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겨울 여행, 리스본 2
시차적응에 실패해 6시쯤 잠에서 깼다. 다시 자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날이 밝아오고 새도 사람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부산스럽게 들렸다. 7시 50분에는 해가 뜨고, 8시가 되자 숙소 옆 대성당에서 종을 울렸다.
처음으로 여행지에 운동복과 운동화를 챙겨 왔다. 원래 운동을 즐기지 않아서 호텔에 있는 헬스장은 누가 쓰는 걸까 궁금했는데, 헬스장은 아니지만 내가 그러고 있을 줄이야.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침대에서 코스를 검색하고 로드뷰로 도로를 확인했다. 달리기야 외국에서도 많이 하는 운동이니까 정보가 꽤 많았다. 각 도시별로 많이 뛰는 코스와 특징을 모아놓은 사이트를 참고해서 달리기 계획을 세웠다.
해가 뜨고 나온 테주 강변에는 경량패딩과 반바지가 섞여 있었다.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을 지나 강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바이후 알투(Bairro Alto) 지역으로 올라갔다. 여행 책자에서 봐뒀던 카페에서 카페 라떼와 토스트를 먹고 현금을 내니 잔돈으로 동전이 생겼다. 다음에는 카드를 들고 나오거나 러닝벨트를 챙겨야지 생각하면서 숙소 열쇠와 동전을 짤랑이며 뛰었다. 리스본 지도에 달리기 경로가 남았다.
리스본은 두 가지 이유에서 달리기에 좋지 않았다. 하나는 SNS에서도 악명 높은 언덕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포장이다. 서울의 창신동이나 해방촌 같은 언덕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인도도 차도도 굉장히 좁다. 검고 흰 누네띠네 같은 돌은 수십,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닳아 햇빛에 반짝인다. 칼사다(calçada)는 길의 경사와 돌의 크기, 가공 방식,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빛깔과 질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미끄러지기 십상이고 울툴불퉁하고 홈이 많아 유모차나 휠체어가 지나가기도 어려운 데다 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바닥을 포장하는 데도 편의와 아름다움, 효율과 전통 사이에서 저울질을 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아름다운 전통을 택한 모양이다.
밥을 먹고 또 커피를 마시고, 이번에는 모우라리아(Mouraria)의 언덕을 걸었다. GPS 지도를 잠시 끄고 모르는 동네를 탐험하면 게임의 미니맵처럼 리스본의 지도를 밝혀가는 기분이다.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은 건물의 벽과 사람들의 옷에 골고루 묻어 있었다.
못 사는 동네에서 관광지와 숙박, 식당이 모인 상업 지역으로 탈바꿈한 알파마와는 달리 모우라리아에는 아직 삶이 남아있었다. 도로 옆에 주차된 차,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TV 소리, 재활용품 쓰레기통 옆에 쌓여 있는 종이박스를 만났다. 여느 도시가 그렇듯 리스본도 여러 얼굴이 있겠지만 그 얼굴 중 민낯에 가까운 하나일지 모르겠다.
2층의 입구, 1층의 공연장, 그 아래에 있는 카페에서 노을을 지켜봤다. 모우라리아는 상 조르주 성(Castelo de São Jorge)이 있는 언덕의 북사면이다. 남사면인 알파마에서는 테주 강 너머로 넘어가는 노을이 보인다면, 북사면인 모우라리아에서는 빛을 받고 점차 불이 켜지는 반대편 언덕의 집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