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해.
이상하게 계속 피곤했어. 머리도 복잡하고.
너도 알잖아. 내가 시골에 엄청 오고 싶어 했던 거.
근데 점점 이게 맞나,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진짜로 지금 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가?
사실 육아 빼고 특별히 하는 건 없거든.
그래. 애 보려고 휴직한 건 맞지. 그래도 지치진 하더라.
얼마 전엔 나도 우울증 비슷하게 왔었다니까. 엄마들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어.
어린이집이라도 알아볼까 했는데 아직은 이른 것 같아서 관뒀어.
둘째가 좀 예민해서 돌보기 어려워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지.
피부는 계속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해.
아토피라는 게 원래 그래.
그래도 시골에 오기 전보다는 나아졌어.
공기랑 물이 좋아서 그런가?
대부분 크면서 나아진다고는 하더라.
아이 피부가 뒤집어지면 나도 우울해져.
그럴 땐 건강 외에 다른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어.
참, 아내도 건강해졌어.
그렇게 못 자서 힘들어했는데 여기 오자마자 잠을 잘 자더라고.
신기하긴 해. 가족들도 9시면 다 잠들거든.
여긴 정말 조용해. 밤엔 무지 깜깜하고.
다시 아파트 가면 아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단독주택은 정말 좋은 것 같아.
집에서 해방감이 느껴진다니까.
수도권에서는 어지간한 아파트보다도 훨씬 비싸잖아.
그래도 시골에서는 가능할 것 같아.
집만 보고 시골에 살겠다 하면 미친 짓일까?
첫째 다니는 시골학교도 생각보다 좋더라.
지원도 많이 나오고. 학생 수가 적으니까 선생님이 한 명씩 다 봐줘.
근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친구가 너무 적어보이더라.
1학년 때 같은 반인 애들이 중3 때까지 같은 반이 된다면 괜찮은가 싶은 거지.
여기서 계속 교육을 시킨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도 들더라고.
시골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닌지,
도시보다 다양한 자극이 부족하지는 않을지,
괜히 내가 아이의 앞날을 망치는 건 아닌지.
그런데 이런 걱정들의 실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라고 딱 집어서 말은 못 하겠거든.
아직 내 교육관은 막연한가 봐.
부모로서 교육관이 확실히 서 있지 않으면 쉽게 흔들릴 것 같아.
다행히 아이가 잘 적응해줘서 너무 고맙더라.
다만 아직까지는 시골보다 도시를 더 좋아하는 눈치이긴 해.
재밌는 건 도시에 훨씬 많지. 걔네라고 우리랑 다를까.
아이들은 자연에서 잘 놀지 않더라고.
아무튼 난 여러모로 혼란스러워.
그토록 고대하던 시골에 왔는데 불만들이 생기는 걸 느꼈거든.
쓸 만한 마트가 먼 것도,
운동이나 산책을 하기 불편한 것도,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주위에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다 예상했던 일들인데 말이지.
난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을 줄 알았지만 이미 마음은 도시에 이백 번쯤 갔다 왔었어.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도 벌써 시골 생활을 접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
평생을 살던 도시 물 빼는 과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시골을 정말 좋아하는지, 시골에 살 수준이 되는지 확인해 보고,
정말 아닌 것 같으면 그때 돌아가야지.
사실 행복한 고민이잖아.
다른 사람들도 그러더라고.
특별히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시간을 즐기라고.
다시 생각해보니 난 지금 생활에 만족을 못하고 있나 봐.
그래서 다른 곳으로 도피하고 싶어지는 거고.
도시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시골로 온 주제에 웃기지?
결국 현재에 충실해야 나중에도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게 오늘의 결론이 되려나?
좀 교과서스럽긴 하네.
이제 자야겠다.
아기 잘 때 나도 같이 자야 되거든.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또 연락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