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점쟁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시작한 것은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아내는 별 다른 연유도 없이 그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 쪽에서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남자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기 위해 분투한 나날들을 떠올렸다. 앞만 보고 달렸다. 큰일에 매진하는 만큼 작은 일에는 서툴렀다. 그는 아내를 달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정년퇴임을 하고 여유롭게 남은 생을 누릴 거라 생각했던 그의 기대가 한 번에 깨졌다.
“그러게, 사람을 그리 쥐고 흔들려하니 남아 날 수가 있겠어? 퇴직하고 하루 종일 얼굴 볼 생각하니 저도 참을 요량이 없었겠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적당한 말로 거리를 두는 와중에 죽마고우 하나만이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아픈 남자의 마음을 저런 식으로 후벼 팠다. 늘 그랬다. 남자가 친구와 사회적으로 점점 거리를 두면서 친구는 줄곧 남들과는 전혀 다른 의견으로 남자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남자는 그것이 친구의 열등감이라 믿었다.
‘다 가져도 제 것 하나 없네. 말년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쓸쓸히 홀로 남는 도리밖에 없네.’
그는 텅 빈 거실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수해 전, 거동이 불편한 고모를 모시고 점집을 찾았던 기억이 있었다. 제 운명을 점치기 위해 대학병원을 마다하고 점집을 드나드는 노인네를 남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점쟁이는 몇 차례 부적을 써줬다. 종이 한 장에 거금이 오갔다. 고모는 숨통이 끊어질 듯 기침을 하면서도 두 해를 더 살았다. 고모는 그것이 부적의 효험 덕이라 했다. 뚱하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 민망해 남자도 점을 한 번 보았었다. 그때 점쟁이가 그렇게 말했다. 말년은 쓸쓸하게. 남자는 그 말에 신당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있다. 점쟁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남자의 사주에 낀 단단한 쇠 기운이 아내의 불을 만나 모두 녹아내릴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명색이 이성으로 무장해 진리를 탐구한다는 교수씩이나 되어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에 놀아날 것이 없다고 뇌까렸었더랬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쩐지 그것 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쓰임이 다했을지언정 총채를 털어내듯 먼지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주변 사람들과 망연히 떠난 아내와 홀로 남은 아버지를 옹호하지 않는 자식들. 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말하면 제 탓이 될 것만 같았다. 남자는 기억을 더듬어 점쟁이를 다시 찾았다.
민숭민숭한 얼굴로 반말을 잘도 내뱉던 점쟁이는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어 가는 잔주름이 보였다. 점쟁이는 남자를 대번에 알아봤다. 울산바위도 아저씨 고집보다는 가벼울 거라고 농을 던졌다. 고모의 안부를 묻던 점쟁이는 메기처럼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더니 언질도 없이 뭐라 중얼거리며 점을 쳤다.
“고독하다. 고독해.”
점쟁이는 그러면서 살짝 남자의 팔을 두드렸다. 남자는 갑작스러운 온기에 멈칫하다 이내 점쟁이에게 이런저런 자신의 신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요사스럽게 차려입은 점쟁이는 겉보기와 달리 묵묵히 그의 말을 인내했고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 신이 난 남자는 부적도 쓰고 공양도 올리며 젊은 애들이 말하는 ‘플렉스’를 감행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어쩐지 막힌 혈관이 뚫린 것 같았다. 다음 날 죽마고우를 만나 이야기를 하니 친구의 얼굴이 일순간에 일그러졌다.
“뜬구름 잡을 나이는 지나지 않았는가? 상황이 이렇더라도 정신을 놓아서는 안 돼.”
남자는 어쩐지 훈계하듯 내뱉는 친구의 말에 언성을 높였다. 감히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 드는 것인지, 평생을 남을 가르쳐만 본 남자에게 친구의 타이름은 어깃장처럼 느껴졌다. 그간 불쾌한 속내까지 모두 솎아 친구에게 토해냈다. 씩씩거리고 집으로 온 그는 한숨도 자지 않고 이른 아침 점쟁이를 찾았다.
