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디얼리스트 Jun 01. 2023

시골생활을 돌아보며

비교적 평탄한 삶이었던 것 같지만 작년은 꽤나 힘든 시기였다.

둘째의 아토피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아내는 산후우울증에다 미친 윗집으로 인한 정신병까지 생겼다.

모두가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시골이 이런 상황을 변화시켜 줄 장소라고 믿었다.

귀촌에 대한 나의 오랜 열망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그렇게 시골에 온 지 9개월이 지났다.

이전에 시골에서 지낼 때는 분명 활기찼었는데 이번에는 내내 답답한 느낌이었다.

마냥 좋았던 건 처음 몇 주 정도뿐이었다.


예기치 않은 우울증 때문에 주체적으로 뭔가를 시도하지 못했고,

1년 안에 귀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해서 이곳 생활을 마음 편히 즐기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시골에 정착하지 못했다.

드라마틱한 심경의 변화가 없는 이상 조만간 다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시골행을 가장 강력히 주장했던 내가 제일 힘들어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나야말로 도시인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었다.


시골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굳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내 곁을 맴돌았다.


시골에 와서도 고민을 계속한다는 것 자체가 귀촌하기에 충분치 않았다는 방증이었던 것 같다.

시골이 너무 좋았다면 어떻게든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겠지.


어쩌면 완전히 귀촌을 결정하지 않고 한 다리 걸쳐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고, 확신이 없었고, 의지도 부족했다.


써놓고 보니 또 심각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설프거나 무리하게 정착하지 않아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만 봐도

아내는 건강을 되찾았고, 둘째도 상당히 호전됐고, 첫째는 시골학교를 경험해 봤으니까 말이다.


귀촌이라는 내 염원이 사라져 버려 허탈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회사를 다시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한국기행 보면서 쉽게 마음이 동요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직접 부딪쳐서 배우는 게 무식해 보이지만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다.

시골살이를 계기로 생각과 실제의 간극을 확실히 느끼게 됐다.


나의 시골생활은

설레고, 새롭고, 어색하고, 평화롭고, 상쾌하고, 정겹고,

따분하고, 단조롭고, 갑갑하고, 무기력하고, 한심하고, 아쉽고, 후련한 시간이었다.


도시에 올라가면 또 어떤 마음이 들까.

당분간은 내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지려나.  


어쨌거나 후회는 없다.

귀촌. 해봤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