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증후군? 빈 둥지 탈출!

by Minimum

갓 입시를 마친 딸아이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실제 만남이 아닌 ZOOM을 통해서 말이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끼리 화상으로 술 모임을 하는 것은 보기는 했었지만 막상 딸과 친구들이 화상으로나마 어울려 노는 모습을 직접 보니 한편으론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실컷 자유를 만끽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여행을 떠나야 할 시기에 저렇게 언택트로 어울리는 것도 안쓰럽기도 하고 이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는 것 또한 왠지 시원 섭섭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입시를 끝내고 졸업을 앞둔 딸 주위의 친구들 중에는 성형수술이나 시력교정 수술을 하는 친구도 있고 튀는 색깔의 염색이나 펌으로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 변신하는 친구들도 있다. 아이들은 그동안 입시 준비로 인해 미루어왔던 위시리스트의 체크박스를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사소하지만 필수적인 성인 인증 행정 절차(?)가 하나씩 하나씩 처리되고 있었다. 엄마 또는 아빠에게 속해 있던 아이의 휴대폰 명의와 SNS • *플릭스 계정을 분리시켰고 갖고 있던 본인 명의의 은행계좌로 인증서를 발급받아 혼자서 모바일뱅킹을 할 수 있도록 세팅해주었다. 아기새였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 새가 되어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다.


빈 둥지 증후군 Empty nest syndrome

자녀가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직, 결혼과 같은 이유로 독립하게 되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을 말한다. 빈 둥지 증후군은 주로 양육자의 역할을 맡는 중년의 여성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유사한 용어로 ‘공소 증후군(空巢症候群)’이 있다. 이는 중년의 가정주부들이, 남편과 자식이 자신의 곁을 떠났다고 느끼고 정체감의 상실과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거나, 부모로서의 역할에 과도하게 몰입해 왔거나, 변화 자체를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성격일수록 빈 둥지 증후군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빈 둥지 증후군 [Empty nest syndrome]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심리편, 이동귀)


주위의 선배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엄마와 아이 사이의 관계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고 한다.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에 친구들과 어울리며 음주와 가무를 곁들인 자유를 만끽하느라 귀가시간이 늦어지며 무분별한 생활을 하게 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의 속은 부글부글거린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뒷바라지해서 대학을 보냈는데...' 라며 엄마의 헌신과 희생은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자신의 라이프와 즐거움만을 좇는 아이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고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하던 엄마가 대학 합격한 이후에는 자신을 대하는 게 예전 같지 않아 섭섭함을 느낀다고 한다. 매일 한우를 구워주고 고농축 영양제를 세심하게 챙겨주던 엄마가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며 우스갯소리 같은 서운함을 토로한다. 이렇게 엄마나 아이나 지금의 행복을 포기한 채 전쟁 같은 유별난 고3 수험생활을 감내해내야만 진학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냉혹한 교육 현실의 씁쓸한 뒷모습이다.

필자 또한 교육특구에 살며 외동딸을 키우고 있었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단절녀가 되어 아이 교육이 나의 최고의 직무 인양 올인했었다. 아이의 일과에 나의 일과를 맞추었고 전담 비서, 로드매니저, 운전기사, 주방장 및 영양사, 학습도우미 등 1인 10역을 소화해가며 유난을 떨었다. 하지만 나를 잃어버리고 아이만 남아버린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 비싼 요리 클래스도 수강해보고 운동, 베이킹 등 취미 생활에 빠져도 보고 사람들과도 많이 어울려 보았지만 공허한 마음의 병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자 교육과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이렇게 멍하니 아이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 정도가 아닌 우울과 분노로 둥지를 폭발시켜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벼랑 끝 절체절명의 순간에 큰 용기를 내어 시작한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기 위해 제출할 첫 글을 완성했을 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몇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글에 푹 빠져 신들린 듯 키보드를 두드렸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한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애쓰고 애써도 제대로 된 글 한 편 완성해내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글을 완성했을 때,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그건 도무지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즉 신인新人이 됐다.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중에서


혼자만의 글쓰기가 아닌 독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응원과 소통이 있는 글쓰기는 작가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들썩이게 한다. 브런치와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 경이로운 조회수를 기록했을 때, 작가의 자격으로 매월 초대받았던 영화 시사회, 아름다운 노들섬의 작업실에서 집필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 독자 여러분들의 공감과 응원의 댓글들... 브런치팀의 도움과 독자분들 선사한 이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 질주할 힘을 준 달콤한 당근이었고 따끔한 채찍이었다. *튜브처럼 눈에 보이는 수익이 있는 것도 아니요, 이유 모를 슬럼프에 빠져 오랫동안 허우적거릴 때도 많았지만 글쓰기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내 이름 세 글자 그대로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울감 대신 큰 기쁨과 성취감을 선사해주었다.

엄마라면 아이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잘 키워야 하는 것이 그 어떤 생애 역할보다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와 엄마의 자아는 철저히 분리시켜야 한다. 아이의 성적표는 절대 엄마의 성적표가 될 수 없다. 아이를 통해 못 이룬 엄마의 꿈을 투영시켜 대리만족을 좇아서도 안된다.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바란다면 엄마인 나의 행복을 추구하고 나의 자아를 늘 살펴야 한다, 아이만을 비라보고 있는 엄마의 존재는 아이에게도 큰 부담이며 엄마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후배 엄마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아이와 나의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고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일이라도 시도하라. 취미든 봉사든 재취업이든 못 이룬 꿈이든 그 무엇이라도 좋다. 아이가 다 커서 둥지를 떠난 뒤의 공허함과 외로움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는 엄마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가 필요하기에 미리미리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아이가 전교 몇 등 안에 들어야 성이 차고 OO수학경시대회에 입상해야만 하고 영재교육원에 들여보내기 위해 안달복달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행복과 자아를 찾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아이의 학업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아닌 진심 어린 사랑과 관심이 아이를 훨씬 더 훌륭하게 자라게 한다.

마흔을 훌쩍 넘어섰지만 필자에게는 여전히 꿈이 있다. 이제 막 둥지를 탈출하려는 딸아이보다 어쩌면 내가 먼저 둥지 탈출을 감행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한적한 섬나라에 오랫동안 머물며 요가와 스킨스쿠버를 배우고 원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써보리라. 소설도 써보고 싶고 음식과 여행에 대한 글도 쓰고 싶다. 꿈꾸는 엄마는 늙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모든 여성들, 엄마들이 가족의 행복 이전에 자신의 행복을 먼저 돌보았으면 좋겠다.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가족의 행복, 아이의 훌륭한 성장은 인생의 덤이다. 꿈꾸고 노력하며 행복을 느끼는 엄마를 보면서 자란 아이는 정서적 충만함과 자신감으로 동기 부여되어 긍정적 성취를 이루어 낼 것이다. 우울에 빠져 몸과 마음이 아팠던 나를 위로하던 딸아이가 전했던 말처럼...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여기저기 붙여가며 노트에 정리하는 엄마가 얼마나 멋있는지 알아?
나는 엄마가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엄마가 열심히 글 쓰는 모습을 보면서 해이해졌던 마음을 다잡은 적도 많아.
엄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엄마 자신만 모르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