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도, 목섬
글쓴지 몇 백일이 넘었다는 브런치의 경고를 불편한 마음으로 애써 무시하다 날이 풀린 기념으로 용기 내 다시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은비를 더 다양한 곳으로 모시기 위해 은비마차를 작년말에 마련한 뒤 방배동 인근에 한정되었던 산책 반경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20대 대선이 있었던 지난 수요일 아침 산책을 하는데 날씨가 따끈하니 좋아서 바다를 좋아하는 은비와 바다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서해로 정하고 대부도를 갈까 하다가 그 옆에 선재도를 가면 간조때 걸어서 목섬까지 갈 수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출발했다. 오후 한 시쯤 출발하니 다들 날씨가 좋아 투표하고 놀러 나왔는지 대부도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차가 막혀서 약 한시간 반쯤 걸려서 선재도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얘서 울적했는데 도착하니 바다쪽 하늘은 꽤나 파랬다.
해변으로 내려가니 물이 다 빠져있어서 선재도에 바로 붙어있는 목섬 너머 꽤 멀리까지 길이 열려있었다. 은비는 바다에 가면 보통 파도와 싸우느라 흥분상태인데 (아무래도 파도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쫓으려고 달려가서 짖고 난리를 피운다.) 파도가 없으니 평소의 은비 모습으로 점잖게 걸을 수 있었다.
동네 소문난 선비견인 은비도 사실 가끔 달리고 싶어하는걸 알고 있지만, 나는 학창시절 100미터를 20초에 주파하고 릴레이 달리기 경기가 있을때마다 후보에서 제일 먼저 제외되었던 공공연한 달리기 혐오인으로 은비의 질주욕을 채워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이번 선재도 산책에는 러닝메이트도 섭외하여 좀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은비의 친한 동네언니 중 하나로 달리기는 꽤 잘하는 친구다.
좀 더 멀리 걸으니 우리밖에 없었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꼭 가고싶은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 아주 잠깐 스쳐지나가기도 하는 풍경이었다. 평소 새에게 관심이 많은 선비는 갈매기들 구경하느라 바빴다. 갈매기들은 관심도 안가져줬지만.
모래길을 30분 넘게 걸었더니 발목이 아파왔다. 시간은 아직 3시가 좀 넘은시간...일몰시간은 6시 반으로 세시간이 넘게 남았다. 해가 언제 이렇게 길어졌지? 들고 온 외투를 돗자리 삼아 자리를 펴고 쉬었다.
개랑 사람은 닮는다더니 은비도 나를 닮아 쉽게 지치고 금새 졸려한다. 처음 왔을땐 안그랬던 것 같은데...배는 한껏 더러워져선 졸린 눈으로 드러눕는 은비.
늦은 오후가 되니 기온이 빠르게 낮아져 공기가 차가워졌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점점 더 추워져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를 이동해서 걷는다.
애써 운전해 왔는데 서해까지 와서 노을도 안보고 갈순 없어서 온몸으로 피곤하다고 말하는 은비를 달래며 노을을 기다려본다.
엄마 생각이 날때쯤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다에 멍하니 앉아서 해가 지는걸 기다려서 보는게 얼마만인지 싶었다. 은비랑 여기 저기 산책다니는 모습을 보면 지인들이 대단하다거나 은비 행복하겠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사실 내가 은비 덕에 그 전에 하지 못했던 것과 보지 못했던 것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오히려 은비가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수도...
무사히 노을 산책 및 촬영까지 끝내고 바닷가 옆 선재치킨 집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오늘 산책 성공적으로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