“아이고, 이렇다니까. 배운 사람들이라고 잘만 사는 것 같지? 안 그래. 자기 분야만 골똘히 연구한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세상 물정 모른다니까. 누굴 믿어요? 평생 살 비비고 산 아내도 미련 없이 떠났는데 누굴 믿어요, 아저씨. 앞으로는 자기 자신만 믿으세요. 그 친구 반드시 아저씨 곁 떠난다. 내가 우리 신에 대고 맹세한다.”
차조심, 개조심, 빙판 조심, 사람 조심, 살면서 누누이 들었던 말임에도 절박한 순간에 그 구태의연한 주의사항을 들으니 남자는 세상 어느 말보다 가슴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곧 연락처에서 죽마고우의 번호를 지웠다. 오로지 자신만 믿기로. 친구는 받아낼 것이 있는 사람처럼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급기야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자신만 믿기로, 그렇다면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자는 몇 날 며칠, 스스로를 믿는 것에 대해 골몰했다.
“아빠, 나 결혼해.”
미국에서 공부하던 딸은 이혼에 무감했다. 내 부모의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엄마와 아빠라는 각자 개인의 일이니 누가 무슨 선택을 하든 자신은 첨언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사태를 관망할 뿐이었다. 조만간 예비신랑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인사를 올리겠다는 말에 남자는 그만 심드렁했다.
딸의 남자는 한국어가 서툴렀고 남자답지 못하게 자꾸만 생글생글 웃어댔다. 딸보다 10살이나 어리다고 했다. 남자는 몇 분도 안 돼 자리를 뜨겠다고 했고 딸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이 정도도 못 해?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이봐라, 평소에는 찬밥 취급하더니 다 꿍꿍이가 있었네.”
“지금 그게 딸한테 할 소리야?”
“너나 네 엄마나 아주 잡것들, 내 희생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평생 아빠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면서. 희생은 나랑 엄마가 했지.”
“싹수없는 년. 니 그 잘난 학위도 다 내 돈으로 만들었다. 네가 어디 네 재주로 미국에서 생활이나 됐겠냐? 음악 한답시고 약쟁이마냥 빌빌 거리던 거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 줬더니 어디 은혜도 모르고!”
“그래? 그럼 돈이라도 줘. 빌빌 거리는 딸내미 축하는 못 해줘도 돈은 줄 수 있겠네.”
“자리에 있을 때는 콧방귀도 안 뀌더니 다 늙어서 저런 무말랭이 같은 거 데리고 와서는 뭐 돈이라도 내놔라? 하여간 점쟁이 말이 다 맞네.”
그러면서 남자는 자신이 점쟁이에게 들었던 불운한 예언들에 대해 말했다. 딸은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듯 동그랗게 눈을 치켜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와, 아빠. 언제 나를 그만큼이나 믿어 준 적이 있어? 평생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안 믿어 주더니 점쟁이를 왜 그렇게 믿어? 아빠 치매야?”
딸의 말에 남자는 폭발했고 그간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숨겨 놓았던 패악질을 한 번에 쏟아부었다. 자리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딸은 양념이 덜 된 무말랭이 같은 제 미래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 남자는 점쟁이를 찾았고 점쟁이는 VIP 고객이 아니면 절대 써주지 않는다는 효험 200프로의 센 부적을 써주었다. 딸은 이후 재차 장문의 문자를 보내 화해를 표시했으나 그때마다 누구도 믿지 말라는 점쟁이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며칠 후, 점쟁이가 전화를 걸어 꿈자리가 뒤숭숭한 게 아무래도 아저씨네 집터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내가 풍수 좋은 모텔 하나 봐 뒀으니까 대충 짐 챙겨서 거기로 가. 집에 계속 있다가는 큰 화를 당해 제 명에 못 산다. 전화기 꺼두고 비밀번호는 내가 점지해주는 번호로 바꾸고.”
