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내 앞에서 문이 닫힌다면, 나의 선택은

아주 작은 빛을 발굴하는 사람 아만다

by Aeree Baik 애리백

엄마의 상태는 심각했다. 당장 병원에서 어떤 통보를 받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매일매일 아만다는 자신의 일부분이 깎아져 나가는 마음의 고통을 느꼈다. 이렇게 내 몸의 일부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정신이 들었다. 많은 것을 함께 결정하고 상의했던 인생의 최고의 상담자이자 절친한 친구인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자 그의 내면이 재빨리 재구성되었다.

"내가 아무리 중요한 업무를 맡았고 이 자리에서 지켜나가야 할 커리어가 아무리 대단해도, 가족이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어. 언젠가는 사랑하는 가족이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일, 사랑, 가족, 이렇게 꼽아왔던 가장 소중하고 무한한 가치로 여기는 세 기둥이 모두 무너지고 있을 때, 그는 인생의 우선순위의 자리를 재배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게 된다면 자신이 현재 강하게 붙들고 있던 욕심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건강하게 옆에 존재하고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 사랑한다는 표현을 미루지 말자는 다짐을 동시에 하게 된다.

병구완을 하는 날들은 계속되었다.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제네바를 서둘러 떠날 때 여행 가방에 챙겨 온 약들이 모두 떨어졌다. 면역이 약해서 평소 장기 복용해왔던 약 처방을 다시 받기 위해 아만다는 고향에 있는 병원의 주치의를 찾았다. 어릴 적부터 처방을 해주던 주치의는 연말 휴가로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새 의사 선생님은 아만다의 상태를 보더니 새로운 제안을 한다. 이대로 약만 처방하며 상태를 지속하기보다 이제는 병의 근본을 알아보자고 그의 의견을 묻는다.

그리하여 임상이 시작되었다. 차근차근 의사의 처방을 따르며 몸의 반응을 살폈다. 아만다의 알러지 반응이 계속되고 때로는 심각한 거부 반응이 피부에 드러났다. 본인의 면역 체계가 다른 이들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를, 오랫동안 유예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심정으로 몹시 알고 싶었다.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얼굴에 새빨간 반점이 부스럼처럼 가득 올라온 채로 외출을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경멸스러운 눈으로 아만다를 쳐다봤다. 엄마가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숫자만큼 고스란히 그 시선을 통과해야 했다. 엄마의 병세가 점차 호전되고 회사로 돌아와 출근을 한 날도 마찬가지의 시선에 둘러싸였다.
'피부병인가? 얼굴이 왜 저렇게 되었지?' 사람들은 멀리 서서 그녀의 상태를 서둘러 짐작했다.

완벽한 외모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갈망을 갖고 있던 그에게 심히 가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의외의 변화가 불어왔다. 타인의 거친 시선이 더 이상 그녀를 주눅 들게 만들지 못했다.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한 아만다에게는 그동안의 시간들이 앞으로는 남들의 시선 따위에 인생을 걸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된 것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내게 이야기를 덧붙였다.
"중국 속담에 그런 표현이 있어. 오늘 일어난 불행은 내일 일어날 행운을 위한 것이라고. 굉장히 철학적이지 않아?"
나는 그의 단단한 목소리에 그만 매료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지, 전화위복."

나는 아만다의 저력을 보았다. 내게 왜 불행이 닥쳤는지 원망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작은 빛을 조합한 힘이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자신의 오랜 숙제를 풀어나가게 되었고 힘들 수도 있을 이 여정을 그는 용감하게 시작했다.

갈등을 한꺼번에 겪어나가니 이제는 거침없이 발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속을 끓이던 여러 요인들을 돌아보니 이제 그런 생각이 들어. 신경이 쓰여? 걱정이 돼? 흠, 아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아." 애끓는 마음과 걱정이 머릿속을 잡아먹고 하루 종일 흔들어 놓는다는 속성을 간파하고 이제는 거부하기 시작했다.

