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용서란 나를 보호하는 이기적이고 유능한 방법

편견 없이 포용하는 모두의 상담자, 나탈리

by Aeree Baik 애리백

화를 내고 싸워도 부모를 향한 상처 받은 마음이 돌려지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결핍에 대해 표현하며 으깨지고 부서져도 나탈리와 부모와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하지만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만난 이후로 나탈리는 부모를 연민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던 부모의 무게감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신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분노와 결핍감을 마음 깊이 저장해 두지 않고 내 안에서 얼른 나가버리라고 힘껏 밀어내기 시작했다. 성적 매력을 과감히 표출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받던 외모를 천천히 한 꺼풀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길거리에 만난 개들이 서로를 향해 으르릉대며 팽팽한 목줄을 끊어버릴 것처럼 마구 짖어대기 시작할 때처럼 어른이 된 나탈리와 그의 엄마도 비슷한 모습으로 싸워댔다. 조용한 일상 속에서 별안간 우당탕 다툼을 시작하여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싸워댔지만, 본질적으로 나탈리의 마음은 꽤 달라졌다.

“부모와의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어. 부모 자식 관계에서 정의라는 건 없어. 그들은 그냥 저렇게 생긴 사람들이고 난 그걸 받아들이기로 정했어.”
무게중심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부모를 교회로 이끌고 난 뒤 십수 년 동안 이혼 부부로 지내던 나탈리의 부모는 다시 법적 부부가 된다. 같은 상대방과 한번 더 결혼, 그러니까 ‘재혼’을 한 것이다.

“24살 때였어. 아빠를 무작정 끌어안았어. 할 수 있는 한 있는 힘껏. 한참을 놔주지 않았어.”
퉁명스러워 손을 잡아준다거나, 따뜻한 말을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아빠였다. 나탈리는 그때를 회상했다. 나탈리는 오랫동안 자신이 받고 싶었던 포옹의 강도만큼 원망스러운 아빠를 꼭 끌어안았다. 가쁜 아빠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그 일을 기점으로 아빠와 나탈리 사이에 있던 얇은 살얼음 같던 날카로운 벽이 녹아내렸다.
“그때 아빠가 조금 놀랐던 것 같아.”
가혹할 정도로 무뚝뚝하고 딸에 대한 애정이 없던 아빠는 그렇게 딸의 포옹을 받았다.

나탈리는 자신의 방식으로 부모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나탈리를 방치해놓은 채 방황의 계절을 지내게 했던 부모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꾸려갔다. 재혼을 한 부부는 다시 집을 합쳤다. 나탈리의 어린아이들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결코 받지 못했던 사랑과 양육의 손길이었다. 자유분방한 히피 정체성을 고집하며 모든 규율을 거부하고 자식까지 버려놨던 젊은 부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했다.

우리 회사에서 나탈리는 웃음소리가 엄청나게 크기로 유명하다. 같은 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사무실에 모이면 저 건너편의 동료들도 모두 알아챌 정도다.
“어릴 때 말이야, 나는 웃음소리가 너무 크다고 면박을 받곤 했어. 그렇게 과장된 소리를 내지 말라고. 경박하게 웃지 말라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어왔지.”
하지만 그런 그의 면모가 동료들을 주변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나는 한참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큰 웃음소리 속에 숨고 싶어 나탈리를 찾아갔다.

무수히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나탈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적인 이야기부터 회사 내의 이야기까지, 그 방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아마 관리자들은 무척이나 궁금해할 것이 분명하다. 콧대 높고 경쟁심이 강한 저 잘난 인물들이 가득한 이 국제기구에서, 이곳에 제일 어울리지 않는 학력과 성장 배경과 웃음소리를 갖고 있는 나탈리가 어느새 모두의 상담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동료들의 나이나 지위와는 하등 상관없이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모두들 다르지. 히스테리를 부리는 보스에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어.”
동료들은 그 앞에서 이해받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나는 그의 방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내려마시다가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다. 새벽부터 커피를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며 그는 내게만 한 잔의 커피를 뽑아 주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기 전 친구가 일하는 모텔의 바에 들러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고 왔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허름하고 더러운 모텔은 생전 처음 봤다고 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새벽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돌아 나온 것이다.

나탈리의 친구는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더러운 모텔의 바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며 밤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출근 전 아침 시간이 친구의 안부를 물으러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의 아이에겐 자폐증까지 있었다. 나탈리는 집값이 비싼 스위스 제네바가 아닌, 국경 넘어 프랑스 에비앙 부근의 시골에 살고 있다. 제네바로 진입하는 출근길에 친구의 모텔에 들렀다. 그의 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를 해왔다고 한다.

