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비밀을 간직한채 성장하던 아이는

편견 없이 포용하는 모두의 상담자, 나탈리

by Aeree Baik 애리백

“부모가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

나탈리는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서 구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조금씩 안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가 알려주지 않은 자신의 값어치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확인해나갔다. 공허한 마음은 여전했다.

기저에 놓인 불행은 불현듯 올라왔다. 10대 초반이었던 어느 날 나탈리는 성폭행을 당한다. 동네 이웃에 사는 한 아주머니의 남동생이었다. 방금 감옥에서 형을 마치고 나온 성범죄자였다. 그때 처음으로 나탈리의 엄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이웃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고함을 질렀다.

“여기서 당장 떠나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경찰을 부를 거다.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라.”
성범죄자는 그날 새벽에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어린 나탈리가 경찰서를 오가며 진술을 하고 성범죄자를 다시 마주하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보호자로서 행동한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마을의 비밀로 남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기까지 비슷한 일은 반복되었다. 한 번은 마을을 떠도는 집시 남성이 칼을 들고 덤볐다. 목에 칼날을 겨눈 채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에는 집을 방문한 가족의 절친한 지인이었다. 화장실에 가는 척, 집에 가는 척 나탈리의 방으로 새벽에 몰래 들어와 여러 차례 성폭행을 했다. 부모는 선뜻 나서지 않았다. 나탈리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을 먼저 했다. 지인과의 관계를 단번에 끊지도 않았고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이 일은 그녀에게 두고두고 큰 상처가 되었다.

부모의 방치를 견디지 못하고 사람들의 애정을 갈구하던 여자아이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자신의 가치를 너무 일찍 성적 매력으로서 증명하게 된다. 아이는 아직 십 대였다. 정서적으로 버림받은 아이에겐 자존감이란 게 없었다. 귀하게 대접받은 적이 없어서 스스로를 헤아릴 줄 몰랐다.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자아이는 나탈리 본인의 표현대로 마을 어귀를 돌아다니는 ‘검둥개’처럼 살아갔다. 이 인터뷰를 하며 나는 조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탈리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들으면서 이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풀어놓아도 되겠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외모만을 보면 그녀를 검둥개라고 부르기엔 사실 어폐가 있다. 키가 크고 탐스러운 금발에 건강한 신체 조건을 타고난 아름다운 여성이, 누구보다 크게 웃고, 운동을 즐기는 그가 이토록 가혹한 시절을 겪었다 그 누가 눈치챌 수 있겠는가. 도무지 평범할 수 없던 그에게 세월은 낯설게 흘러간다.

일상을 지속하며 그 하루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최대한 빨리 죽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탈리는 조금씩 이상행동들을 했다. 27살이 되기 전에 죽어버리겠다는 목표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지척의 옆집 발코니로 점프를 하겠다고 2층 발코니 난간 위에 올라가 뛰어내렸다.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는 충동적으로 눈을 감고 운전을 해보기도 했다.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이가 많이 든 노인처럼 인생을 달관했다.

“어서 ‘죽음’이라는 사건이 인생에 벌어지기를 기다렸어.”

내일이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행동하면 이 처참한 삶의 끝에 조금씩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마 자살을 할 수는 없었어. 내가 죽더라도 어디까지나 사고로 위장하려고 노력했어. 왜냐면.. 내가 자살하면 우리 부모님이 너무 슬퍼할 것 같았거든.”
이 말을 받아 적던 나는 눈물을 꾹 참아야 했다. 마치 유기견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낯선 길에 내버려 둔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가 떠나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자신의 방식으로 부모를 가여워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동생에게 부모는 너그러웠다. 사춘기의 나탈리는 이미 문제아로, 골칫덩어리로, 큰 부담으로 지워진 존재가 되어 꼬리표를 떨쳐내기 어려워졌다. 너무 많이 울어서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없어져 버렸다.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슬퍼도 아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마음껏 울고 싶은 날에는 근처 호수로 풍덩 뛰어들어가 물 안에서 감정을 토해냈다.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성인이 되자 그는 마을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기로 결정을 했다. 먼 길을 떠나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1년 동안 불어를 가르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영국으로 떠나 몇 달을 베이비 시터로 지내다가 몇 달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우간다로 떠나서는 영국인 남자 친구와 함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아직은 어린 나이, 20대였다.

“한참 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부모님이 나를 반겨주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품고 다시 돌아오곤 했어. 그리고는 또 한 번 상처 받고 떠났지.”
엄마는 여전히 정신 나간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골초 아티스트였고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자기 얘기만 쏟아냈다. 아빠는 무뚝뚝하게 말을 받아주지 않아 애초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놀라운 표현을 했다. “떠돌이 개에게 물을 한 바가지 끼얹는다고 해도, 그 물은 겉만 적실뿐이야. 한 방울도 피부 속으로는 스며들지 못해. 상처받던 일상에 한꺼풀 보호막이 단단하게 만들어졌어. 나는 오랫동안 떠돌다가 이제야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거든.”
그녀는 다시 울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2의, 제3의 대체적 엄마를 찾아다니던 나탈리는 그렇게 교회와 커뮤니티를 통해 재양육을 받게 된다. 정처 없던 마음에 힘이 생겼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를 향해 기도해 주고 있다니..

이 모든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종교를 통해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그의 부모는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어쩌면 나는 나탈리의 이야기에 나의 부모를 교차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보수적이고, 감정적이며, 칭찬에 너무도 인색했던 나의 부모를 떠올리며 나탈리가 어떤 방식으로 마음의 속박을 해결했는지 몹시 알고 싶어 졌다.

아버지는 나탈리의 결혼식에 와서 찬란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딸을 마주 보고도 ‘오늘 너의 모습은 참 곱고 아름답구나.’ 말 한마디를 해주지 않았다. 마치 길에서 처음 보는 어떤 여자를 지나치듯 무심하게 흘끗 쳐다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