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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Apr 04. 2024

봄의 찰나

벚꽃 엔딩

그렇게 기다렸건만 피자마자 비가 옵니다. 참 야속합니다. 사람들의 예측도 가볍게 무시하고, 필 듯 말듯 그렇게 약 올리며 평소보다도 훨씬 늦게 폈으면서, 마치 서로 짠 것처럼 피자마자 비를 부릅니다. 비를 그렇게 반기더니 함께 비가 되어 내립니다. 동화 같은 풍경 넘어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지는 벚꽃이 아쉽지 않았습니다. 피는 벚꽃에도 감동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땐 모든 것이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시간도, 가족도, 친구도, 벚꽃도 영원히 내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떨어진 벚꽃은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었던 때였습니다.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거리보다 미래의 나를 바라보는 거리가 짧아졌음을 느끼게 되면서 영원이란 단어는 내 삶에 대입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찰나에 집중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하나에 한 가지에 집중하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시간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자기 전, 이불 속에서, 그동안 놓쳤던 찰나들이 자꾸 떠올라 열심히 후회도 하면서.


이렇게 벚꽃 시즌은 한 번 더 지나갑니다. 다른 것들보다 벚꽃에 유독 아쉬움을 더 쏟는 이유는 정말 짧은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훨씬 예쁜 곳도 한 달 이상 얼굴을 보여주는데 지가 뭐라고 이주 만에 돌아가 버립니다. 그마저도 올해는 완벽한 작전으로 일주일 만에 사라지고 말이죠.


제주는 벚꽃을 가로수로 심은 곳이 많아 사실 벚꽃 스폿을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시즌에 거리에 나가 걷다 보면 어디에서나 벚꽃을 만날 수 있으니깐요. 바람의 포근함이 느껴질 때 만약 제주에 머물고 있다면 밖으로 어디든 나가 찰나를 즐기세요. 그리고 집중해 보세요. 딱 열흘 피우기 위한 355일의 벚꽃의 노력이 보일지도 몰라요.


애월읍 고성리
남원읍 위미리
서귀포시 효돈동
조천읍 대흘리
제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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