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디얼리스트 Feb 03. 2023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니야

1.

연말을 맞아 가족회의를 했다. 시골에서 얼마나 머물 것인지를 주제로.

결과는 뜻밖이었다.

나는 6개월 정도만 있다가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으나, 아내와 첫째는 더 있겠다고 했다.

애초에 시골행을 가장 원했던 건 나였는데...

머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이대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찜찜함이 컸었던 것 같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끝까지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2.

그러나 이후에도 간헐적인 우울증은 계속됐다.

증세가 심해지며 무기력해지고, 짜증과 화가 늘었고, 아내와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3.

설을 맞아 서울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 얘기를 잘 들어줄 만한 비회사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어쩌면 가족에게도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갑갑한 마음을 덜었다.

답은 나 자신에게 있을 테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4. 

목디스크 초기증상이 있어 치료를 받는 와중에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혈압이 180 가까이 올라가서 결국 혈압약까지 처방받았다.

시골로 돌아오기 직전 이틀간은 끔찍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5. 

열흘 만에 돌아온 시골집은 냉골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추운 바닥은 처음이었는데 마음이 너무나도 편한 게 이상했다.

서울에 갔다 와보니 명확해졌다.

시골의 장점은 바로 '적다'는 것.

소음도, 불빛도, 사람도, 차도 적으니 번잡스러움이 적고, 신경쓸 일이 적은 것이다.

환자들에게 시골이 좋다는 의미도 아마 이런 맥락이리라.

이날 밤 나는 옷을 꽁꽁 껴입고도 숙면을 취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