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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Jun 04. 2024

[프롤로그] 키보드를 두드리면 벌어지는 마법

일단 노트북 앞에 앉자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이 놓인 책상 앞에 앉으면 하얀 캔버스를 앞에 둔 화가처럼 막막하고 아득합니다.


내가 과연 제대로 된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짧은 에세이를 주로 쓰는 제가 이 정도라면 소설가들의 고뇌는 이루 말할 수도 없겠지요.


 저의 글쓰기 루틴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어쨌건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 하니 저 나름대로의 비장한 예(?)를 갖춥니다. 긴장과 압박을 느끼기 위해 집이 아닌 카페에 가서 딱딱한 의자를 골라 자리를 잡고 최대한 비싼 커피를 주문합니다.(밥값 좀 하라는 푸시입니다) 무선이어폰으로 평상시 즐겨 듣는 팝 음악이 아닌 보컬이 없는 잔잔한 재즈 연주곡이나 클래식 음악과 같은 글쓰기용 BGM을 재생합니다. 노트북을 열어 둔 채로 잠시 아니 꽤 길어질 수도 있을 멍 때리기 타임을 갖습니다. 제 피셜 명상의 시간(?)이지요.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메모장에 두서없이 끄적여 놓았던 단어와 문장들을 워드에 마구 흩어 놓습니다. 이제 글쓰기 시작입니다. 오늘도 잘 써낼 수 있을까요?



 비교적 짧은 분량의 에세이라 할지라도 글을 쓰기 전에는 늘 두렵고 막막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결코 제대로 된 글을 완성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글쓰기에 일단 돌입해서 폭풍 같은 몇 시간을 문장과 단어의 숲을 헤매며 조각조각 맞추고 새로 만들어내다 보면 어느새 얼개가 갖추어지고 초고가 만들아집니다. 아무렇게나 토해놓은 토사물 같은 초고를 수차례 수정하고 윤문을 하다 보면 어느새 에세이 한 편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어떻게든 써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 과정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경험입니다.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고의 실타래가 풀려 손 끝으로 예상하지도 못했던 참신한 텍스트가 흘러나옵니다. 손가락을 움직이기 전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들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떠오르기도 하고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글들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면 이게 과연 내가 쓴 글이 맞나, 신병이 들 듯 누군가 내 안에 빙의해 대신 써 준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으니 말입니다. 이 신비로운 메커니즘이 기적이나 마법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는 고통스럽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저는 글쓰기를 사랑하고 여전히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요? 이 마법 같은 기적을 저 혼자만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이 마법처럼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멋진 글일 필요도 없고 훌륭한 글일 필요도 없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쓰기를 멈추는 것은 당신 없이도 계속되는 시간의 기울기와 속도에 다시 빠지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시간이 향하는 길에서 빠져나와 멈춰 서는 것, 혹은 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

글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서 무엇인가를 구해내는 일이다.


 소중한 우리의 삶을 시간의 기울기와 속도에 빠뜨려 이대로 흘러가 버리도록 내버려 두실 건가요? 우리는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자아와 삶을 구해내야 합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로 어떻게 시간이리는 빠른 유속의 강에서 두 발로 버티고 서있게 되었는지, 아직 갈 길이 먼 부족한 작가이지만 저의 글쓰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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