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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디얼리스트 Nov 13. 2022

그냥 다시 돌아갈까?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해.

이상하게 계속 피곤했어. 머리도 복잡하고.

너도 알잖아. 내가 시골에 엄청 오고 싶어 했던 거.

근데 점점 이게 맞나,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진짜로 지금 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가?

사실 육아 빼고 특별히 하는 건 없거든.

그래. 애 보려고 휴직한 건 맞지. 그래도 지치진 하더라.

얼마 전엔 나도 우울증 비슷하게 왔었다니까. 엄마들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어.

어린이집이라도 알아볼까 했는데 아직은 이른 것 같아서 관뒀어.

둘째가 좀 예민해서 돌보기 어려워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지.


피부는 계속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해.

아토피라는 게 원래 그래.

그래도 시골에 오기 전보다는 나아졌어.

공기랑 물이 좋아서 그런가?

대부분 크면서 나아진다고는 하더라.

아이 피부가 뒤집어지면 나도 우울해져.

그럴 땐 건강 외에 다른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어.


참, 아내도 건강해졌어.

그렇게 못 자서 힘들어했는데 여기 오자마자 잠을 잘 자더라고.

신기하긴 해. 가족들도 9시면 다 잠들거든.

여긴 정말 조용해. 밤엔 무지 깜깜하고.

다시 아파트 가면 아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단독주택은 정말 좋은 것 같아.

집에서 해방감이 느껴진다니까.

수도권에서는 어지간한 아파트보다도 훨씬 비싸잖아.

그래도 시골에서는 가능할 것 같아.

집만 보고 시골에 살겠다 하면 미친 짓일까?

 

첫째 다니는 시골학교도 생각보다 좋더라.

지원도 많이 나오고. 학생 수가 적으니까 선생님이 한 명씩 다 봐줘.

근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친구가 너무 적어보이더라.

1학년 때 같은 반인 애들이 중3 때까지 같은 반이 된다면 괜찮은가 싶은 거지.


여기서 계속 교육을 시킨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도 들더라고.

시골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닌지,

도시보다 다양한 자극이 부족하지는 않을지,

괜히 내가 아이의 앞날을 망치는 건 아닌지.


그런데 이런 걱정들의 실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라고 딱 집어서 말은 못 하겠거든.

아직 내 교육관은 막연한가 봐.

부모로서 교육관이 확실히 서 있지 않으면 쉽게 흔들릴 것 같아.


다행히 아이가 잘 적응해줘서 너무 고맙더라.

다만 아직까지는 시골보다 도시를 더 좋아하는 눈치이긴 해.

재밌는 건 도시에 훨씬 많지. 걔네라고 우리랑 다를까.

아이들은 자연에서 잘 놀지 않더라고.


아무튼 난 여러모로 혼란스러워.

그토록 고대하던 시골에 왔는데 불만들이 생기는 걸 느꼈거든.

쓸 만한 마트가 먼 것도,

운동이나 산책을 하기 불편한 것도,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주위에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다 예상했던 일들인데 말이지.

난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을 줄 알았지만 이미 마음은 도시에 이백 번쯤 갔다 왔었어.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도 벌써 시골 생활을 접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

평생을 살던 도시 물 빼는 과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시골을 정말 좋아하는지, 시골에 살 수준이 되는지 확인해 보고,

정말 아닌 것 같으면 그때 돌아가야지.


사실 행복한 고민이잖아.

다른 사람들도 그러더라고.

특별히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시간을 즐기라고.


다시 생각해보니 난 지금 생활에 만족을 못하고 있나 봐.

그래서 다른 곳으로 도피하고 싶어지는 거고.

도시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시골로 온 주제에 웃기지?


결국 현재에 충실해야 나중에도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게 오늘의 결론이 되려나?

좀 교과서스럽긴 하네.


이제 자야겠다.

아기 잘 때 나도 같이 자야 되거든.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또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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