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빛을 발굴하는 사람 아만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대해 수군대기 일쑤였다. 어린 아만다는 그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하루도 즐거운 날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의 일상을 들추어 열어보고 마음껏 떠들어대고 싶어 했다. 마을에는 언제나 루머가 돌았고 저마다 사람들의 편견은 강했다. 모든 이들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뒤섞여 본인의 허물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 했고, 동시에 다른 이의 오점을 빈틈없이 찾아내 옆집에 퍼뜨리고 싶어 했다. “그 작은 마을에서 계속해서 머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어.”
동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그의 유년은 그다지 기쁘지도 충만하지도 못했다. 8살의 아만다는 학교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꺼내놓았다. 핑크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학교에 온 아이를 향해 선생님은 이야기를 했다. “네가 손톱에 색을 덧칠한다고 손톱 안에 있는 더러운 때는 가려지지 않아.”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주며 책상을 지나던 선생님의 이 말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모두들 그런 식이었다. 서로를 향해 비아냥대는 태도는 그 마을의 전반적인 풍토였다. 부모님은 이혼을 진행 중이었고, 집에서도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말조심을 해야 돼. 그 말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거든.”
‘넌 좀 특이한 구석이 있어.’ ‘저런 외모를 보고 미인이라고 말하긴 곤란하지.’ ‘오늘 옷차림이 왜 그래.’라는 식으로 빈정거림을 그는 늘 들어왔다. 폐쇄적인 그룹의 속성을 체화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평균이 되고 표준이 된다. 그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혹여 비난을 받을까 봐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한다. 완벽한 상품이 되지 못한 자들은 항상 자신의 외모나 옷차림 따위를 점수로 매기려 드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 가득한 눈빛을 견뎌야 한다.
시간이 지나 자신에게 목소리조차 남아 있지 않은 무성의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상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환경일 것이다. 적어도 아만다에게는 말이다. “사람들은 마치 염소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녔어. 내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이미 잊은 채로 말이야.” 무리들 속에 머물 때 우리는 그렇게 사유의 불능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내가 처음 만난 아만다는 빈틈없는 외모에 긴 금발을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금요일 퇴근 후 우리는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그녀가 이런 유년 시절을 겪었다니 나는 그의 이야기를 얼른 더 듣고 싶었다. 그때 그는 불현듯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언급했다. <Love yourself>라는 제목의 곡이었다.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the way you are)를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그 곡에 담겨 있다고 했다. “응? 방탄소년단?”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는 조금 웃었고, 그는 설명을 계속했다.
너의 고유한 모습에는 주어진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본모습을 자꾸 고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주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녀가 방탄소년단의 팬이자 팬클럽 아미 멤버인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의 맥락에서 이 메시지를 들을 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는 말했다. 앞으로 걸어갈 너의 길을 진정 자신을 위해 결정하라고. 여름 바람이 스쳐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앞으로 그에게 펼쳐질 시간들이 기분 좋게 상상이 되었다.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알맞게 선택해온 이에게서는 내면의 힘이 드러난다. 기대감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그렇게 아만다는 18살에 마을을 떠나 프랑스로 대학을 진학한다. 가장 큰 자유를 만끽한 시절이다. 순간순간을 모두 선명하게 기억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풍족한 선택지가 주어졌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하며 일본어를 공부했고, 지적 호기심은 중국어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리고 한국 K-pop을 알게 되었다.
“네가 부모님 곁을 떠난다는 걸 두 분이 걱정하지는 않으셨어? 집안의 외동딸인데.” “엄마가 그동안 해준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이 선택을 하게 했어. 엄마는 항상 내가 아름다운 삶을 살기 바랐고 관심사를 존중해주었거든. 그때도 말씀하셨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고 이해한다면, 그 사람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면 그 사람이 선택한 길을 응원해줘야 한다고. 그러니 주저앉지 말라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자 멘토이며,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만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러났다.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아만다는 둘의 특별한 연결감을 가감 없이 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최선’을 해주었다고 말이다. 그것이 혹여 부유한 사람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만큼 둘의 심리적 연대감은 단단했다.
‘이만큼이나 서로 의지해온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그 멀리 보낸다는 게 엄마한테는 쉽지 않았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는 여전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포착하고 난 뒤, 아만다는 살짝 미소를 보였다. 그는 이윽고 조금 단정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강조했다. “애리,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가두어 두는 것은 ‘가짜 사랑’이야. Fake love.”
그리고는 어떤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어린아이가 토끼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항상 가슴에 안고 다녔단다. 그러나 그 토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두 팔로 지나칠 정도로 세게 꼭 껴안았다가 내장이 터져버렸다는 무시무시한 얘기였다. 사랑한다면 토끼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품에서 놓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용기를 실현해나간 아만다에게는 늘 어려움이 있었다. 줄곧 의료적 관리가 필요했다. 선천적으로 면역력이 약하게 태어나 보통 사람만큼의 평균에 미치지 못했고, 항상 체력이 약했다. 쉽게 피곤해지고 조금씩 아픈 증상이 늘 있었다. 원인을 찾아낼 수 없고 병명을 알 수 없어서 치료가 유예된 상태로 오랫동안 살아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빗방울에 젖어있는 잔디처럼 조용히 쉬고 있을 때면 주변 사람들은 그를 향해 ‘게으른 아이’라고 혀를 찼다.
“배터리가 5%만 남아있는 상태로 하루를 사는 느낌이었어. 매일 수많은 약을 먹어야 했고, 이유 없이 통증을 느꼈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식이요법도 소용이 없었어. 그러니 의사의 처방을 받으러 고향에 계속해서 다녀와야 했지.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항상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어야 했어. 응급치료가 필요한 상황을 매 순간 대비해야 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장 큰 두려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시 그 작은 마을로 돌아가 이전처럼 살아야 한다는 공포였다. 막막한 체력으로 그는 매일의 일상을 어떻게 지탱했을까. 당장 소진될지 모르는 아주 적은 양의 배터리, 남아있는 5%를 아만다는 어떻게 사용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