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는 특별한 음식 없이도 대충 끼니를 때우고 남편이랑 놀기 바빴던 것 같다. 그러다 결혼하고 다음 해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6년 후 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들이 생긴 후로 식사 때는 특별한 음식이 뭐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게 되었다. 또 나는 음식 재료의 생산과정, 유통과정, 판매절차 등 우리 가족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알 수 없는 전 과정을 신경 쓰게 되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배탈이라도 나면 그 과정 중에 발생했을 원인도 내가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자책하게 되었다.
과자 초콜릿 음료수 등 굳이 빨리 접할 필요 없는 것들은 나의 통제하에 있을 때 최대한 뒤로 미루었다.
그렇다. 엄마가 된 후 나에게 먹거리는 온통 아이들 것에 집중해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거의 자의 반 타의 반 자택연금 중이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그 기간에는 차이가 날 텐데 나는 현재 6주째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물론 개학이 연기되고 학원도 휴원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이다.
이것은 거리에 사람이 없고 그래서 가게에도 사람이 없고 직원들 월급은 밀리고 월세도 내지 못할 지경이라는 티브이만 켜면 매일 나오는 뉴스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요즘 바이러스 사태는 엄마들이 일주일 7일 내내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차리도록 만들었다.
세계에서 하루에도 수 백 명씩 죽어나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런 얘기 꺼내기도 참 뭐시기 하지만 우리네 엄마들에게는 옆동네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보다 오늘은 또 뭐 해먹나 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이다.
다행인 건 내가 그리 요리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 또 나름의 요령이 생긴다는 거다.
조미김은 만일을 대비해 항상 넉넉하게 준비하고 밑반찬 두세 가지 정도 있으면 그나마 상차림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행히 아이들이 생야채를 좋아해서 오이나 콜라비, 파프리카, 브로콜리 등 봄철 알록달록한 야채가 커다란 샐러드볼에 한자리 차지하니 또 그럴 듯 해진다.
메인 요리가 빠지면 안 되겠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요리하는 방법에 따라 로스가 되거나 불고기가 될 수도 있다. 또 연달아 육고기를 먹으면 지겨우니까 건너 건너 생선구이나 오징어 같은 해산물을 메인으로 준비한다. 어제 했던 요리가 남으면 그다음 날 아침에 남은 요리와 국물에 밥을 비벼준다. 또 그 사이사이 볶음밥, 카레밥, 자장밥 같은 한 그릇 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
또는 요즘 집집마다 다 있다는 에어프라이어에 온갖 냉동음식을 튀겨 먹는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해서 집에서 만든 샌드위치에 파바에서 사 온 샐러드로 간단하게 해치우기도 한다.
정말 정말 귀찮은 날은 특식이라며 라면이나 짜파게티를 해 주기도 한다. 귀찮다고 자주 했다가는 인스턴트에 익숙해질 테니 평균 열흘에 한 번을 넘지 않도록 한다.
길게 쓰다 보니 대단하게 들리겠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 엄마들은 다들 나와 비슷한 상황일 거다.
밥 먹고 치우고 또 밥 먹고 치우고 장 보러 갔다 와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밥 먹고 치운다.
식사뿐인가 중간중간 간식도 챙기고 청소에 빨래에 하루 종일 일이 많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나 개학 연기로 아직 학교 맛도 못 본 아들내미와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온갖 보드게임을 상대해 주고 하루에 두 권씩 책 읽기와 하루 한쪽 글씨 쓰기를 지도한다.
시간이 없다. 잘하려니까 시간이 없다.
종일 애들 해줄 음식 레시피를 검색하고 그 재료를 준비하고 식사 준비를 한다.
나는 그냥 아이들 사이에 껴서 먹는다.
어른인 나의 입맛은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되어 달달하고 간간하고 짭조름한 음식들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무언가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
아이들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음식, 거창한 요리도 아니고 그냥 반찬 수준이지만 그 음식이 며칠 전부터 삼삼하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애들 음식 하기도 바쁜데, 잠깐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쉬어야 하는데 엄마한테 해달라고 할까?
그건 아니지. 엄마도 지금 삼시세끼 해결하느라 바쁘고 만나기도 힘들다.
날 위한 음식을 만들어 본 지가 언제인가?
애들과 함께 먹으면서 그냥 맛있다 하면서 먹었다. 그렇게 나의 입맛은 아이들 입맛에 길들여졌다.
가끔은 매콤한 것을, 자극적인 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애들 음식이라도 거기에 고춧가루 살짝 치면 너무 맛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매운 것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어린 아들 녀석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원래 주인이었던 어른 입맛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끔 떡볶이를 사 먹는다.
그런데 떡볶이 몇 개 집어 먹다 보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 몸을 보해야 하는 이때 맵고 짠 떡볶이라니... 아직도 난청으로 고생하는 내 몸에 미안해져서 그나마 몇 개 먹지 못한다.
한번 만들어 먹을까 싶었지만 내가 언제부터 그랬다고 싶어 매번 그만두었다.
그러다 가택연금이 너무 길었을까?
얼마 전에 시간을 쪼개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거창해서 창피하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음식은 꽈리고추볶음이었다. 꽈리고추와 양념한 돼지고기를 함께 볶으면 정말 맛있었을 테지만 집에 돼지고기가 없기도 했거니와 지금 고기까지 넣을 새가 어딨나? 꽈리고추만 볶기도 시간에 쫓긴다. 익숙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 버렸더니 마음이 더 급하다.
최대한 간단한 레시피를 골라 최대한 뚝딱뚝딱 만든다. 드디어 완성
한번 먹어 본다. "음~"
맛있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시간도 노력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 이것을 못해서 며칠을 생각만 하면서 침만 삼켰구나.
비빔국수, 김치찌개, 부대찌개, 매운 오징어볶음, 제육덮밥
가끔 삼삼하게 생각나는 것들이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는 혼자서 한 끼 간단하게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안된다.
해 먹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리 손 빠른 주방장이 아닌 관계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거 하다가는 애들 먹을 걸 못할 거 같다.
그래서 아이들 먹일 볶음밥, 스파게티, 돈가스, 수육, 오리훈제를 한다.
며칠 후 나는 나를 위해 미역줄기 볶음을 또 며칠 후 콜라비 생채를 했다. 모두 처음 해 보는 것들이다. 아이들이 먹을만한 음식이 아니었고 그래서 해볼 일도 없었다.
맛있었다. 행복했다. 나는 웃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역시 아이들은 별로 손을 대지 않는다. 덕분에 그 반찬들은 늘 식사할 때마다 한쪽 구석에 놓이고 나 혼자 조금씩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