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한꺼번에 악재가 닥쳤다: 일, 사랑, 가족

아주 작은 빛을 발굴하는 사람 아만다

by Aeree Baik 애리백

이전 부서에서 함께 일하던 미하엘라와 오랜만에 근황을 물으며 차 한 잔을 함께 하자고 약속한 자리였다. 이날 오전 미하엘라는 내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 괜찮으면 본인 부서의 인턴과 함께 만나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그 인턴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지대하다고 했다. "물론 환영이지." 반가운 마음으로 나는 미하엘라와 함께 동석해 앉아있던 BTS의 팬 아만다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미하엘라의 부서에서 무급 인턴십을 하고 있던, 방금 대학원 공부를 마친 20대의 젊은 동료였다. 짧은 인사가 오고 가고 서로의 근황을 말하던 중이었다. 지난해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그 여파는 내게도 옮겨온 상황이었다. 어쩌면 민감할 수도 있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나는 새로 알게 되어 아직 서먹한 사이인 아만다의 존재가 불편하기는커녕 그가 우리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자세와 깊이 공감해주는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그해 연말 평가를 앞두고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을 하던 중이었다. 슈퍼바이저는 매일 무언가에 닦달당하고 있었고 그 스트레스를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했다. 나는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다. 계약 연장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압도하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바라던 일들이 어그러질까 노심초사했다.

아만다는 그때 내게 참신한 이야기를 건넸다. "걱정마요. 내 방에 이베이에서 주문한 한국 마스크팩이 어림잡아 2천 장쯤 되거든요. 나도 여기서 두 달 뒤에 인턴십이 끝나면 곧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우리 둘 다 뭐라도 할 것 없으면 제네바에 에스테틱 스튜디오를 차려서 공동 대표를 하면 돼요. 누군가의 기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오너가 되는 거죠."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러자고 했다. 나는 그때 신선한 바람을 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입 속에 박하사탕을 넣어준 듯한 기분. 괜찮은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고 어엿한 일자리도 갖고 있는 내게 오히려 앞으로의 미래가 캄캄할 무급 인턴이 이 같은 제안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환기의 경험이었다. 그때 만난 아만다의 탄력성이 어쩌면 당장이라도 부정적인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 했던 나를 길목에서 다시 뒤로 잡아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집트의 미이라처럼 걱정을 가득 담은 붕대를 나 스스로 온몸에 칭칭 감고 있을 때, 누군가 가위로 하얀 붕대를 똑 잘라 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꽁꽁 당겨지던 압박이 풀리자 더불어 몸에 감아놓은 하얀 천이 스르르 풀렸다. 누군가의 청량하고도 무해한 한 마디로 말이다.

불안감은 누구의 소유인가. 그날 이후 나는 이러한 질문을 나 자신에게 이따금씩 던지게 되었다. 내가 불안해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법은 없었으니 자주 고개를 들어 환기를 해야 했다. 이때를 계기로 나는 아만다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보다 열 살 이상이 어린 친구다. 그사이 아만다는 원하는 자리에 합격을 했다.

재밌고 때론 곤란한 일들도 있기는 했다. 아만다를 만나면 가끔씩은 내가 되물어야 하는 말들을 하곤 했다.
"농담인 거지? 정말로 성형수술을 하고 싶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정말 의아한데?"
진담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성형을 하고 싶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외모가 도드라진다고."
이런 얘기를 듣는 나로서는 의구심이 들기만 했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대체 왜? 몸매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소규모의 마을에서 서로 부대끼며 사는 동안 아만다는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혹독한 평가를 늘 들어왔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습에 대한 기준이 높았고 스스로 외모에 대해 강박을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허리 인치가 조금만 늘어도 그리고 피부에 눈으로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작은 뾰루지가 나도 불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 내 사무실로 찾아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온 얼굴에 빨간 반점이 가득하여 피부가 온통 부어올라와 있었다. 화장을 말끔하게 지운 그녀의 맨얼굴을 그날 처음 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긴 눈썹을 더욱 길어 보이게 진한 아이라인으로 중무장으로 하고 있을 텐데.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픈 게 분명했다. 최대한 놀란 기색을 속으로 감춘 채 나는 그녀의 안부를 묻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건강은 괜찮은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의사 선생님이 바뀌었어. 독한 약을 지금껏 매일 다양한 종류로 먹어왔는데 새로운 의사 선생님이 내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자고 하셔서 약을 끊었어. 이전 의사는 다 괜찮다며 약만 계속 먹으라고 했지만 내성이 생겼거든. 새로운 의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 지금 의사 선생님과 함께 내 병의 정확한 이유를 찾는 중이야. 내 몸에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지."

중국 식당에 갔다가 알러지 반응이 크게 왔다고 했다. 간장과 설탕과 MSG가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난 뒤 피부가 발작적인 반응을 해왔다. 이후 간장, 설탕, MSG 뿐 아니라 밀가루, 쌀, 우유 그리고 과일, 초콜릿, 식초에 알러지 반응이 왔다. 대부분의 화장품이 그렇듯 화학제품이 가득한 화장품은 전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천연소재 화장품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제품들에도 마찬가지로 거부 반응이 나왔다.

