌금에 항공권 비용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두바이에서 호캉스를 하는게 낫겠다. 거기다 혹시라도 불법체류 기록이 남아 향후 여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니 떠나는게 좋다.


 자야도 처음엔 말렸지만 내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야는 나를 막아서는 대신 내 눈을 보고 얘기했다.


"공항까진 무조건 택시타고 가고, 짐 절대로 들지마. 택시기사한테 팁을 줘서라도 짐 옮겨달라고 해. 공항 입구까지만 가면 공항사람들이 도와줄거야. 두바이 공항 무식하게 크니까 걸어다닐 생각하지 말고 택시 타. 괜찮을거 같긴 한데 혹시라도 두바이에서 문제 생기면 내 친구한테 연락해. 내가 미리 얘기해둘 테니까 걔가 도와줄거야. 절대로 가방 들면 안돼. 알겠지?"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를 이렇게까지 풀어서 설명해주다니, 그가 얼마나 나를 신경쓰는지 알 수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얼굴도 몰랐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날 신경써줄수 있는걸까. 자야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6.

 비행기는 밤 10시에 출발한다. 하루종일 절대 안정을 취하고 6시에 우버를 불렀다. 자야와 가우탐은 외출 중이었기에 아쉽게도 인사를 하지 못했다. 대신 엽서 뒷면에 편지를 써서 남겼다. 자야의 당부대로 택시기사에게 부탁해 짐을 옮겼다. 공항카트에 짐을 얹어주는 그에게 요금의 두배를 쥐어주고는 감사인사를 했다. 체크인 카운터에 문제없이 가방을 맡겼다.

트리밴드럼 공항

이젠 탑승 터미널까지 1km도 넘게 걸어야 한다. 평소 같았으면 10분 거리라고 배낭도 메고 걸었겠지만, 오늘은 왜 이리도 멀어보이는지.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뻐근해지는게 꼭 시한폭탄을 차고 걷는 기분이었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40분 만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안심이 된다. 여기서부턴 쓰러져도 항공사 직원에게 업혀서라도 가겠지. 출발까진 두시간 가까이 남아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라운지의 음식은 맛이 없었다.

7.

 여행이 길어지다 보면 잡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처음엔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였던 걱정이, 다른 여행유튜버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저렇게도 여행하네', '여행영상으로 돈도 벌면서 다니네'와 같은 질투, 그리고 그에 따른 자책으로 이어졌다. 특히 그들에게 달리는 응원의 댓글이 참 부러웠다. 난 혼자서만 걷고 있는데.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내 여행은 혼자서만 걷는게 아니었고, 내가 너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찬디가르의 딕비제이, 우다이푸르의 현미누나, 뭄바이의 아디티, 트리밴드럼의 자야와 가우탐 그리고 레지타까지. 그들의 응원을 받을 때면 급수대에서 사람들에게 물 한컵 받아마시고 다음 지점까지 힘내어 뛰어나가는 마라토너가 된것 같다. 그래서 이 여행은 나의 여행이지만 나만의 여행이 아니다.



8.

 출발시간이 되었다. 좌석에 앉았다. 이륙한다. 도착한 첫날부터 '이 망할 놈의 나라'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인도지만 어찌저찌 비자 유효기간인 60일을 꽉 채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엔 큰 사고없이 떠나는구나. 60일의 추억이 필름 돌아가듯 재생된다. 밤의 장막이 드리운 창 밖으로는 인도의 야경이 보인다.


다시, 여행이다.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인도 무계획 60일 배낭여행 후기"이에요.
 인도여행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물어봐주세요. 다음 글에 답변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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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Photo by Karthik Chandran on Unsplash

2. Kerala Beef Roast : Pinte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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