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다

by 고도리작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레슨비를 문의한다.

"저 피아노 배우려는데 레슨비가 어떻게 되나요?"

선생님이 목소리도 예쁘고 아주 친절하다.

"네 어머니~~ 아이가 몇 살인가요?"

"아니요, 제가 하려고요. 어른 취미반도 하세요?"

"아 네 그럼요. 어른들도 많이 하세요"

잘못짚었구나 싶었는지 살짝 당황하더니 바로 평정심을 찾는다.


나는 최근 15년간 몸담고 있던 공무원을 사직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망설이면 안 된다는 것

사직 과정을 진행하면서 나는 직관력이 강해졌다. 내 마음속의 소리를 명확하게 듣고 '지금 안 하면 후회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하게 된다'.라는 직관이 아주 강해졌다.

그래서 무엇이든 오래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망설이고 예열까지 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해서 중학교 입학 전까지 체르니 40의 중간 정도 쳤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그런 만큼 이해도 빨랐고 진도도 빨랐다.

피아노를 하기 전에는 태권도를 했다.

내가 초등학고 3학년쯤 아빠가 사람은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태권도장에서 매일매일 뛰어놀았다. 난 선머슴이 되어갔다.

그러다 여자아이가 태권도한다고 처음부터 기겁을 하던 엄마의 강력한 반대로 태권도를 그만두고 피아노로 바꿨다. 결국 1단도 따지 못하고 내 인생의 태권도 경험은 빨간 띠로 남았다.

그 후 피아노를 배우면서 지금의 성격이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태권도하던 섬머슴은 어디 가고 나는 점점 조용하고 여성스러워졌다.


그마저도 중학교 진학하면서 그만두었으니 나는 태권도도 피아노도 참 어중간하게 배운 셈이다.

태권도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데 두고두고 피아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최근 유튜브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김정원이 치는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에 정말 반했나 보다.

임동혁이 치는 고음부를 꼭 쳐 보고 싶다.

어떤 곡들을 치고 싶냐는 물음에 아주 구체적으로 답하니 선생님께서 당황한 듯, 신선한 듯 한바탕 크게 웃는다.

아주 좋다시면서


선생님은 너무 오랜만이라 머리로는 다 이해하지만 몸이 따라가지 못할 거라면서 어린이 하농을 내밀며 1번을 쳐보라고 하신다. 차가운 건반에 살짝 올린 손의 감촉이 참 낯설다. 부끄러운 듯 조그맣게 소리를 낸다. 잠시 들으시던 선생님께서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는 게 아니라 치는 거라며 손가락을 높이 들어 건반을 치라고 한다.


어린아이처럼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열심히 친다.

좀 더 세게 좀 더 힘 있게 좀 더 자신 있게

점 점 속도가 붙고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기분이었다. 이런 느낌이었어.


나는 다시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다.


피아노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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