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내가 사직할 거라는 소문이 난 후, 한동안 나는 숨죽여 지냈다.
말수가 줄고, 웃지도 않고, 회사 복도에서 직원과 마주칠까 봐 걱정했다.
점심식사 후 직원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먼 길로 돌아갔다.
사직과 관련이 없는 글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사직을 결론내야 할 것 같았다.
인생에서 반드시 결정 내려야 할 것을 결정하지 않은 것처럼, 뜨거운 감자 한 입 물고 있는 것처럼 나는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체성의 혼란은 내 손발을 묶어 버렸다.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문은 아직 사직에 대한 100% 확신에 이르지 못한 나를 무차별 공격했다.
실행하지도 못하고 이대로 소문으로만 끝날까 봐 두려웠다.
결국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가장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오픈된 상태에서 쭉쭉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휩쓸러 남들 보란 듯이 사직할 수는 없었다.
그때는 잠시 기다릴 때였다.
'사직은 무슨 사직을 하겠어? 그게 보통일이야? 결국 못할 거야'
사람들의 시선은 수백 개의 핀이 되어 이미 밀랍 인형이 된 나를 나에게 빽빽하게 꽂는다.
나는 그 무렵 화장실 갈 때나 퇴근할 때도 가급적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 복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가곤 했다. 참 한심했다.
이왕 그렇게 된 거 배짱 좋게 밀고 나갈 수 있으며 좋았겠지만, 나는 불시에 받은 공격으로 초토화된 심정을 수습해야 했다.
나는 일부러 혼란과 두려움을 무시하기 위한 전략에 들어갔다.
그 시기 넷플릭스에 몰입한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 얽힌 실타래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아침이면 눈이 아프고 근무 중에 수시로 눈물이 났다.
이렇게도 사는구나 싶었다.
지하철에서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삶이 힘들면 이렇게 풀면서 또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저 사람은 어떤 힘든 일이 있는 걸까? 쳐다보게 된다.
나는 소문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한 두 달 사람들이 나를 신경 쓰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사람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시간 나에게 힘이 되어 준 동료들이 있다. 그런 소문이 났었는지도 몰랐던 동료들
알았으면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전에 먼저 상항을 말해주었을 친구들
나는 그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걱정하는 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