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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ug 09. 2021

언젠가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겨질 때


매 해 더위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여름.

더위도 더위지만 섬의 여름은 유독 비도 많이 오고 습해서 몸이 축축 처지고 입맛도 뚝 떨어진다.

이럴 때 일 수록 혼자 사는 사람은 더 잘 먹어서 내 건강과 내 한 몸을 더 챙겨야 한다.

내가 아프면 우리 집은 올스톱이니까.


제일 좋아하는 여름 반찬은 엄마의 노각무침이다.

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면 항상 생각나는 음식이고  아삭한 식감과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은 무더위에도   그릇 뚝딱 비우게 해주는 천하무적 반찬이다.

어렸을 때 여름이면 엄마가 꼭 해주던 반찬이었는데 엄마랑 428km 떨어져 사는 지금 그 맛이 제일 그립다.


엄마가 만들 때 곁눈질로만 보아왔던 노각무침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오일장에 가서 노각을 사기로 한다.

노각 철이라 그런지 빨간 바구니에 노각이 줄이 세워져 담겨있다.

계속 들여다보아도 어느 노각이 좋은 노각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파는 삼춘*에게 물었더니 “이게 좋다” 하면서 커다란 노각 두 개를 봉지에 담아주셨다.


집에 돌아와 고추장, 마늘, 설탕, 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고

노각을 깎고 썰어 소금에 절여놓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엄마가 가끔 반찬과 김치를 택배로 보내주고는 하는데 제주도는 육지에서 택배를 보내면 기본 3-4일은 걸려서 바로 무쳐먹어야 하는 이런 무침류는 그 맛 그대로 받기가 힘들다.

엄마의 맛이 그리울 때면 곁눈질로만 보아왔던 엄마의 요리를 하나씩 해보는데 가끔은 그 맛 그대로 재현을 해내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엄마의 맛을 흉내 내는 요리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엄마와의 작별 시간이 가까워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제주도에 살면서 자주는 못 보고 1년에 한두 번 엄마, 아빠를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엄마, 아빠의 시간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가 보내주는 김치와 반찬이 든 택배를 받을 때면 언젠가 이 택배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상상한다.

그때는 엄마의 음식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맛이 되겠지. 세상의 순리대로 살아진다면 나의 고양이도 엄마, 아빠도 나보다 먼저 떠날 테고 나는 이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지금은 혼자 살아도 외로움을 잘 모르고 사는데 그때는 도넛에 있는 구멍처럼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끓어 안고 살아가겠지.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그때가 아닐까.

언젠가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겨질 그 순간.





*제주도 방언. 남녀 상관없이 손윗사람에게 ‘삼춘’이라는 호칭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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