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늦은 시간에 아이들과 마을 축제에 놀러 갔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까지 모두 왔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금요일 퇴근한 직장인들이 파전에 막걸리 한잔 하며 불금을 보내는 것 같았다.
동네 아이들, 동네 엄마들 아빠들 할머니 할아버지
주민 노래자랑의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 밴드의 음악소리, 호객하는 소리, 삑삑 호루라기 소리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아이들 손을 잡고 인파에 휩쓸린다.
그때 어떤 여자분이 눈에 들어온다.
모르는 사람이다.
바람막이 점퍼에 배기팬츠, 운동화를 신은 나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는 분
눈을 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동네 행사에 편하게 입고 왔을 뿐인 그분이 알면 억울하겠다.
나는 원피스에 코트를 걸치고 구두를 신고 있다.
사직 후 나는 어쩌면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삶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나를 낯선 곳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십수 년 지나 나도 저렇게 편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옷 입는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인식, 추구하는 삶의 가치, 삶의 이미지를 말하는 거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게 맞는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확신이라는 덩어리는 가끔 이렇게 불시의 습격을 받고 멈칫하곤 한다.
일말의 불안감은 핵심을 무시하고 변죽을 울리며 황당한 결론을 내놓기도 한다.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사람들이 밀치고 지나간다. 흘끔흘끔 쳐다보면 나를 비난한다.
그 흥겨운 축제에 제대로 끼지도 못하고 혼자 우두커니 있다.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온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 지, 얼마나 외로운지 아무도 모른다.
사직하겠다고 아무리 결심을 해도 그로 인한 엄청남 두려움이 해일처럼 몰려와 목을 조일 때가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말자.
한꺼번에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말자.
딱 한 가지만 생각하자. 딱 하루만 생각하자.'
마치 명의의 처방처럼 천천히 불안이 사라진다.
어떤 퇴사자는 막상 사표 쓰고 나오니 두려움과 함께 예전 회사가 좋아 보이는 현상을 겪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퇴사 후에 겪게 될 소용돌이의 한 단면을 얘기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