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노동의 동기
요즘 소비하지 않고 행복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에리히 프롬의 저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두고 이야기 나누다가 소비를 부정하는 작가의 입장을 논의하게 되었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소비를 부추기는 우리 사회와 SNS 문화를 비판했고, 모임장은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게.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경치 좋은 곳에 놀러 가도, 심지어 넷플릭스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어도, 결국 다 돈이 드네.’
그런데 나는 소비가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게는 소비가 노동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곤 한다.
사실 나는 미니멀리즘과는 먼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맥시멀리스트 쪽이 더 가깝다. 소소한 물건 사는 걸 너무 좋아하고 유행하는 아이템은 꼭 하나씩 장만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욕망의 화신이다. 다행히 우리 엄마는 이런 내게 “잘 사는 것도 능력이다, 사고 싶은 게 행복한 거야”라며 나의 소비 습관을 바로 잡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다(헤헤, 엄마 알라뷰~).
돌이켜보면 소소한 쇼핑은 내게 늘 열심히 일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중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세련된 옷과 액세서리로 꾸민 동기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었다. 전공이 입시 자체가 영어 면접과 영어 논술로 선발되고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학’이라서인지, 유학파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부모님의 직업도 대학교수나 외교관인 등 화려한 집안 배경을 자랑했다. 명품 가방을 드는 친구들, 세련되고 멋진 패션 감각을 지닌 친구들을 보며 ‘대학이란 곳은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명품까진 아니더라도, 그 해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이나 가방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비싼 학비를 대주시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차마 부모님께 쇼핑할 용돈을 더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내 힘으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용돈벌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돈에 대한 자립심을 기르게 되었다. 잘할 줄 아는 것은 영어뿐이었으니, 영어 과외, 영어 동화책 스토리 강사, 영어 캠프 헤드 티쳐, 영어 웹진 기자 등 영어와 관련된 일라면 뭐든 가리지 않았다. 선배들을 통해 소개받은 번역이나 통역 아르바이트도 아름아름했다. 카페나 화장품점 아르바이트 등에 비하면 수입도 꽤 짭짤했다. 그래서 나로서는 무리해서 애쓰지 않고 돈 버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영어와 관련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더니 어느덧 내게는 ‘스펙’이라는, 취업도 하기 전에 이런저런 커리어 경력이 쌓여 있었다. 종종 함께 일하는 분들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기업 출강 영어 강사로 일할 때는 강사들을 대상으로 강사 평가를 했는데, 당시 나는 최초로 외국인 강사들을 제치고 강사 평가에서 1등을 받은 강사로 스태프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성취감, 자신감과 함께 삶의 경험치 또한 높아졌다. 구두로 ‘돈을 올려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놓고도 훗날 악덕 고용인이 갑자기 말을 바꾸는 바람에 정작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억울했던 경험도 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즘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거나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상대방의 서명을 받은 후에 작업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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