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와 또 다른 친구 J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핸디솔루션을 시장에 침투시키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전략을 세워야 했다. 이때부터 제주도 내 모든 숙박업체에 방문 영업을 시작했다. 호텔, 모텔, 펜션, 게스트하우스, 제주시, 서귀포시 가릴 것 없이 무작정 찾아갔다. 지인 소개로 가기도 하고, 지나가다 보이면 바로 들어가 솔루션 소개서를 드리고, 필요하면 상담을 이어갔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인사하고, 소개했지만 하루 10곳을 영업하기에도 벅찼다. 전략을 세웠지만 전혀 전략적이지 않았다.
사람이 필요했다. 사용자만 늘어나면 숫자가 보였기에 한 사람이 더 영업하면 사용자가 더욱 빠르게 늘어날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더 빠르게, 더 많이 영업을 나섰다. 한 달 만에 도내 굵직한 숙박업체는 다 방문한 것 같다. 뚜렷한 성과가 없어 고민할 때쯤 지인을 통해 만난 제주 시내 대형 호텔 지배인에게서 요즘 관광 트렌드를 듣게 됐다. 최근 호텔은 여행사 거리 비중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핸디솔루션은 여행사와 숙소 연결이 핵심 BM인데, 정확한 시장 분석이 안 된 나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이제는 OTA를 통한 개인이 90%, 여행사가 10%라고 하며, 사업의 미래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고 했다. 처음 받은 부정적인 피드백이었다. 그러던 중 한림에 있는 꽤 규모가 큰 리조트 총괄 지배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얘기 나누고 싶다고.
170개의 방이 있는 큰 규모의 리조트였다. 나와 직원 둘이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며 리조트에 방문했다. 친절하게 맞아주는 지배인과 인사를 했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지배인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몇 년 전 핸디솔루션과 같은 시스템을 준비했었다고. 본인도 가능성을 봤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시장이 바뀌었고, 이제는 늦었다고. 핸디솔루션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아이디어, 프로토타입, 베타 서비스까지 진행했던 핸디솔루션의 진짜 주인이 없다는 건 큰 리스크였다. 만약 그가 있었다면 시장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던 건지 너무 궁금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이템에 대한 시장 조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친구의 경력을 전적으로 믿었고, 여행 시장을 전혀 몰랐다. 사업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시장 분석을 다시 하기로 했다.
2018년 제주 관광객 입도 현황을 보면 개별 여행객이 70% 수준(2025년 현재는 90%에 육박하고 있다)을 차지하고 있었고, 개별 여행객의 90% 이상은 OTA 또는 플랫폼을 이용해 항공권, 숙박, 렌터카 등을 스스로 예약하고 있었다. 여행사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는 시장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정보 불균형이 많이 해소되고, 경쟁이 심화히면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OTA의 힘이 강력해졌고, 기존 여행사의 수수료 체계인 입금가 개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핸디솔루션은 여행사가 사용하는 렌터카 실시간 예약 솔루션을 벤치마킹했는데, 이 솔루션으로 렌터카 예약 대행 수수료가 점점 낮아지는 걸 보면서 핸디솔루션 또한 오히려 수익 구조가 약화할 것으로 보였다. 한참 후에 알게 됐지만 결국 렌터카 솔루션은 실시간 가격 비교 플랫폼으로 넘어갔고, 현재 렌터카 예약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숙소는 그동안 갑의 위치에 있던 여행사와의 거래를 줄이고 있었다.
BM이 흔들렸다. 여행사-숙소의 관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또 선택의 순간이다. 핸디솔루션 출시 반년 만이다. 우리는 포기를 할지 작은 비즈니스(현재 렌터카 솔루션 같은 BM을 생각하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를 할지 선택해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J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무너지는 시장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J를 설득할 자신은 있었다.
사업은 매 순간 선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