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문화예술 콘텐츠 번역가’라는 타이틀로 유튜브 인터뷰 요청을 받아 영상을 촬영하던 중, 인터뷰어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아마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는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다. 옆에서 이를 들은 행사 담당자가 “알고 보면 엄청 많이 버실지도 몰라요.”하고 넘겼지만, 그때 알았다. 요즘처럼 K콘텐츠가 잘 나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문화예술은 ‘배고픈 분야’로 인식된다는 걸.
흔히 글을 쓰는 일, 또는 예술은 ‘굶어 죽기 딱 좋은 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문화 콘텐츠 번역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취미로 일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지인들도 더러 있다. 물론, 가족과 함께 살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 집에서 편하게 먹고 자고 생활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부끄럽게도 지금껏 독립도 못 한 ‘어른이’다........ 덕분에 집 월세나 관리비등의 비용은 아낄 수 있지만, 그뿐이다. 취미로 일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한다.
다행히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수입이 없어 손가락을 빨거나 돈 때문에 비굴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면에서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물론,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비수기와 성수기는 피할 수 없다. 1년 중 비수기로 꼽히는 몇몇 달에는(내 경우, 주로 연말이나 연초) 다른 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벌기도 한다. 통장에 ‘귀여운 금액’이 들어오는 달에는 나의 소비 또한 ‘귀여워진다.’ 반면, 하루에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작품, 많은 일이 몰려서 전부 소화하느라 가까스로 번아웃을 피하는 달도 있다.
그럼, 대체 일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냐고? 일이 없을 때도 여전히 먹고 입고, 생활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를 대비해 ‘비상금 통장’에 늘 생활비의 2배에서 3배 정도 넉넉히 채워둔다. 그렇게 해놔야, 혹여나 클라이언트가 제때 번역비를 지급하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하더라도 통장을 들락거리며 불안에 떨거나, 비굴하게 지급을 재촉하지도, 여유와 품위를 잃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번역의 경우, 최종 번역물의 품질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훗날 고품질의 번역물을 생산해 내기 위해 스스로를 잘 챙기고 틈틈이 머리에 지식도 채워 넣어야 한다.
프리랜서는 일이 없다고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일이 없다면 황금 같은 ‘시간’이 있을 테니.
“일이 없는데 시간만 많으면 더 우울해지지 않나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건 그 사람 하기 나름”이라고 답하겠다.
나 또한 일이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 같아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 방황하던 시절이 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한다. 나중에 분명 정신없이 바쁜 시기가 올 테니, 그때 가서 ‘아, 좀 더 놀아야 했는데….’ 혹은 ‘미리 공부나 좀 해놓을걸’ 하며 후회하지 말고, 그전에 미리 자기 몸과 마음을 스스로 잘 보살피고 성수기를 위해 단단히 대비하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