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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Apr 27. 2024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은 오지 않길

포도뮤지엄 세 번째 전시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머리칼 -본능적으로 우리는 머리칼은 검은색이라 생각합니다- 사이로 삐져나오던 새치가 이제는 새치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검은 머리칼을 침범할 때, 해와 누가 이기나 싸우던 내 눈은 구름 뒤에 숨어 조금의 존재감만 보이는 해에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때, 아이들은 펄쩍 잘만 뛰는 계단 두 칸도 그 충격이 양쪽 무릎에 오롯이 전달되는 감각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쉽게 따라 하지 못할 때, 내가 나이가 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일상에서 그 순간을 만날 때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 기분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나이를 먹을 때 함께 늙고 계시던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함께 지내온 세월보다 헤어지기까지의 시간이 짧아졌음을 인정해야 할 때 뭉클해 집니다.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이 듭니다.


2021년 개관한 포도뮤지엄은 세 번째 전시인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아가, 봄이 왔다>(2021),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2022)에 이은 세 번째 ‘공감 전시’입니다. 언제나 울림이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포도뮤지엄 전시었는데, 이번 역시 많은 영감을 얻은 좋은 전시였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은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오늘날, 노년의 삶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온기를 더하고 세대 간의 공감을 모색하고자 마련했습니다.


사람의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난 만큼 인생에서 노년이 차지하는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노화는 신체적인 쇠퇴와 함께 우리의 삶에 예기치 않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저출산 세대에 지워질 부양의 무게가 공동체를 지탱해 온 공감과 연대마저도 무서운 속도로 붕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 듦을 단지 피해 가고 싶은 비운으로 치부하지 않고 어쩌면 더욱 아름다운 삶의 고유한 순간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전시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는 노화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지저하증을 통해 한 사람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고독의 순간을 예술적 시선으로 집중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기억의 연속성을 해체하고 사물과 감각의 지층을 서서히 허물어뜨리는 과정으로, 마침내 우리를 완전히 고립시켜 내면의 무한한 공간 앞에 홀로 서게 합니다. 그렇기에 이 전시에서 인지저하증은 단순한 질병의 형태를 넘어서 영혼의 가장 외딴 구석까지 탐험하게 하는 은유입니다. 이것이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모든 생명의 불가피한 취약함에 공감할 때, 그럼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삶의 위트를 빛나는 조각보처럼 엮어내고 있는 예술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과 존엄함을 발견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뜻하게 교차되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아름다운 날들’을 함께 그려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연결되어 살아갈 순간순간이 어쩌면 모두 아름다운 날들이기 때문입니다.

- 기획자 김희영



루이스 부르주아, <밀실1>, 1991

밀실처럼 하나의 공간이 낡은 문짝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틈 사이로 밀실이 보입니다. 오래된 철제 침대, 의료 도구, 유리병, 그리고 낡은 매트리스 위에 놓인 우편 자루와 자루에 쓰인 붉은 텍스트가 보입니다.


‘I need my memories, they are my documents’, ‘Art is a guarantee of sanity’, ‘Pain is the ransom of formalism’


밀실과 글귀는 이 안에 있던 누군가를 상상하게 합니다. 고립된 밀실에서 단절되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빨간색으로 쓰인 글귀는 현실에 격렬하게, 끝까지 맞섰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의미심장한 글귀는 작가의 일기장에서 발췌한 것들 것들입니다. 작가가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관찰자와의 거리감을 팽팽하게 유지하여 보호와 고립의 양가적 감정을 상징합니다. 작가는 기억과 불안, 욕망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주제로 작업을 했는데, 특히 이 작품에서는 유년 시절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루고 있습니다. 육체적 고통과 그것을 지켜보는 두려움이 서려 있는 이 공간엔 작가가 숙고하여 배치한 자신의 개인 물품들이 들어있습니다.



쉐릴 세인트 온지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 2018-2020

장난꾸러기 할머니의 모습이 왜 이렇게 울림을 줄까요? 사진 속 할머니가 제 기억에 자리 잡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리광 부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마치 떼를 쓰는 것 같은 모습도 사진에 담겨 있고요. 그런데 할머니를 사진에 담은 작가는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에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서로의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 현실이 할머니의 모습처럼 마냥 행복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행복해하고 있네요. 관찰자의 시점이 아닌 할머니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진의 대상은 작가의 어머니입니다. 쉐릴 세인트 온지의 어머니는 2015년 혈관성 치매를 진단받습니다. 농장에서 수십 년간 함께 살아온 모녀가 공유하던 추억과 감정은 어머니의 기억과 함께 점점 상실되었고, 작가는 사진 작업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런 중 나른한 햇살이 창에 스며드는 어느 오후에 문득 작가는 어머니를 바라보게 되었고, 어머니의 삶 속에서 가볍고도 명랑한 순간들을 포착하기로 결심하고 작품을 완성합니다.



민예은 <기억이 어떤 형태를 이룰 때>, 2024

공간이 조각나고, 조각이 다시 공간이 됩니다. 만약 기억이 조각난다면 이렇게 뒤죽박죽되는 걸까요? 조각나버린 복잡하기만 한 기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공간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의 조각난 공간과 기억에 집중하게 됩니다. 마치 저 조각이 무슨 조각인지 알아내려는 노력하는 것처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소환할 때마다 매 순간 왜곡되거나 재구성되는 기억의 본질적인 모순과 허구성을 탐구하였습니다. 작가는 비선형적인 시공간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낯선 환경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수집한 물건들에 담긴 개인적이고 고유한 사연과 함께 일상의 사물에 부여된 친숙하고 보편적인 정서를 끄집어냅니다. 작가는 이러한 설치를 통해 관람자가 개개인의 기억을 재조명하고 연결 짓는 과정을 유도합니다.



데이비스 벅스 <재구성된 풍경 39>, 2022

우리의 시야가 조각나 있습니다. 조각나 버린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조각난 기억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들판에 지어진 오두막집 창을 통해서도 풍경을 감상해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게 쪼개져도 하늘과 들판입니다. 본원적인 풍경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풍경화의 기능을 상실하고도 여전히 또 다른 풍경을 펼쳐내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파괴의 흔적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상실,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제각기 모두 다른 조각과 모양으로 분절된 하나의 풍경은 같은 것을 바라볼지라도 다르게 인지할 수밖에 없는 감각의 한계와 실재를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강서경 <그랜드마더타워 #23-02>, 2022-2023, <좁은 초원 #19-10>, 2018-2019

구부정하게 서서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어디 있든, 뭘 하든 시선을 놓치지 않습니다.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보고 싶습니다.


생전에 화사한 색상의 옷을 좋아하셨던 작가의 할머니를 회상한 <그랜드마더타워>는 갈대를 엮은 바구니 소재에 여러 색의 실크 천을 직조한 조각입니다. 삶의 끝에서 구부정해진 노년의 육체는 아슬아슬하게 벽에 기대고, 사람에 기대어 섭니다. 그러나 기대어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면, ‘손주’를 상징하는 듯한 <좁은 초원>은 마치 모자를 쓴 인형의 모습 같습니다.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듯한 발에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새로운 세대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에 집중할수록 자꾸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오버랩됩니다. 그들과 함께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고, 아직은 오지 않은, 우리의 시간을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할 순간이 마치 곧 닥칠 것 같은 불안도 몰려옵니다. 그런데 전시를 통해 용기를 얻습니다. 그 순간은 우리의 관계가 해체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을 기대해 봅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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