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장례식에 참석할 때면 우리 부모님이 떠오른다.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이 모두 계신다. 다행히 네 분 모두 크게 아프지 않고 그럭저럭 지내신다.
아프면 자식들 부담이라시며 항상 조심조심 생활하신다.
언젠가 그분들도 돌아가시겠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사라지다니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슬프고 이래저래 후회될 것 같다.
2년 전에 친할머니가 97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다행히 큰 병 없이 가셨지만 90세가 넘은 후에는 수년간 요양병원에 계셔야 했다.
기력이 있을 때는 호통도 치고 서럽다고 울기도 하시더니 점 점 사람도 못 알아보고 누구라도 오면 반갑다고 아기처럼 방긋방긋 웃으셨다. 아주 하얗고 예쁜 아기 같았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시고 계속 내 이름을 부르셨다. "정이, 정이"라며
나는 할머니에게 빚이 있다. 그런데 결국 그 빚을 갚지 못하고 보내드린 것 같다.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재혼하기 전까지 할머니는 우리 남매를 3-4년 정도 키우셨다.
60대 초반의 할머니는 목소리도 카랑카랑하고 얼마나 팔팔하셨는지 모른다.
그리 다정한 분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생각해 보면 할머니 입장에서는 편히 쉬어야 할 나이에 손자녀 육아라니 참 기막힐 노릇이었겠다 싶다.
그래도 깔끔하셨던 할머니 덕에 헌 옷이라도 항상 단정하게 입고 머리카락 한 올 빠지지 않게 바짝 올려 묶고 다녔다. 어느 날 할머니가 한번 머리를 혼자 묶어보라 하시기에 반머리를 하고 싶었던 나는 신이 나서 머리카락을 반만 묶는다는 것이 마치 제대로 빗지 않아서 다 삐져나온 꼴이 되어서는 할머니에게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
평소 감상에 젖는 분이 아닌데 약주 한잔 하시면 꼭 날 붙들고 하시는 얘기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담임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시더란다.
"오늘 엄마랑 온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빠랑 온 사람?"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랑 온 사람?"
도대체 그런 건 뭐하러 물어보았는지 내가 할머니랑 온 사람 부분에서 손을 들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한참을 우셨다는 그런 이야기다.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정정하던 할머니가 그렇게 아기가 될 줄이야.
나는 어릴 적 빚을 갚지 못하고 돌아가시기 직전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은 찾아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할머니는 90세가 넘어가면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집에 있고 싶어 하셨지만 자꾸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방문 요양보호사들 사이에서는 까다롭고 별난 할머니로 소문이 나서 누구도 할머니 집에 오기 싫어했다.
자식들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자식들이 드나들기 편한 시내 근처 적당한 규모의 병원으로 정했다.
할머니의 거취를 결정하는데 할머니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점점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가던 날 그런가 보다 했을 거고 방이 배정되었을 때 그런가 보다 했을 거고 자식들이 자주 오겠다고 했을 때 그런가 보다 했겠지.
삶의 마침표를 준비하는 중요한 순간순간을 타인이 결정한다.
죽음은 출생이나 결혼, 출산보다 더 중요한 사건 아닐까?
죽은 후에는 무엇도 돌이킬 수 없다. 그냥 마지막이다.
고작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남들처럼 영정사진을 찍어두는 정도다.
정말 마지막이 다가오면 죽을 날만 기다리며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맡긴다.
서글프지 않은가?
나는 우리나라의 결혼과 장례 문화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장례문화가 더 그렇다.
결혼은 경사이고 장소 대여부터 식비, 신혼여행까지 워낙 한 번의 이벤트에 들어가는 돈이 많다 보니 십시일반 축의금도 내고 행사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장례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장례사업 번창하라고 하는 건가?
장례식장 빌리고 조문객들에게 잘 먹히지도 않는 식사 대접하고 이것저것 비싼 부대용품을 빌리는 비용이다. 정작 죽은 사람은 뒷전이고 그 자손들 제력과 명성을 과시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부의금 때문에 자녀들끼리 싸우기도 한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의식인가?
장례업자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에 가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모의 의미는 사라지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정신이 온전할 때 내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고 싶다.
이름도 장례식 말고 추억식이라고 하자.
죽은 것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와의 생전 추억을 곱씹는 자리이고 싶으니까.
예쁘게 화장하고 화사한 사진들을 많이 찍어두어야지.
영정사진은 왜 그렇게 천편일률적일까? 꼭 그렇게 증명사진처럼 가만히 앉아 찍을 필요가 있을까?
삶의 중간중간 중요한 순간들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거다.
태어나 첫돌을 거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입학과 졸업,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 그 아이들이 자라 당당한 어른이 되기까지 내가 가까이에서 좋은 부모역할을 하는 모습.
공무원으로 일하는 모습과 어쩌면 작가 데뷔작과 살면서 발간한 책들. 이름을 널리 알린 사건들.
살면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함께 나누고 싶은 순간들까지.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감사와 당부의 말을 영상으로 남기는 거다.
남편과 아이들과 선후배, 친구들, 지인들, 스승과 제자, 어쩌면 부모님까지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배우들이 짧은 시간 수상소감을 말하느라 마지막에는
"또한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꼴 나지 않도록
긴 시간 공들여 심사숙고하여 생각하고 기록해야겠다.
그래서 혹시라도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남겼을지 모르는 앙금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쓰다 보니 앞으로 죽을 때까지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유시민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의 마지막 장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유시민 작가도 장례식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시민 작가는 살아있을 때 사람들을 초대하여 축제처럼 즐기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내 마지막을 내 의지대로 하려면 살아있을 때 하는 게 맞다.
살아있을 때 할지 죽은 후에 할지는 앞으로 살면서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그런데 할 수 있을까?
추억식이 가능하려면 많은 전제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선 내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안 되고 반대로 지칠 정도로 너무 오래 살아도 안된다.
말년에도 같은 생각이어야 하고 내 뜻을 이해할 후손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소리 나오게 살아야 한다.
그래도 노인이 되어 나의 마지막을 타인이 하는 대로 하릴없이 바라보기만 하지는 말아야지.
한 편의 글의 마지막에 마침표를 꾹 눌러 찍 듯, 내 삶의 마지막 퍼즐은 내가 맞추는 거다.
그렇게 삶을 완성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