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쪽 손금은 일자이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내 손금을 보고 다들 신기하다고 한 마디씩 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면서 부처님도 일자 손금이었다며 하여간 좋은 거라 했다.
좋은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좀 특별한 사람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오늘 목욕 중에 물기 흥건한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일자 손금 사이로 물이 흐른다.
일자 손금
'집착이 강하고 강인한 성격으로 매력이 넘침. 경제 감각 월등, 일에는 철저, 위험도 크게 신경 안 쓰고 풍파 없는 인생 자체를 따분하게 생각, 자기 일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진취적 사고,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매력적인 손금. 인간미가 부족하여 외롭게 말년을 보낼 수 있음. 잘하면 대박 안되면 쪽박'
어째 내 이야기 같다.
내 이야기라고 생각해야지
주위의 신호들을 끌어모아 확신 쪽에 힘을 보탠다.
꿈을 꾸었다.
기다리던 꿈. 어떤 계시 같은 꿈이었다.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간절하고 두려울 때는 깃털 같은 무게라도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면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이다.
살면서 정말 아주 가끔씩 꿈에서 무언가를 보곤 하는데
사직과 관련하여 확신이 공포로 바뀔 때, 간절하게 기도한다.
누구라도 좋으니, 뭐라도 좋으니 제발 나에게 한마디라도 해 달라고
확신에 차서 추진하다가도 문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숨 막히는 공포로 발걸음을 딱 멈춰 세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간절히 기도한다. 이젠 나 혼자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누구라도 좋으니 뭐라도 좋으니 어떤 말이라도 해 달라고...
간절한 기다림으로 벌써 몇 년을 보냈고, 이젠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아직 미혼이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갔다.
높은 위치의 전망 좋은 집, 바람이 시원하고 나무가 초록초록 싱그러운 곳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집 구조가 전체적으로 길고 방들도 모두 긴 형태
방마다 생각지도 못한 곳이 하나씩 망가져 있다.
집을 둘러보다 창문 쪽으로 간다.
확 트인 전망으로 가슴이 뚫린다.
아파트 단지라기보다는 유럽의 숲길을 보는 느낌이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나무숲,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
나는 깊이 숨 쉬며 자유를 느꼈다.
짧은 영상이었다. 예지몽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아. 모든 답은 내 안에 있어. 항상 그랬다.
나는 새로운 길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당황할 수도 있지만 마침내 자유로워질 것이다.
삶이란 결국 선택이다.
망가진 곳을 수리하고 가슴 탁 트인 시원한 곳에서 살 것이냐? 수리를 포기하고 이전 집에 눌러앉을 거냐?
선택을 해야 한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더 확실해졌다는 거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 내가 하려는 것이 맞다는 것.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계속 가는 것은 불행해도 앞으로 어떤 모습과 어떤 마음으로 살게 될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리 열망해도 어떤 곳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두려워서 숨이 막힌다.
불행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고 그게 싫어서 짜증이 나지만 다행히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
불확실성은 공황 상태와 비슷하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안절부절못하고 서서히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다. 팔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조금만 감수하면 매달 월급이 나오는데 굳이 불확성으로 인한 공포를 감수할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확실성보다는 상황을 조종할 수 있는 불행을 택한다.
다들 그렇다. 다들 비슷하게 산다. 남들처럼 한탄하면서 남들과 비슷하게 산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살기도 했다.
길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예견된 불행보다는 불확실하지만 어쩌면 가능한 행복 쪽으로
출근길에 보니 온갖 신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결정할 때가 되었다는 온갖 신호들
그 신호들은 때론 광고문구로, 때론 사람들의 대화로, 때론 창 밖 풍경에서도 펼쳐진다.
신호들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때가 되니 드디어 신호들을 잡아낸다.
이젠 정말 때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