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했다

by 고도리작가

"엄마 친구 많아?"

친구 때문에 속상하고 친구 덕에 행복하고, 학교와 친구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딸은 자기 친구들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불쑥불쑥 묻곤 했다.

엄마한테 친구가 많은지, 인기가 많은지 자기 나름의 잣대로 엄마의 사회성을 가늠해 본다기보다는 그냥 얘기 끝에 후렴구처럼, 접속사처럼 덧붙이는 질문 같은 것이다.


처음 딸의 질문을 받고 살짝 당황했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훑고 나온 대답은 이러했다.

"음... 엄마도 친구 많았지"

이건 딸의 현재형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재빠르게 응수하는 딸 "지금은?"

"지금? 지금은 연락이 많이 끊겼지.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지금 한참 그럴 때야. 외할머니 나이 되면 친구들 다시 자주 만난다고 하더라."

엄마의 친구에 대한 아이와의 대화는 대강 이렇게 끝났다.


사실을 말해볼까?

나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단 두 명. 그러니 친구가 많냐는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가 맞겠네.

어느 정도는 되어야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 사람마다 기준도 기대도 다르다.

천성적으로 심심한 것을 못 참고 사람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상대의 의견과 무관하게 두루두루 친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친구에 대한 기준이 높은 걸까? 기준이랄 것도 없다.

나에게 친구가 별로 없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기 때문일 거다.


나에게 친구는 이런 사람이다.

서로의 치부도 드러낼 수 있는 사람, 그러고도 그 비밀이 샐까 걱정되지 않는 사람, 놀리고 비웃고 그렇게 나도 똑같이 당해도 싫지 않은 사람, 유쾌한 사람.

또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셔도, 밥만 먹어도 그 침묵이 어색하거나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 네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 너도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지? 너무 애쓰지 말자. 묵언으로도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먼 외국에 있다. 묵언으로도 대화할 수 있는 친구다. 가끔 페이스북으로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곤 한다. 나와는 달리 사회성이 돋보이는 친구라 페이스북에 친구도 많고 게시물마다 댓글도 많다.

줄줄이 달린 댓글 끝에 나도 질세라 '나도 여기 있다~~'는 의미로 뻔한 댓들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늘 나의 존재를 느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평생 살면서 두 명의 친구라. 괜찮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 두 명과 친구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냥 세월이, 인연이 그렇게 해 주었다.

살면서 친구들을 사귀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시절도 있고 반대로 멀어지는 시기도 있었다. 자연스러웠다.

어중이떠중이 두루두루 잘 지낼 마음은 더욱이 없다.


물론 주변에 지인들이 있다. 또 시간이 흘러 그들 중 몇 명 친구로 남을지도 모른다.

지인이라야 지금 애들 나이가 나이인 지라 학교 엄마들이 대부분인데 중간에 아이들이 끼어 있으니 가끔 만나도 늘 말조심하고 학교 엄마라는 관계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가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남편, 시댁 얘기 듣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지만 남는 것은 허공에 흩어지는 웃음뿐이다.

누구나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 그렇게 나 만의 공간을 보호한다.


그렇다. 나는 아웃사이더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발적 아웃사이더'.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근거 있는 자신감인지 나는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내는 아웃사이더이다. 언제부터일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피곤하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처럼 우르르 떼로 몰려다니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살기는 힘들다.


회사에도 몇 명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식사하고 혼자 음악 듣고 혼자 책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직원들은 그들을 '독고다이'라고 불렀다. 워낙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라 나쁜 뜻은 없었다.

그러니까 나도 그 독고다이 중 하나였다.

회사에서 함께 종일 일하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 회사는 여성의 비율이 높아 조직의 소속감보다는 개인 간의 유대감을 중시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맛집에 모여 회사에 대한 불만을 신나게 토로하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회사 구내식당이 있음에도 직원들은 일주일에 많게는 3-4회, 적어도 1-2회는 외부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려면 할 수도 있었고 스케줄을 어느 정도 채울 만큼의 친한 동료들이나 선후배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독고다이가 되기로 했다. 나는 외부 약속이 한 달에 3-4회를 넘지 않도록 조절했다.

대신에 나는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남는 시간에 운동을 하고 글을 썼다.

꾸준히 해 오던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고 퇴직 막판에는 점심시간에 집중적으로 글을 쓰면서 나의 새로운 욕구를 간파하고 다른 삶을 위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지인들이 늘어나고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 원칙을 세우지 않고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면 자칫 나를 잃고 남 좋은 일만 하기 쉽다. 소중한 나의 시간이 남에게 이용당 할 수 있다. 꼭 돈을 떼여야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그 사람의 신세타령 들어주는데 할애하는 것도 이용당하는 거다.

승진하기 위해 문어발식 정치를 펼치던 몇 명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자기 기준으로 회사생활 제대로 못한다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편협한 소수의 평가기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많이들 아웃사이더로서의 내 정체를 간파했을 거다.

그러다 결국 남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조기퇴직까지

그렇게 나는 끝까지 아웃사이더로 남았다.



아웃사이더로서 혼자 밥 먹고 혼자 구경하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노는 행위의 총합은 혼자서 여행하는 거다.

딱 한번 베프와 경주에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좋은 추억이다. 그 친구와 나는 톱니바퀴의 위아래 축같은 사이였기에 별로 부딪침 없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여행이 또 가능하기는 할지.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갈 때는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가족과의 여행도 그럴진대 하물며 타인과의 여행은 오죽할까?

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여행은 개인이 좋아하는 것들의 총합이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각자 비용을 냈고 기대도 크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여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화가 날 수도 있다. 해외여행 때는 더 문제다. 옵션이라는 것이 있는 해외 패키지. 다들 하겠다는데 나만 빠질 수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관심들도 없는 것 같아서 짜증 날 수도 있다.


결혼 전에 혼자서 해외 패키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가족단위의 한국인들로 이뤄진 패키지였는데 다행히 물색없이 혼자 왔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한 명 외국인 가이드가 물어보았다.

"alone?"

"yes"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 특성상 혼자서도 잘 다니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거의 그럴 일 없는 한국인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을 가이드가 보기에 신선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내게 엄지를 들어주었다.

단 한번 혼자서 했던 해외여행이었고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었지만 꼭 한번 더 혼자만의 여행을 가고 싶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이 생기면 생길수록 주변 사람들과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밀접하게 지내면 지낼수록 아웃사이더로서의 시간은 더욱 간절해지는 것 같다.

나 아닌 다른 것에 함몰되지 않도록, 다른 것에 함몰되어 나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도록, 온전히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집중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아웃사이더를 희망했고 선택했다.


여행뿐이겠는가?

혼자 하는 식사의 여유로움이나 혼자 하는 쇼핑의 효율성 같은 건 구구절절 말하지 않겠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아웃사이더.

대략 이런 이유이다. 내가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이유는.


"엄마 친구 많아?" 아이가 또 묻는다.

"아니, 엄마 친구 별로 없어. 엄마는 자발적 아웃사이더야"

"오 엄마 자발적 아웃사이더 정말 멋져. 주변에서도 다 알아. 저 사람은 참 괜찮은데 그냥 혼자 다니는 걸. 근데 진짜 웃기는 건 뭔지 알아?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혼자만 자발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야"


맞다. 간과해서는 안되는 점이다. 자신에게 집중하되 주변도 적당히 둘러보는 주변머리 정도는 챙기는 것. 그래야 진짜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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