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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Feb 11. 2024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에 대해

내 흐릿한 기억 속에서 처음 혼밥을 하던 날은,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보통 극장이라면 2-3명이 짝을 지어 같은 타임에 일을 하지만 내가 일하던 극장은 손님이 거의 없었고 그 덕에 한 타임에 아무리 많아야 2명이서 일을 했다. 일하는 사람이 적었으므로 자연스레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때도 혼자 갔다 와야만 했다. 그 때 내 나이가 19살이었으니, 생애 처음으로 강제적 혼밥의 기회에 놓인 것이었다.


함께 일을 하던 언니가 알려준 회사 식당은 내가 상상하던 구내식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간이 건물을 세워놓고 뷔페형으로 갖가지 메뉴를 파는 식당이었는데, 내가 일하던 극장 뿐 아니라 주변 회사, 지나가던 택시기사님들까지 모두 손님이었다.

나는 첫 혼밥의 충격을 떠안을 새도 없이 30분 남짓한 식사시간을 맞추기 위해 낯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10명 중 9명은 아저씨들이었고 나머지 1명은 나였는데, 어느 누구도 날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한껏 남 눈치를 봤다. 생애 첫 혼밥을 이렇게 자유 선택의 의지도 없이 맞이해버렸다는 것이 나에게는 꽤 우울하고 슬픈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회사 식당은 다시 가지 않았고 편의점이나 근처 카페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와 휴게실에서 먹었다. 그것도 혼밥이었지만, 그 때만큼은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인 휴게실은 다양한 소음과 사람들로 꽉 찬 식당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대상이었다.


조금 허무하게도 그 뒤로 한참동안 혼밥을 할 기회는 없었다. 학교를 다니고 취업준비를 하는 내내 집 외의 공간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공강시간을 맞추다 보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밥을 먹는 게 일상이었고, 취업준비를 할 땐 애초에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내 생애 첫 혼밥의 기억도 자연스레 흐릿해져갔다.




그러다가 1년 전쯤, 기회는 갑작스레 다시 찾아왔다.

취업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점심은 이제 내가 알아서 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되었는데 (누구도 나서서 챙겨주지 않는다. 물론 다 큰 성인의 점심을 나서서 챙겨주는 것도 이상하고.) 바쁜 일 탓에 점심 약속을 잡지 못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극장 알바생일 때와는 너무 다르게 행동했다.

능숙하게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메뉴를 파는 식당이 회사 근처에 있는지 검색했으며, 식당까지 향하는 길에 제발 웨이팅이 없기를 바랐다. 식당에 도착해서는 주방 가장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정독하다가 날 쳐다보고 있던 직원분에게 이것 저것 물으며 주문을 완료했다. 수란과 닭다리살이 가득 들어간 일본식 우동.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켜놓고 이 메뉴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면서 밥을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 또 와야지 라는 생각은 덤이었다.


밥과 식당의 질이 달라졌기에 그랬던 것일까? 결단코 아니란 것을 확신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이제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아졌던 것이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친구나 가족이 없어서가 아님을 알았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옆자리에서 누가 어떻게 밥을 먹는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삶의 경험이 많거나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지나온 시간동안 나도 모르게 습득한 것들이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점점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어색하고 두려웠던 감정들에 대해 무뎌지고 익숙해지고 용감해지는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그때는 일상이 아니라 좀 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감정에도 의연해지지 않을까? 사무치는 그리움이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찬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나의 죽음까지도. 언젠가는 혼자서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의 연습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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