의사와 진행한 임상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본인이 그동안 왜 그렇게 금방 무기력해졌는지 알게 되어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등산을 해봐, 젊은 사람이 꾸준히 체력을 길러야지.' '약초를 구해서 끓여 마셔봐.' ‘기운이 없으면 보양식을 먹어.’ 의미 없는 사람들의 무수한 조언을 흘려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어떤 식재료가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리스트가 너무 길어서 사실상 섭취할 수 있는 식료품이 거의 없지만. 자신을 케어해야 하는 올바른 방식이 처음으로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서로를 끝없이 관찰하고 험담하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외모에 대한 편견, 늘 무언가 증명해내야 하는 외부의 강박이 있던 아만다는 그렇게 자신 앞의 한계와 틀을 깨고 있었다. 오랫동안 연인이었던 사람과의 독성만이 가득했던 관계를 정리하며 고단해진 자신의 마음을 보살필 줄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아. 슬픔이라는 감정에 푹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어. 감정에 내 자신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항상 싸웠거든."
아만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여러 차례 놀라고 있음을 속으로 숨겼다. 내게도 있던 강박을 그에게서도 만나게 되니 그의 지난한 행보와 발견이 지금 내게 더 와 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고 있어. 나의 감정을. 그동안은 그렇지 못했어. 약해지지 말자고, 외롭지 말자고, 슬프지 말자고 내 마음을 최대한 밀어내며 다짐해왔지.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 내 감정을 인정해주기로 했어. 슬퍼도 괜찮아,라고 말이야."

뜻밖의 일이었다.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오른 채로 아픈 얼굴을 하고 돌아다녔을 때 지금껏 가장 절실했던 것들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성형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휘발되었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마음이 같이 증발되었다.
"나는 그냥 사진을 안 받는 얼굴이야, ‘나는 포토제닉이 아니다.’ 이렇게 선언했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지. 사진 속 내 얼굴을 여기저기 뜯어보며 속상해하지 않기로 했어. 성형 수술할 돈으로 내게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할 계획이야."

"브라보! 잘 생각했어. 대체 어디가 성형이 필요했던 거니?"

사랑하던 사람과 힘들게 이별하고, 더욱 매달렸던 커리어도 뜻하는 바대로 정돈이 되지 않았고, 엄마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일상이 전부 엉망이 되었을 때, 그는 그 안에서 회복의 빛을 찾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함께 앉아서 이 모든 이야기를 듣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했다.

내가 물었다. “막막한 마음이 너를 사로잡을 때 어떻게 하겠어?” 머뭇거리지 않고 그는 자신의 방식을 꺼내놓았다. “나는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옵션에 대해서 말이야. 가장 최악은 뭘까. 일자리를 잃게 되면 어떡하지, 아주 오랫동안 소망했던 기회를 일순간 박탈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에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상상해보았어. 스위스 제네바는 지금껏 내가 가장 안전함을 느꼈고 평온함을 찾은 곳이야. 일자리를 잃으면 돈벌이도 없어지고 이곳을 떠나야 하겠지.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 그는 나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가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해. 아프리카에 있는 난민 캠프에 가서 아이들에게 영어와 불어를 가르치겠다고 말이야. 그럼 결론이 나와. 나는 대비하고 있다고. 그것도 꽤 괜찮은 Plan B잖아. 내 역할을 거기서 찾는다면 그것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앞에 등장한 두려운 마음을 이처럼 의젓하게 넘어가고 있었다니.

식이조절을 해가며 병의 원인을 찾고 알러지 반응을 체크하며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식재료들을 발견해가는 동안에도 아만다는 점심시간마다 중국어 수업을 들으며 시험을 패스하고 레벨을 올려나갔다. 중국 변방에 있는 NGO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 부서가 요즘 바쁘지 않았어?” 하고 물으니 대답한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침마다 공들여 화장을 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절약되는지 몰라." 하며 웃어 보였다.

며칠 뒤 그녀는 커다란 박스에 가득 담긴 한국 마스크팩을 내게 전해 주고 갔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으니 나에게 몽땅 넘기겠다고. 알로에 함유, 녹차 함유, 오이 함유, 석류 함유 종류별로 다양한 마스크팩을 내려다보며 나와 아만다는 한참을 웃었다.

복합적인 결을 한 겹씩 지나와 단단해진 마음을 편편이 풀어놓는 그의 모습,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나는 그에게 탄복했다. 가장 밑바닥의 상황에서도 아주 작은 빛을 발굴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아만다의 내면의 힘을 나도 배우고 싶어 졌다. 최악의 경우를 설정해본 뒤에 그 상황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지점을 상상해보곤 한다는 그의 생각의 통로가 어쩌면 빛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덧붙였다. “내 앞에 있는 문이 나를 향해 굳게 닫힌다면 나는 창문으로 나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