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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얼 May 12. 2020

[방구석 공모전 당선작] 이보미_수현의 위층

[소설] 현실과 상상이 분간이 안 되는 몰입력을 보여 준 월터의 상상


방구석 공모전 당선작 소설 부문 / 터의 상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는 틈날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현실과 상상을 선명하게 보여 주면서 몰입력을 이끌어 낸 작품에 주어지는 상입니다.


수현의 위층
글_이보미

  끼이익, 끼익. 수현은 천장을 올려다본다. 윗집은 대체 뭘하길래 이런 소리를 이렇게 오래 내고 있는 것일까. 몇 시간째인지 모르겠다. 수현은 분노를 넘어 호기심을 느낀다. 도대체 뭘 하는지 숨어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층간 소음으로 위층에 찾아가는 것도 불법이라지. 수현은 냄비에 물을 받아 인덕션 위에 올린다. 설령 합법이라 하더라도 내가 올라갔을까,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물이 금세 끓어올랐다.     

  라면을 해치운 수현은 창가에 바짝 붙어 오후 햇볕을 쬐고 있다. 마스크 5부제에 따르면 오늘이 수현의 마스크 구매 가능일이지만 수현은 나가지 않는다. 단순히 귀찮아서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숭고한 양보를 했다고 합리화한다. 책이라도 읽을까 책상 앞에 앉는데 위에서 쿵쾅거린다. 아니 쿵쾅 보다 더 복합적인 소리가 들린다. 쿵 꽉 끼익, 쿵, 끼익. 수현은 책 대신 핸드폰을 집어 든다. 시끄러워서 책은 못 읽지만 시끄러워도 핸드폰은 잘만 한다.      

  SNS 피드를 엄지로 휙휙 밀어 올리다 게시물 하나를 클릭한다. 수현이 좋아하는 웹툰 작가의 계정이다. 수현은 유명해지기 전의 그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10년 전 쯤, 그때는 수현도 그림을 그릴 때여서 미술 한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종종 나갔었다. 그는 그때도 만화를 그린다고 그랬다.     

  수현은 웹툰 페이지에 들어가 그의 그림을 본다.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그린 듯한 그의 그림이, 그럼에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그의 감각이, 그의 잘생긴 얼굴이, 그의 유명세가, 그의 팬들이, 부러웠다. 그의 SNS에 들어가 예전 게시물들을 복습까지 한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건 식지 않는 시기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몇 번이고 보았던 예전 게시물들을 또 본다. 루꼴라와 토마토를 넣어 예쁜 접시에 담아낸 파스타. 그 아래에 달린 댓글도 지겹게 읽었다.      

  [맛있었어(엄지), 또 해줘!]     

  수현은 생각한다. 나는 그때 그와 친해질 수 없었던 걸까. 그러면 그의 피드에 등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가 해 준 음식을 당연하다는 듯 삼키고는 맛있었다고, 또 해달라고 댓글을 달수도 있었을 텐데. 수현은 슬퍼진다. 그런 걸로 슬퍼지는 자신이 웃긴다고 생각한다.   

  쿵. 쿵.     

  윗집에서 나는 소리가 더욱 심해졌다. 이러다 천장 뚫리겠네. 수현은 고개를 천장을 바라본다. 쿵. 끼익. 쿵. 수현의 머리 바로 위였다. 아니 점점 옆으로 옮겨가는 듯했다. 수현은 집주인에게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집주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재택근무 중에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근무지 이탈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만약 근무지 이탈로 인한 코로나 감염이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이탈자 본인에게 있다는 방침을 전해 들은 바 있다. 수현이 할 수 있는 일은 천장을 올려다보는 대신 쥐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는 것뿐이었다. 그때 그의 SNS에 새로운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이사 온 집에 소파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몇 시간 째 정하지 못하고 있다]     

  글귀와 함께 올라온 것은 소파 사진이었다. 뒤로 보이는 방의 구조가 수현의 방과 일치했다. 순간 수현은 천장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쿵. 끼익. 유심히 들어보니 소파를 옮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액정 속 소파 사진의 하트 개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혹시 이 사람, 위층에 사는 것 아닐까. 근거 없는 생각은 순식간에 확신으로 변한다. 그를 늘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언젠간 만날 것 같았으니까, 이런 날이 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가 위층에 사는 것 같다. 확신이 서자 수현은 위층으로 올라가고픈 충동이 일었다. 재택근무 중 근무지 이탈이라는 것도, 층간소음으로 위층에 올라가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도, 수현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수현은 마스크도 끼지 않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쿵, 끼익, 소음이 점점 생생하게 들렸다. 머리 위로 울리던 소음은 이제 수현의 온몸을 흔들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왼쪽으로 꺾어 돌자 저 위로 현관문이 보였다. 문 안에서 열심히 만들어내는 소음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저 안에 그가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언유주얼 '방구석 공모전' 소설 부문에 당선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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