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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Oct 20. 2021

정든 집, 이사를 떠나며

스무 번째 이사

스무 번째 이사, 많은 이들이 내게 충고한다. 이제 그만 정착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결혼도 했으니 이제 곧 아기도 만들고 안정적으로 살려면 청약이 필수라고 필수! 서른일곱, 언제나 사람들이 갸우뚱하는 선택들을 하면서 살아온 나. 친구들이 조건이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때, 꿈을 좇아 연봉을 삭감해가며 이직을 했고, 친구들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하며 적금을 부을 때, 퇴사를 하고 돈이 통장에 조금이라도 모이기만 하면 여행을 다녔다.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때, 더욱더 혼자가 되려 통영으로 훌쩍 이사를 가버렸고, 친구들은 아이가 태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 때, 작가로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육아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하고 자신의 일을 다시금 시작할 때, 나는 그제야 결혼을 했다. 게다가 갑자기 강원도로 했다. 강원도 산속에 사는 우리 부부에게 말한다. 청약으로 아파트를 사야 된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갈수록 과열되고 있다는 30대 청약 경쟁에 참여하고픈 마음이 아직은 없다. 물론 우리에겐 각자 오래된 청약 통장이 있고, 신혼부부에게 주는 가산점 고작 1점이라도 잃지 않으려면 7년 안에는 결정을 해야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세입자로 살아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에 살고 싶지도 않은 데다가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청약을 해서 목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도 개인적인 삶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점이다. 아파트로 인생 역전할 생각이 없다. 지금 내 인생이 좋고, 역전을 할 마음도 없는 데다가 더 이상 풍요로워질 필요도 없... 무슨 스님 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이고, 남편도 동의한 부분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역전 때문이 아니라, 노후 때문에라도 재테크는 해야 되는 것이고 집은 있어야 되는 거라고.


 나는 서른 쯤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 평균 연령이 이렇게 높아진 세상에서 깨어있는 노인으로, 소녀 같은 할망구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늙어가려면 어떻게야 하는지. 나는 그것을 집을 마련해두는 것으로 준비하지 않고, 직업을 만들어놓는 것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서른 중반이 다 되어 새로운 직업을 선택했고, 준비했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부지런히 썼다. 10년을 넘게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했는데, 이제는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교육이 나에겐 더 잘 맞다는 것을 알아버린 후 강의하는 일과 교재를 집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의 꿈을 키우며 실천하고 있다. 에세이도 한 권 출간했고, 드라마 작가로서 계약도 했다. 아직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미비해서 사람들에게 나 드라마 작가요,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요! 그러니 내 걱정 말고 당신들 노후나 걱정하세요! 하고 떠들어댈 순 없지만 괜찮다. 어차피 내 목표는 60대에도 일을 하는 것이니까. 남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마련해둔 집에서 연금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여전히 경험에 대한 글을 쓰고, 떠나고 싶은 때에 떠나며,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혹시 이 일이 잘 안되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해도 별 걱정은 없다. 남편과 나, 둘 모두 생활력으로는 어디 가서 굶어 죽는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과 믿음, 자신감이 있으니까.


나 역시 내 집을 갖고 싶은 때도 많다. 액자를 하나 걸더라도 못을 박아도 될까 고민을 하는 게 싫으니까.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결정권에 의해 이사를 하게 될까 봐 두려우니까.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내 집, 내 동네, 내 뿌리를 만들어 보고 싶으니까. 그리고 3억에 집을 사서 13억이 된다고 하니까. 10억이 욕심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10년을 부어놓은 청약통장을 정말 개를 줄 수는 없다. 언젠가 좋은 기회에 청약을 넣어볼 만한 집이 생긴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몇 억의 빚을 지고, 대출을 받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안 해본 게 아니니까. 그 초라한 심정을 너무나 잘 알아서 말이다. (남편과 나, 신용등급은 좋지만 프리랜서라 대출이 쉽지 않다. 청약이 되기만 한다면 집 담보 대출이 되겠지만 빚지는 걸 우리 둘 다 좋아하지 않는다)


청약은 안 하겠다면서, 내 집은 갖고 싶다는 말. 누군가는 이중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내 집은 곧 아파트가 되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평생을 불안해하지 않을 내 공간이 아니라 불리는 재산이라고 한다. 이런 시선 속에서 촌스러운 시대착오적인 생각일지라도 언젠가 차곡차곡 번 돈을 알뜰살뜰 모아, 아파트가 아닌 자연과 가까운 집을 사고 싶다. 전국을 여행하다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을 점찍어 두고 작은 땅을 사서 집을 짓거나, 혹은 오래된 구옥을 구매하고 내부를 고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히 내가 어느 정도 작가로서 금전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자리를 잡고, 이사를 그만 좀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집을 사고 싶다. 세상에 사람 사는 일에 정답이 있다면, 정해진 교과서 같은 길이 있다면 나는 항상 그 길과 다른 길로 갔다. 사람들은 내가 틀렸다고 말하고 이제라도 바로잡으라고 말한다. 취업을 했을 때도, 퇴사를 했을 때도, 서울을 훌쩍 떠나버렸을 때도, 결혼을 했을 때에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로 잡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길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사를 다니는 게 좋다. 때가 되면 이사를 하느라 돈을 쓰고 피로하고, 신경을 곤두서야 한다는 점은 불편하지만, 몇 년에 한 번 깨끗한 청소를 할 수 있고 일상이 지루할 틈이 없다는 점에서도 이사는 좋다. 늘 이사는 서러움을 동반했다. 내가 살아온 공간을 마지막으로 떠날 때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섞여서 묘-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그래도 마지막 문을 닫고 나오면 그때부터 설렘이 생긴다.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내 삶이 기대가 된다. 살던 집을 떠나며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희망과 들끓는 의지가 마구 샘솟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사는 조금씩 날 어른으로 만들어줬다. 남들보다 더디지만 분명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요즘은 강원도, 통영, 서울에서 살아보면서, 다른 지방에서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이 넓디넓은 지구에 생명체로 태어나 너무나 작은 나라에 한 동네에서만 살다가 죽는 것도 너무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조금 더 방랑하고, 조금 더 위태롭고, 조금 더 젊을 때에 여행을 하고, 많이 보고 충분히 감탄하며 날마다 행복하게, 젊은 날 동안 그리 살고 싶다.





'스무 번째 이사' 연재를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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