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히피 부모 아래서 방황하던 아이

편견 없이 포용하는 모두의 상담자, 나탈리

by Aeree Baik 애리백

나탈리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스스로를 검둥개라고 불렀다. 마을 어귀를 배회하는 버림받은 개처럼 목적 없이 흔들리던 자신의 오래전 기억 속 한 아이를 내게 꺼내보여 주었다. 아이는 맨발로 비를 맞으며 돌아다녔다. 이미 외로움을 알았고 지금껏 받지 못한 애정을 길거리에서 갈구하고 다녔다. 그 아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나탈리의 부모는 타 가정과는 다른 궤도를 걷는 사람들이었다. 양친 모두 제도권의 모든 규율을 거부한 채 히피 정신에 밀도 높게 심취해 있던 프랑스의 젊은이들이었다. 1968년을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 깊게 새겼다. 일체의 권위를 거부하는 물결이 1968년의 프랑스를 가득 채웠다. 여러 구호가 등장했다.
Il est interdit d'interdire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Jouissez sans entraves “방해 없이 즐기자”

자유와 평화, 이들이 드높게 여기던 시대정신의 이름들이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도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보호와 양육을 제공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프랑스의 서쪽 어느 마을, 히피 가정에서 태어난 나탈리는 최소한의 울타리도 얻지 못한 채 그렇게 홀로 세상에 던져졌다. 아이를 홀로 집안에 방치하고 부모는 자유롭게 활동하고 다녔다. 어린 나탈리에게는 잠옷 한 벌도, 실내에서 신을 작은 슬리퍼 한 켤레도 없었다. 보통의 삶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냥 살았어. 사랑받는 느낌도 정서적인 소통도 없이. 언젠가 부모에게 물었어.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고 그렇게 버려두었냐고.”

비난이 돌아왔다. “넌 나쁜 애였어.” 엄마의 대답은 성인이 된 나탈리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자신이 채워주지 못한 사랑과 부모 의무를 인정하지 않고 아이에게 원인을 돌리며 탓하기 일쑤였다. 엄마는 나탈리에게 칭찬을 해주는 법이 없었고 늘 비난을 퍼부었다. 아빠는 아이를 인정해준 적이 없이 따뜻한 말 한마디, 단 한 번의 포옹을 해주지 않았다. 어린 나탈리는 외로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겪어야 했다. 부모는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마치 백지처럼 무지했다. 아이는 사랑받고 싶었다. 누군가 토닥토닥 껴안아 주고 만져주는 걸 몹시 갈구했다.

나탈리는 우리 팀의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의 유년 시절을 매우 슬픈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나는 여러 차례 한숨이 나왔다. 나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하며 나탈리는 오히려 엄마를 변호했다.

“엄마에게는 불행한 가족사가 있어. 8살에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11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지. 엄마도 어떻게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야. 갑자기 주어진 엄마라는 의자에 선뜻 앉을 수 없었을 테지. ‘엄마 되기’가 어려웠을 거야.
우리 엄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야. 미술가인 엄마의 재능을 아마도 내가 물려받은 것 같아. 어릴 때 기억이 나. 새벽 무렵 잠들어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워서 음식을 맨바닥에 놓고 깔깔 웃으며 바닥에 마구 흘리면서도 신이 나서 함께 먹었어. 그런 식의 예상 밖의 행동들이 나한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부모가 집을 비우고 또다시 홀로 남겨진 아이, 어느 날인가는 커다란 냄비를 꺼내 동네 사람들을 모아 엄청난 양의 파스타를 끓여 대접했다. “이것저것 넣어서 마구잡이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어. 집이 텅 비어 있으니 내가 스스로 가족을 만들어서 집을 사람들로 가득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어.”
무작위로 초대받은 어른들이 집에 모였다. 온기가 채워졌다. 어린아이가 만든 엉터리 파스타를 이웃들은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렇게 9살의 나탈리는 제2의, 제3의 엄마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이웃의 사람들이 나탈리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었다. 공허한 마음은 이따금씩 타인의 관심으로 채워지는 것도 같았다.

부모는 현재 아이가 겪고 있는 내면의 문제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아이는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영위하는 그들에게 큰 부담되는 존재였다. 무거운 짐을 어두운 방 안에 넣어 둔 채 이들은 본인의 인생을 마음껏 살았다. 부모는 곧 이혼을 했다.

아빠가 떠난 집은 더욱 적막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결핍은 그대로 남았다. 엄마는 신경질적이었고,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탈리의 외모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부스스 하니.” “왜 그렇게 살이 쪘어?” “넌 머리가 나빠.” “너의 친구들은 죄다 별로야.” 언어로 할 수 있는 모든 비난을 가했다. 자신은 누구를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렇게 이제 십대가 된 아이는 자신의 가치를 모르게된다. 말의 힘이라는 것은 잔혹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어. ‘이상하다. 나는 머리가 나쁜데..’ 하고 말이야.”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던 언어 비하는 생각보다 깊게, 그리고 오랫동안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의 칭찬을 쉽게 삼킬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곧이어 나탈리는 거리로 나왔다. 가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세상은 과연 보호해 주었을까. 거리에서 만난 남자 어른들은 나탈리를 탐했다. 점점 사람들 앞에서 성적 매력을 드러내고 여성성을 과장하여 뽐내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나탈리가 인터뷰 초반 왜 자신을 ‘검둥개’라고 표현했는지 서서히 알게 되었다.

사춘기가 아직 되기도 전에 ‘나쁜 사랑’에 연이어 연루되었다.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상대의 인격도 구체적으로 모른 채 연이어 남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구하는 육체관계를 맺었다. 수없이 많은, 의미 없는 사람들을 지나왔다. 학교에서 폭력을 저지르고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선생님들도 손을 놓았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문제적 행동들을 차례대로 하고 다니며 매 순간을 허비하고 인생을 서서히 파괴하겠다고 결심한 차였다.

“아마 그 생활을 계속했다면, 지금쯤 나는 감옥에 들어가 있거나, 인생을 이미 마감하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야.”

십대 시절,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나탈리가 그를 향해 품을 열고 포옹을 하려 하자 아빠는 고개를 돌리고 몸을 비틀어 팔꿈치로 딸을 밀어냈다. 그의 회상을 듣던 나는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자격 없는 부모들.. 명백한 아동 학대다.’ 순간, 분노에 찬 내 눈을 나탈리가 읽어낼까봐 고개를 떨구었다.

인터뷰를 하며 그의 유년을 관통해가고 있는 아픈 스토리를 듣다가 대체 언제 이 애통의 시간을 빠져나오는지 나는 참을성 없이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방황의 시간은 지속되었고 앞으로 등장할 큰 사건들을 더 넘어가야 했다. 마을에서는 비밀이 생겨났고 그에게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벌어진다. 나탈리의 영혼이 조각났다. 곧이어 그는 27살이 되기 전에 죽어버리자고 계획한다.


그때까지 나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노트를 적어갔다. 가을이 시작되는 미술관의 테라스에서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를 앞에 두고 시선을 미술관 정원 밖으로 멀리 던졌다. 이번 인터뷰가 이토록 힘들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편견없이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는 그를 나는 매일 회사에서 만난다. 이토록 어두운 계절을 그는 대체 어떻게 지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