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의 새로운 만남을 기도합니다.
나는 이별 뒤에 만남을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만남과 이별들이 있었네요. 반백년을 살아오면서 숱한 이별을 겪었고, 나이가 들어 이제 조금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별은 여전히 슬프고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이별이 지나간 후 다시 만남이 찾아와도, 그 만남에도 애잔한 슬픔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아기로 태어나 살아가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서클이라 하더군요. 살아간다는 것이 만남과 이별, 이별 뒤에 다시 만남으로 서클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4년 전에 이별했던 한 아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유아기 때 유니콘 인형을 애착물로 늘 손에 들고 다니던 아이였지요. 마지막 놀이 장면이 떠오릅니다. 상상놀이에서 유니콘이 죽어서 슬프다고 울고, 하늘나라 가서 천사들과 행복하게 살라고 기도하며 무덤을 만들어 묻어주고, 유니콘은 하늘나라 가고 자신은 엄마랑 살 거라고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고, 눈물을 닦으며 다시 들어와 무덤 속 유니콘을 꺼내어 목욕시켜야 한다고 데리고 갔지요. 유니콘을 두고서는 그냥 떠날 수 없었나 봅니다. 자기가 그린 유니콘 그림은 내게 선물로 남기고 갔어요.
유니콘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7살 유치원에 다니던 그 아이가 자라 4학년이 되었답니다. 어릴 적 놀이실에서 모래 놀이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네요. 만나자마자 첫인사로 "선생님 집에 성모 마리아상 있어요?" 묻습니다. "성모 마리아 예뻐요?" 묻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내 가슴에 콕 맺힙니다. 자기만의 상상 세계에서 문을 닫아걸고 지내던 아이가 조금씩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유니콘 그림만 그리던 아이가, 자기 관심 밖의 것에는 눈도 돌리지 않던 아이가 선생님이 좋아하는 빙고게임놀이를 같이 합니다. 처음 해보는 놀이가 낯설고 어색하지만 "저 잘하고 있어요?" 확인해 가며 굳은 표정으로 따라 하면서 빙고를 외쳐 보기도 합니다.
다시 만나리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별 뒤에 만남을 기약하지 못했지요. 많은 아이들을 떠나보내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맑은 눈망울 그대로 키가 성큼 자라 버린 아이를 보며 내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인사했지만 지금 이 마음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반가움인지, 아쉬움인지, 애틋함인지, 흐뭇함인지, 어쩜 이 모두일지도 모르겠군요.
아이 엄마 손을 잡고 "애 많이 쓰셨네요." 한마디 말밖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더군요. 아이를 이 만큼 키워내느라 얼마나 많은 사연과 아픔들이 있었을지 모르지 않습니다. 홀로 흘린 눈물과 고통의 밤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 마음을 헤아려보기만 할 뿐, 다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모른다고도 할 수 없겠네요.
엄마와 딸. 내 엄마에게는 딸이었고, 내 딸들에게는 엄마입니다.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사람일까요. 좋은 엄마이고 싶고, 착한 딸이고 싶은 엄마와 딸. 나는 착한 딸이고 싶었지만 한때는 못된 딸이었고, 엄마는 한때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서운한 엄마였지만 한없이 좋은 엄마이고 최선을 다하는 엄마였어요. 엄마로서 아직 부족함이야 있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좋은 엄마, 최선을 다하는 엄마로 살고 있으며, 딸들도 착한 딸이고자 무던 애쓰며 자라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와 딸이 인생의 숱한 고비들은 넘으며, 따로 또 함께 서로에게 지지와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참으로 많이 애쓰고 수고했다고 도닥여주고 싶은 밤입니다.
이별은 슬프고 가슴 저리게 아프지만 이별 뒤에 또 다른 만남을 기도합니다. 이별과 만남 뒤에 또 다른 무엇이 있을지, 한걸음 내디딤 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