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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은 Jul 13. 2024

감정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

4.

반가워요.

그간 무탈하게 잘 지냈나요?

저는 지난 며칠 이젠 먹구름이 다 지난 것 같다고 느끼다가도, 한없이 허망하고 빠져들기도 하는 시간들을 보냈어요.  

마음이라는 게 손바닥 뒤집듯 한 번에 나아지면 좋을 텐데  보통 이런 과정을 지나며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아, 나 잘 빠져나왔구나. 깨닫게 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네, 심리치료사도 똑같이 이렇게 살고 있답니다.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 마음이 언제나 모범적인 상태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을 정도의 상태로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 심리치료사라는 직업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놀이 심리 상담 첫 시간에 하고 싶은 놀잇감을 잔뜩 싸 들고 온 여자아이를 만난 적이 있어요.

첫 시간 내내 아이의 작고 이쁜 입에서 나온 말들은 "진짜 이상해." "못생겼어." "이건 망했어." "완전 끝났어."와 같은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이었어요.

"그래? 요기 사인펜이 삐져나와서 속상했구나? 근데 그래도 이 토끼는 정말 귀여운걸."

저의 반응을 듣고 미소 띤 얼굴로 또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도

"선생님. 이거 저기 밖에 거울에 붙일래요."

"와, 정말 귀엽다. 그런데 밖에 붙이는 건 선생님이 결정할 수 없는 일이야. 이따 나가서 밖에 계신 선생님께 여쭤보자."

"...... 그럼 찢어버릴거야."

본인이 바라는 그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을 거부했다는 느낌에, 쉽게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 아픈 마음을 극단적인 언행으로 드러내거나, 그렇게 되기 전에 스스로 원하는 것의 반대로 말하는 습관 때문에 만나게 된 아이였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완성된 한 인간이 되기까지는 정말 큰 사랑과 긴 시간이 필요해요.

절대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의 존재로 나는 안전하다는 정서가 기본 되어야 타인에게 자신을 솔직하게 개방할 수가 있어요.

솔직하게 다가갔다가 기대와 다른 상대방의 반응에 상처를 받기도 해요.

그럴 땐 다시 나를 절대적으로 믿고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확보한 후에

예측할 수 없는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길 수없이 반복해야, 비로소 생각과 다른 타인의 반응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기게 되죠.


스스로 한없이 하찮게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고, 해 나갈 힘도 없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뤄냈는지 떠올리면 좋겠어요.

좋다, 보고 싶다, 힘들다... 이 마음을 그대로 말할 수 있기까지 이렇게 길고 험난한 과정을 지나며,

그 감정이 좌절되었을 때 견딜 수 있는 자존감을 갖게 된 나를 대견하다 칭찬해 주면 좋겠어요.

그 힘으로 판단과 비교가 너무 당연한 세상에서 나를 그저 나 자체로 받아들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길,

나도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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