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땡땡이를 거들었다

by 고도리작가

큰 애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서류상으로는 중학생이지만 올해 코로나 사태로 등교한 날을 다 합쳐도 아마 채 한 달이 되지 않을 거다.

서울시 교육감이 '중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이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유치원생이 있다'며 중1, 초1의 매일 등교를 교육부에 제안했는데 우리 집 중1을 보면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긴 하다.


초등학생의 마인드로 매일 zoom에 접속해서 하루 7-8시간씩 수업을 소화하려니 아이고아이고 곡소리를 달고 산다.

가끔 내 귀에까지 선생님들이 짜증 내거나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노트북 바로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학교에서 라면 딴생각을 할 수도 있고 잠시 눈을 감을 수도 있을 텐데 온라인 수업이라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화면을 보이지 않으면 그렇게 뭐라고 한단다.

아니면 완전히 반대로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화면에 없거나 무음 모드로 해 놓아도 뭐라고 안 한다며 전혀 수업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단속하면 완전 사이코 취급하고 아무 소리도 안 하면 완전 관심 없다고 하니 학교 선생님들도 참 힘들겠다 싶다.


하여간 하루 7-8시간 계속되는 온라인 수업을 힘들어하던 큰 애 눈이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눈이 충혈되고 깜박일 때마다 눈이 아프다고 해서 자세히 보니 눈꺼풀에 작은 뾰루지 같은 것이 난 것이 눈다래끼인 것 같다.

눈을 비비다가 감염이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저 zoom 수업이 원인을 제공했지 싶다.

나도 오랫동안 모니터를 집중해서 보면 다래끼가 나곤 한다. 아무래도 눈에 무리가 간 게 분명하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내일 아침에 병원 가게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 좀 해달라고 한다.

진료확인서 떼면 조퇴할 수 있다면서

그 정도는 수업 모두 끝나고 가도 될 것 같았는데 아이는 아침에 꼭 가야 한다고 막무가내다.

가서 치료하고 약 받아서 빨리 낫기를 기대한다기보다는 짜증 나는 수업들을 빼먹고 아침부터 코에 바람 좀 넣을 수 있겠다는 표정이 그대로 보인다.

얼굴에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눈은 벌겋게 부어 있으니 참 웃음이 난다.


그래 그러자. 너도 얼마나 답답하겠니?

오전에 한두 시간 수업 더 듣는 것보다 네 속 풀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구나.

엄마도 회사 다닐 때 조금 아픈 것 핑계 대고 땡땡이치고 하루 종일 놀았던 적이 있어. 그렇게 하루 풀어주면 또다시 일할 수 있었지.

엄마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돈 쓰고 기분전환을 했는데 아이는 오전 2시간 여유를 부리고 파바에서 샌드위치 하나 얻어먹은 것으로 행복해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질러도 제대로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꾹꾹 삭인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해도 어른들의 출퇴근이나 여행이나 음주가무나 으싸으싸 집회를 제대로 막을 수 없지만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등교를 원천 봉쇄했다.

아이들에게는 한번 의견수렴도 하지 않고 그들의 일을 결정해 버렸다.

아이들의 등교를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입도 벙끗 못하고 어른들이 정한 대로만 해야 하니 속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아이에게 청소년 의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말 한번 다 해 보라고 했다. 그건 싫단다.

너무 심하다 싶은 선생님한테는 미친 척하고 '선생님 소리 좀 그만 지르세요' 해보라고 했다. 그것도 싫단다.

그래, 그러면 우리는 오전에 병원 갔다가 맛있는 거나 먹고 오자. 했더니 좋아한다.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속시원히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다 눈까지 탈이 나버린 아이는 높고 맑은 하늘 아래 휘적휘적 여유롭게 병원을 오가며 행복해했다.

하늘을 좋아하는 아이

예쁜 하늘을 보면 이건 찍어 줘야 한다며 마구 찍어대는 아이

이 예쁜 가을 하늘 아래를 얼마나 걷고 싶었을까?


그렇게 분위기 좋았던 아이는 갑자기 저녁에 으악~~

빠진 수업은 스스로 공부하고 내용을 정리해서 일주일 이내 제출해야 한다는 결석 신고서를 읽고서 경악했다.

"이게 뭐야? 수업을 듣지 못했는데 수업 내용을 어떻게 정리하냐고?????

우와 다음번엔 절대로 빠지지 말아야지. 오 마이 갓" 한다.


그래 얘야, 뭐든지 행위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란다.

그렇게 아이는 중요한 것을 깨달으며 또 한 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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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직접 찍은 하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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