남자는 점쟁이의 말에 허겁지겁 짐을 챙겨 서울 변두리 모텔로 향했다. 자기 또래의 추레한 사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손바닥만 한 침대 위에 몸을 뉘이고 남자는 어쩌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는지 복기했다. 그놈의 팔자, 운명이 문제라고 되뇌며 안주머니 깊숙이 자리한 부적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수양하는 마음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꼬박 채워나갈 때쯤 갑작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여니 친구가 있었다. 당황할 틈도 없이 문을 밀고 친구가 들어와서는 이것 좀 보라고 했다. 사진이 제멋대로 흔들려 있긴 했지만 자신의 집이었다. 위아래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점쟁이였다.
“자네가 연락이 너무 안 돼 집에 찾아갔더니만 글쎄, 이 사기꾼이 자네 집에서 숙식을 하고 있더라니까. 친구들까지 불러서 술판을 벌였다고!”
남자는 친구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사기꾼이라니!”
“이걸 보고도 몰라? 이 놈이 사기 친 거야. 정신 좀 차려. 우리 동네 제일가는 수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원. 내가 당신 안사람한테 연락해볼게. 그쪽도 시간이 지났으니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았을까? 어때?”
“안사람은 무슨. 이제 다 끝난 인연이야. 게다가 그 여자는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하다고.”
친구는 말이 통하지 않는 남자를 답답한 얼굴로 지켜만 보았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싶다가도 지친 얼굴이 안쓰러웠다. 고집 세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도 어리고 철 모르던 시절 가난을 함께 견딘 동지였다. 그 부모들 사이도 어찌나 우정이 두터웠는지 남자만큼은 마음 상해도 의리 지키며 평생 친구 하라는 부모의 유언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그간 몇 번이나 토라진 마음을 달래며 이어 온 관계였다.
친구의 원성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짐을 쌌다. 그간 해도 들어오지 않는 쿰쿰한 방 안에서 지내려니 가만히 누워 있어도 삭신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그는 친구의 고집을 핑계 삼아 못 이기는 척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쉰 내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났다. 집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사태를 보아하니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점쟁이가 한 번 더 들어와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동시에 값비싼 물건을 다 털어간 것 같았다. 금고에 들어있던 비상용 현금도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여보게, 이게 무슨 난리야. 당해도 아주 제대로 당했어.”
친구는 자신의 일인 양 주저앉아 땅을 쳤다. 남자는 포화를 겪은 듯 폐허가 된 집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말했다.
“점쟁이 말이 맞았네. 내가 평생 남들한테 빨대 꽂힐 팔자라더니. 나 말고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더니. 그렇지, 점쟁이도 남인데. 나는 내가 믿는 것을 믿어주는 것이 나를 믿는 일이라 생각했지. 내가 바보였어.”
“허, 이 사람아…….”
경찰에 신고는커녕 화를 낼 의지도 없는 남자를 친구는 한참이나 바라보다 집을 떠났다.
여러 차례의 신호음에도 점쟁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당에 들렸으나 그곳 주인은 세도 제대로 내지 않고 야반도주한 점쟁이를 욕할 뿐,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친구는 더 이상 그를 타이르지 않았다. 딸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이미 미국으로 따나고 없었다. 아내의 친정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그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자기 집 거실에 앉아 소주 한 병을 들이켰다. 그간의 기억들을 갈무리하자 자연스럽게 침묵 같은 냉기가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나 자신이 정말 속은 걸까? 내가 정말 당한 걸까? 그러기엔 점쟁이의 점괘가 너무나도 정확했다.
“다 가져도 제 것 하나 없네. 말년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쓸쓸히 홀로 남는 도리밖에 없네.”
이제는 없는 번호가 되어버린 점쟁이에게 남자는 밤이 새도록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