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영어만 잘 하면 인생이 풀릴 줄 알았다(2)

착각이었다. 회사가 원하는 건 영어가 아닌 ‘토익’인 것을.

by Aeree Baik 애리백

방송국 PD 공채 시험을 보려고 했었다. 온갖 종류의 과목을 고루 섭렵해야했다.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잔뜩 샀다. 역대 기출 문제지와 시사상식, 한국어 능력시험, 그리고 영어. 방송국 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분야의 입사 시험엔 첫번째 관문이 영어 시험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까짓 영어.

NGO 활동 당시 한국 대표로 무대에서 행사 진행을 맡았었다. 수백명 관중 앞에서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소화했던 경험이 있다. 외국 친구들도 많고 해외 컨퍼런스 참가도 했다. 어릴 적 나는 영어 회화를 아빠한테서 배웠고 알파벳 공부를 하고 글자를 적기 이전에 대화를 먼저 시작했다. 영어가 할만 했다. 최소한 영어 울렁증은 없었으니까.


아빠는 미군부대 목사님과 친분이 있었고 흑인 목사님은 껌을 씹으며 바이블 스터디를 주관하실 정도로 격의없고 친근한 인물이었다. 목사님과 수다를 나누는동안 나는 깜빡 속았던 것이다. 내가 영어를 꽤 잘 하는 줄. 토익 시험을 보기 전까지는 그 착각에서 빠져나오지 못 했다. 드디어 토익 시험을 봤다. 결과는 처참했다..


왜 모두 토익을 잘 해야 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시험 결과는 초박살이었다. 토익 공부를 생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 실력과 토익 점수는 꽤 멀리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히도 입사 기준은 실무 영어 회화가 아니라 토익 점수다. 기다리던 시험 결과가 나왔다. 5백점이 겨우 넘었다. 점수표를 우편으로 받아들고는 한참을 말을 못 했다. 참담했다. 점수 그래프를 보니 시험 문항 중 듣기평가 영역은 거의 다 맞고 문법과 리딩은 거의 다 틀렸다. 나는 그저 낯가림 없이 외국어로 말을 하는 것 뿐이지 기본적으로 공인 영어 시험엔 젬병이었다. 문법도 엉망이고, 문제 유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학교 재학 당시 어린 나이에 어학 연수를 다녀온 선후배와 친구들을 무한정 질투하기 시작했다. 허들을 이미 넘겼을 법한 그들에게..


누군들 어린 나이에 영어권 어학 연수를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조기 유학을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다만 여건이 허락치 않았고 그것이 우선순위도 아니었다. 나는 학부생 당시 교직 이수를 했고, 동시에 사회복지 복수 전공을 했다. 즉, 자격 필수 과목이 두 배로 늘어나 졸업 기준보다 18학점을 더 이수해야했고 이를 위해서는 학점을 월등히 잘 받아야했다. 한학기에 들을 수 있는 최대치보다 두 과목을 더 이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학기마다. 아니면 9학기를 다녀야 하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위해서는 정해진 시점에 모든 학점을 끝냈어야 했다.


학비는 공짜가 아니다. 정확히 8학기 안에 정해진 사회 복지 실습을 마쳐야 하고 이를 위해 평소에는 노인복지 관련 봉사활동을 했고, 학기 도중 중학교에서 영어 교생 실습도 해내야 했다.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그 와중에 방학 마다 중소기업 인턴십을 하고 또는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학생으로 일을 했다. 졸업 당시에 내겐 국가 공인 자격이 두 가지나 있었다. 교육부 인가 교원 자격과 보건복지부 인가 사회복지사 자격.

의미도 있고 쓸모도 있을 거라 확신했던 전공 공부는 공채 시험엔 하등 도움이 안 됐다. 에잇, 길을 잘못 들었다. 영어 토익이 우선순위라는 걸 너무나 늦게 확인한 현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지금껏 열심히 몰두한 많은 것들이 통째로 허탕이었다는 생각에 마구 비뚤어지고 싶었다.


토익 학원을 등록했다. 3일간 문제 풀이를 했다. 좀이 쑤셔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들 조용히 집중하는 가운데 나 혼자 부산스럽게 주위를 자꾸 들러보며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를 하는 방식이 ‘문제 풀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떻게 다들 토익 800점이 넘은 거지? 차라리 그동안 게을렀던 내 탓을 하는 게 옳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도 흠이다.

뒤늦게 나는 어학 연수를 떠났고 영어 공부에 급히 몰입했다. 평가 시험을 보고 금세 월반을 하면서 실력은 조금씩 나아지는듯 했다. 가장 레벨이 높은 반에 도달했다. 유럽 학생들로만 가득한 반이었다. 그러다 상황이 급변한다. 안도를 해야할지 허무하다 느껴야 할지, 당분간 ‘토익’이라는 실체 없는 악몽엔 쫓기지 않게 되었다. LA 어학연수 중 지원한 NGO 자리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급한 토익 공부는 필요 없게 되었다.

잠시 소나기가 멈춘 파란 하늘


일단은 ‘안도와 허무’ 그 중간 지점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여행 가방에 무겁게 챙겨왔던 토익책을 처분했다.