어릴 적부터 알 수 없는 원인 때문에 늘 피곤하고 아프던 아만다는 지금껏 통증을 약으로 누르며 버텨왔지만 한계가 왔다. 새로 만난 의사와 다시 처음부터 병의 연유를 찾아보자 임상을 시작한 후로 사실상 섭취할 수 있는 식재료가 거의 없었다. 어느 식당에서도 외식을 할 수 없었다. 모든 초대를 거절해야했다. 식사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주방에서 오늘 어떤 재료를 다루었는지 얼굴에서 알러지 반응이 재빨리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시 밤새 아팠다.

급하게 체중이 7kg이나 빠졌다. 영양에 문제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와 약속이 있을 때엔 그는 수두에 걸린 사람처럼 얼룩덜룩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직접 만든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도시락통을 열어보면 온통 초록색이었다. 배추나 양상추 같은 채소류에, 아보카도, 소금, 레몬, 천연재료만을 사용하여 본인이 직접 만든 염소 우유 리코타 치즈로만 채워진 식단이었다.

“평생 이렇게만 먹어야 하는 거야?” 하고 물으니 “지난 주말에 초콜릿 맛을 재현하는 대체 간식을 발명했어.”하며 내게도 맛 보여주겠다고 말을 하는 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실 수 없어서 내 앞에서 그는 물만 마셨다.

반점이 올라오는 얼굴 때문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매번 별일 없다는 듯 대답하는 그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완벽한 외모에 대한 강박이 큰 사람이라 아마도 이 같은 상황을 견디는 건 심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1년 동안 매일 지속되었다. 배탈이 나고 피부가 붉게 부풀어 오르고 다시 리스트에서 몇 가지 식품들을 지워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만다가 현재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구나.’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가 이 시기에 어떤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여름 바람이 부는 카페 테라스에 마주 앉아 그를 인터뷰하는 동안 나는 그가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새로운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인생의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막막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묻던 차였고 지금껏 알지 못했던 속사정을 마침내 듣게 된다. 늘 피곤하고 몸이 아프던 자신이 병의 원인을 찾느라 고생할 때 함께 겪어나간 어마어마한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배터리가 5%밖에 남아있지 않은 채로 지탱해야 했던 일상에서도 어김없이 갈등 상황은 찾아왔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일, 사랑, 그리고 가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세 기둥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민하던 남자 친구는 몇 년째 마약에 손을 댔다. 일자리를 찾겠다는 의지도 전혀 없었다. 어떤 도움도 어떤 설득도 소용없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어딘가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하느라 연락이 두절되거나 마약을 흡입하는 중이었다.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길 원했고 언젠가는 아이를 원했던 아만다는 결정을 해야 했다.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고. 관계는 독성을 머금은채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갔다. 헤어지자는 그녀의 이야기에 남자 친구는 심리적 보복을 가했다. "가여운 나를 떠나는 너는 잔인한 인간이야." 비난하기 시작했다.
"너는 그동안 이기적으로 좋은 것만 취하고 이렇게 나를 버리는 거야. 못된년." 사랑했던 사람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끝까지 횡포를 부렸다. 떠나지 못하도록 잡아당겼다.

계속해서 심리적 갈등 상황을 만들어냈다. 매일매일 그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힘이 겨웠다. 하지만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어." 내게 자신의 이별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아만다는 이렇게 말을 했다.
"얼마나 이 일이 고통스러웠는지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아. 그 사람을 오랫동안 사랑했는데 기억이 없어졌어. 너무 아팠어서 나도 모르게 기억을 지웠나 봐." 말하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늘 또렷하던 사람에게서 처음 보는 희미한 모습이었다.

회사에서도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전문성이 전혀 없는 보스가 별안간 낙하산으로 들어와 온 팀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만다는 그때 몹시 원하던 자리에 합격하여 커리어를 차근차근 시작했고 무엇보다 즐기며 일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 컸다. 능력 없는 보스와의 실랑이가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옆 사무실에서는 동료가 울고 있는 게 예삿일이었다. 신입인 그녀에게 보스는 툭하면 책임을 지라는 소리를 했다. 책임자는 그 자가 아닌가.

부서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결정을 내리려 하지도 않은 채 매번 지시를 달리하고 말을 바꾸며 온 팀원들을 괴롭혔다. 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다시 수정하느라 머리를 싸매며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중에 아만다는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정신적 기둥이자 멘토이며 가장 절친한 친구인 엄마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돌볼 사람이 없이 홀로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팀은 부서에서 1년 동안 준비한 컨퍼런스를 단 일주일 앞두고 있던 차였다. 그는 보스의 사무실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며 선언한다.

"당신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는 가족을 돌보러 가야겠습니다. 엄마는 내 케어가 필요해요."

미룰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비행편을 구해 바로 고향을 향한다. 아픈 엄마를 보살피고 돌보느라 회사에 돌아오지 못하고 몇 주가 지났다. 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겪었다니 나는 아까부터 충격에 휩싸여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극한의 갈등 상황 속에서 감정에 체포되지 않고 버틴 한 여성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할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세상에.. 어떻게 그걸 다 감당했니." 악재가 동시에 일어나고 또 다른 불행이 연이어 겹쳤을 때 이 일은 그녀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 홀로 떠안기 어려운 일을 겪어낸 시간들이 나는 차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바람이 몹시 불어대던 카페 테이블에서 나는 그의 미공개 이야기를 들으며 덩달아 심란해지던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