친구의 남동생은 마약쟁이였다. 우울증과 대인기피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에는 집안의 온 창문을 검은 커튼으로 모두 막아놓았고,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방에서 죽기 직전의 시체처럼 살고 있었다. 키가 180cm이 넘는 장신의 청년은 몸무게가 50kg도 되지 않았다. 주삿바늘을 하도 찔러대서 피부가 모두 망가져 몸엔 더 이상 마약을 주입할 혈관을 찾지 못한 나머지, 얼굴에 있는 실핏줄에까지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이었다고 했다. 처참한 몰골이었다. 친구의 어머니와 나탈리가 함께 방문한 그날부터 약 2개월 동안 마약중독자 동생은 밖을 출입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조금 만나고 슬며시 웃기도 하고 햇볕도 보고, 바람도 쐬고. 그리고 2개월 후 마약 중독으로 죽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놀란 채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마약중독자 동생의 장례식장에서 나탈리는 너무 큰 허탈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타인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로 동생을 구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장례식장 뒷자리에 앉아있던 그에게 귀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네가 아무리 애써봤자 소용없어. 관둬. 신이 어딨니? 아무 소용없어. 거봐, 아무 소용도 없다고. 시체가 누워있는 저 관을 봐. 걔는 죽었어.’

속에서 구역이 올라왔다. 그때 나탈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을 해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 소용 있어! 난 친구들을 도울 거야. 네가 아무리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긴다고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거야!”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에 허무하게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나탈리를 돌아보았다. 친구의 어머니는 흐느끼며 울고 계셨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모두 식어버린 커피를 오른손에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를 잡아먹고 있는 현재의 고민이 얼마나 나른한 것인지. 고통이 난무하는 삶의 현장에서 멀어져 책상머리 앞에서 머리만 굴리고 있는 나를 돌아봐야했다. 보스의 히스테리를 고스란히 넘겨받고 체념 속에 지내던 나는 그때 나탈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체를 알지 못할 느낌으로 가슴이 떨려왔다.


어려운 친구의 아픔을 걱정하는 그가, 직장이 파산을 하여 몇 년 동안 수입도 없이 주변 사람들을 돕다가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돌린 이력서가 어느 날 국제기구에 전달된 나탈리의 입사 과정이, 갑작스럽게 명예퇴직을 선택한 전임자 때문에 급하게 전화를 받고 첫 출근을 하게 된 나탈리의 운명이, 인사팀에서 문제 삼은 그의 학력에도 불구하고 때마다 사실 증명을 해줄 조력자가 나타나 주었다는 점이, 그리고는 이곳에서 편견 없이 모두의 상담자가 되어준 그의 마음이, 나는 차마 헤아릴 수가 없어서. 그래서 이날의 기억 때문에 나는 오늘 나탈리를 앞에 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마약쟁이의 장례식에서 그가 보인 충격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이 내게 울림이 있었기에 인터뷰를 청했건만, 그러나 이 많은 유년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내 앞에 쏟아져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용서가 안 된다.’는 나의 표현을 듣고는 그가 덧붙였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가장 빠르고 가장 이기적인 방법이야.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해. 분노를 안고 있을 때엔 그 감정 때문에 내가 흔들려. 어쩔 수 없이 계속 끌려다니게 되지. 결과적으로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로 결정한 거야.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시간, ‘오늘’을 살기 위해.”

자신에게 놓인 오랜 불행에서 빠져나온 그는 내게 분노를 끌어안고 살지 말라고 했다.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그에게 던져버리라고. “이건 니거야.” 하고 반사해버리라고. 다시 분노가 문어 다리처럼 빨판을 뻗치며 내 마음에 기어올라올 때 열심히 떼어내라고. 발이 얼마나 많은지 문어 다리를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맞서 싸운 자신에게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가 되자, 나는 한술 더 떠서 문어 다리를 뜯어서 씹어먹어 버리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건어물을 좋아한다고. 그를 인터뷰하며 깊은 이야기에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려났다. 문제아로 찍혀 마을 어귀의 검둥개처럼 다니던 그가 이제는 주변에 사랑을 나누어주러 다닌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매일 한번씩 꼭 껴안아주곤 한다.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여준다. “넌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란다.” 두 아이 모두 자신이 엄마의 일순위라고 여기고 있다.

나는 마지막 질문으로, 일상을 지탱하기 위한 습관이 있느냐고 물었다. 단숨에 대답이 나왔다.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들고 깊게 향을 맡아. 창문을 열고 시원하게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며 ‘아, 아름답다.’ 속으로 생각해. 곧이어 아이들의 방문을 열고 평화롭게 자고 있는 내 새끼들을 바라보며 ‘내 축복, 보물들..’ 그리고는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읊조리지.” 이 루틴을 매일매일 지속한다. 창밖에 비가 오고 있어도 말이다.

부모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았고, 때로는 그에게 이 사실이 상처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은 때론 어둠과 절망보다 목소리가 작을지 몰라도, 더 강력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나는 나탈리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미술관 카페를 빠져나와 돌아오는 길에 그는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덮어두고 지낸 지 오래되었는데 내 질문에 하나씩 답하는 동안 눈물이 날 것 같아 혼났다고. “듣는 나도 마찬가지였어. 눈물을 삼키느라 엄청 힘들었다. 사랑이 많은 여성의 서사는 이렇게 감동을 준다.” 이같은 너스레를 떨며 여유를 찾은 우리는 흐드러지게 핀 작은 꽃들 사이로 환한 미술관의 정원을 걸어 나왔다.


그 오솔길을 빠져 나오며, 나는 마음을 먹었다. 지나온 과거를 자꾸만 펼쳐보던 나도 이제는 페이지를 넘기고 ‘오늘’을 살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