해커스 토익 리스닝편, 리딩편. 몇번이나 펼쳐 봤을까, 두 권 모두 두껍고 무거웠다. 하지만 해커스 토익 리딩편은 처분하지 않는 게 좋을 뻔 했다. 왜냐면, 사무실에서 사고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해 가을 스위스 제네바로 옮겨와 첫출근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지 한달째 되던 날이다. 사건은 의외의 지점에서 강력하게 튀어나왔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사무총장 롤란도는 나를 본인 사무실로 조용히 불러 들였다. 근무 환경은 어떤지, 어려움은 없는지, 일은 잘 진행하고 있는지 질문을 하며 꺼낸 한 마디,


“애리, 앞으로 업무 메일은 모두 제임스나 캐롤에게 영어 검사를 받도록 해요.”
“네? 제 이메일을 전부요?”


자존심이 무척 상해서 순간 볼이 떨렸다. 롤란도가 설명을 이어갔다.
“또래 그룹 사이에서 주고 받는 메일은 상관이 없지만 국제 총재나 지역 총재들과 업무 메일을 주고 받을 때엔 외교적이고 형식적인 워딩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국제 NGO이고 회원들이 우리 기관의 중심입니다. 각 대륙마다 분명히 문화차이가 존재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소재들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훈련받으면서 미연에 방지하자는 보호 방식이죠.”

지난 주에 내가 보낸 업무 메일이 너무 고압적이어서 아프리카 지역 사무소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사고 아닌 사고가 날뻔 했었다.
‘당신들이 일을 지연해서 전부가 늦어지고 있으니 다음주 월요일까지 틀림없이 보내시오.’ 이같이 적은 문구였다. 맞는 표현은 대체 뭔데?
‘만일 그쪽 여건이 허락한다면 다음주 월요일에는 우리가 계속 일을 진행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우리쪽에서 도울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주십시오.’ 이렇게 써야 옳았다.
길게 구구절절 돌려서 말하는 걸 ‘외교적 수사’로 칭했고 나와는 명백히 상극이 되는 말투다.

‘저쪽에서 일을 지연시켰다구요!’ 난 억울했다. 계속 되는 롤란도의 말을 들으며 속이 상해서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상심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나를 보더니 롤란도는 약간의 위로를 던졌다.
“우리는 영어 모국어자가 아니라는 핸디캡이 있어요. 나도 우루과이 사람이라 영어가 모국어처럼 원활하지 않죠. 사무총장인 나도 중요한 문서를 작성할 때는 마지막에 캐롤한테 반드시 검사를 받아요.” (영어 모국어자들이 죄다 미웠다..)


모든 업무 이메일을 동료들에게 검사 받고 확인 받은 후에 발송하라니.. 내 영어가 그 정도로 엉망이란 소린가. 속이 상해서 며칠 말수가 줄었다.


일은 계속 진행해야 하니 힘든 마음을 뒤로하고 짧은 메일이든, 긴 메일이든 작성 후 캐롤이나 제임스에게 리뷰를 부탁했다. 싫기만한 수학 문제집을 검산하러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번 푼 것도 싫은데 검산을 또 해야 하는 그 기분. 내가 괜히 ‘수포자’가 아니다. 온통 빨간펜으로 시뻘겋게 뜯어고쳐진 종이가 책상 위로 돌아왔다. 어린 애 취급 받는 게 창피하고 모멸감이 느껴져 며칠 잠적해버리고 싶었다.


도와주세요 깔뱅!


그러던 어느 날 불평하고 있는 나를 폴린이 멈추어 세웠다.
“뭐가 그렇게 속상하니. 네 글 첨삭지도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 형식이나 매너도 중요하지. 결국 어디서나 중요한 건 롸이팅 실력이라고.”
그러고 보니 폴린의 발언이 맞았다. 내겐 기회인 거잖아! 갑자기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감쪽같은 일이었다. 이후 매일매일 나는 다양한 종류의 많은 글을 써냈고 그들은 내 글을 고치고 편집하느라 업무가 늘어났다. 하루는 바쁜 제임스를 대신 폴린에게 영어 수정 요청을 하니 단박에 “도대체 뭘 쓴거니,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캐롤이랑 제임스 지금껏 엄청 고생했겠다!” 하는 적나라한 반응을 내게 던졌다.

자그마치 10개월동안 그들은 내 영어 작문을 빨간펜으로 첨삭지도 해주었고, 나의 롸이팅 실력은 점증적으로 나아졌다. 폴린은 내 작문이 여전히 엉망이니 더 신경을 써서 탈고를 하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사무총장 롤란도는 내 장점을 발견해 프리젠테이션 업무를 주고 홍보 분야 업무를 더 맡겼다. 인정을 받고 있다는 기분에,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에 안도감이 들었다.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사회복지를 공부한 덕분에 NGO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몇년 후 스위스 제네바 Université Populaire du Canton de Genève에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맡게 되면서 학부 시절 교직 이수 당시 배운 교수법을 십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이렇게 교집합을 만들어 가며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과정임을 이제는 이해한다. 허탕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과도한 초조함이 내겐 독이 되기도 하고 실력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다.


지금은 나의 모자람을, 그 결핍이 주던 상실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괜찮다고, 공든 탑이 무너지면 그 벽돌로 오븐을 만들어 빵을 구워먹으면 된다고. 무너진 벽돌의 쓸모는 내가 정하는 거다.


참, 그리고 몇년 전 제네바에서 시험 삼아 본 토익 시험, 잠깐 딴 생각하느라 순간 놓친 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토익 협회에서 보낸 우편물을 뜯어보니 점수 결과가 955점이었다. ‘만점은 인간미가 없잖어?’ 하며 더이상 토익에 대한 원망을 접고 내 인생 한 챕터를 정리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11화 영어만 잘 하면 인생이 풀릴 줄 알았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