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사람을 닮았다

by 고도리작가

올해 마지막 달이 시작될 즈음, 내가 정기 기부하는 단체에서 전화가 왔었다.

고운 목소리의 그녀는 우리 단체에 기부를 해주어 감사하다, 덕분에 우리 단체가 이런 것과 저런 것까지 할 수 있었다는 긴 인사말을 하더니 막판에 이런 얘기를 덧붙인다.

"그간 기부해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5천 원만 더 기부해 주시면 안될까요?"

그녀는 너무 미안해했다.

연말 기부영수증 안내에 대한 전화겠거니 생각하고 흘려듣다가 갑작스러운 5천 원 기부 요청에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바로 그러자고 했다.


"아.. 그러시죠"

"아 그러시겠어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이번 달부터는 5천 원 추가된 3만 5천 원이 통장에서 이체될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정말 기뻐했다.

그 이유가 단체 살림에 보탬이 되어서 인지 아니면 내가 망설이지 않고 곧장 그러자고 해서 나와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이느라 진을 빼지 않아도 되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은 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일까? 아니면 단체에서 연말연시에 잠깐 고용한 사람일까?

어떤 경우이든 돈을 받고 일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거절했다 해도 어차피 그것까지 감안하여 돈을 받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고운 목소리로 장문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막판에 돈 얘기를 꺼내는 민망한 상황까지 연출하며 얻고자 한 것이 고작 5천 원이었다니...

그래서 바로 그러자고 했다. 몇만 원 더 기부해 달라거나 또는 막연하게 조금만 더 기부해달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거나 여유가 없다고 바로 거절했을 거다.

그런데 5천 원이라니... 정말 고도의 작전이 아닐 수 없다.

고운 소리의 재주를 가진 그녀가 내게 요청한 것은 5천 원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5천 원을 얻어냄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녀가 5천 원이 훨씬 넘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도리어 미안했다.



돈과 관련하여 이런 일도 있었다.

최근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들을 아빠와 함께 진행했다. 이런 일에 경험도 많고 능숙한 아빠가 있으니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중개수수료만 건네면 모두 끝나는 상황. 나는 수수료를 미리 현금으로 준비해서 가방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그냥 봉투만 건네면 되었다.


그런데 아빠가 불쑥 부동산 사장님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복비는 얼마 드리면 될까요? 계좌이체할 건데"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이미 가져왔는데...

아빠는 조금이라도 깎아보려고 했다. 부동산업자는 주민과 한번 관계를 잘 다져 계속 자기 손님으로 하려 한다는 그 업계의 흐름을 잘 읽고 있었다. 지금 잘해주면 다음번에도 또 여기서 거래할 테니 다 받지 말고 조금만 깎자는 취지이다.

부동산 사장님은 웃으면서 안된다고 하셨다. 아빠는 강하게 50만 원만 깎자고 하셨다.

부동산 사장님은 계속 웃으면서 안된다고 하셨다. 아빠는 술 한잔 사겠다면서 50만 원 깎는 겁니다~~ 하고 외치며 부동산을 나왔다.


결론이 뭐지? 나는 헷갈렸다. 사장님은 끝까지 웃으면서 안된다고 했는데 막판에는 아빠가 얘기하고 끝낸 상황이다. 그럼 아빠가 50만 원 깎은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수수료를 50만 원이나 깎았다고 생각하니 좀 창피하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나는 아빠가 깎은 50만 원 중에 30만 원을 건넸다.

애초에 이럴 심산으로 그렇게 무리하게 깎은 걸 알기에 아낀 돈 중 반 이상을 드렸다.

그렇게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돈을 깎아주고 그중 일부를 받아 용돈으로 쓰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통상 부동산 매매 후엔 법무사에게 수수료를 주고 소유권 이전등기신청을 의뢰하는데 요즘은 많이들 셀프등기를 하는 추세라 나도 이번 계약건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신청을 직접 해 보기로 했다.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공동명의라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두 배로 많았지만 찬찬히 알아보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날 하루에 구청과 은행을 거쳐 법원 등기소까지 왔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등기 접수를 하려는 참이었다.

전화가 울린다. 부동산 사장님이다.


"여보세요?"

"아 등기 끝나셨어요?"

"이제 접수하려고요. 그런데 왜요?"

"아 다른 게 아니라 복비가 50만 원 덜 들어왔기예요. 그러시면 안 돼요"


뭐지? 끝난 얘기 아니었나? 내가 잘못 판단했나?

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아빠한테 이미 30만 원 드렸는데 그럼 뭐야? 더 들어간 거잖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일단 등기접수를 끝내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급하게 끊었다.

나는 접수를 마친 후 바로 문자를 보냈다. 집에 가서 나머지 더 보내겠다고


아빠는 상황 파악을 한 것 같았다. 뭐라 그러냐고 슬쩍 묻는다.

"50만 원 더 달라는 거지. 아빠는 괜히 나서 가지고 아쉬운 소리 하고, 돈은 돈대로 쓰고, 얼굴은 얼굴대로 팔리고 이게 뭐야?"

이런 경우 아빠가 당사자라면 끝까지 술 한잔으로 끝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아빠는 미안해했다. 아빠 주머니에 들어있는 30만 원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부동산에서 나올 때 50만 원을 깎은 것이 아니었다. 그걸 나 좋을 대로 판단했다.

등기접수까지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아빠에게 수고하셨다고 용돈을 드렸어야 했는데 내가 타이밍을 잘 못 맞췄다.

등기는 처음 해 보는데 그래도 아빠가 계속 옆에서 가방이라도 들어주어 마음이 편했다.

내가 평소에 아빠한테 좀 더 용돈을 드렸어야 했다. 그럼 아빠가 그렇게 여기저기서 용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는 이번 일에 경험값을 치렀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게 생긴 30만 원은 제대로 된 값이었을까?

아빠는 하루 반나절 나와 함께 다니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사실 마음속 깊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아빠가 얼굴에 철판 깔고 부동산업자에게 했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은 부동산업자 때문에 아빠는 바보가 되었고 결정적으로 나에게 미안해했다.

돈 30만 원 때문에 아빠가 그 꼴을 당하다니 그건 안 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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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은 마법사처럼 천의 얼굴을 가진 놈이라 그 매력을 당해낼 자가 별로 없다.

돈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기도 하고 갑자기 이유 없이 내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 때문에 울기도 웃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원수가 되기도 한다.

돈 때문에 야비해지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한다. 때론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돈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돈 때문에 그 사람을 오해하기도 한다.

돈은 우리 일상의 곳곳에서 때론 천사의 모습으로 때론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돈은 붙잡고 싶을 때 잡히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도 마음을 비우면 어느 순간 내 옆에 와 있는 연인 같다.

가끔은 너무 힘이 들어 그냥 그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 대해 설렘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은 특히 돈에 대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돈의 실체에 대해 깨닫게 되는데 돈은 정말 사람을 닮았다.

내가 잘한다고 꼭 좋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열심히 산다고 꼭 돈이 많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한다고 친구들이 없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 돈도 그렇다.

삶의 충실함과 돈이 반드시 정의 상관관계를 이루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아무리 돈이 매력적이라도 특별하게 바라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돈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아주 단순하다.

친구를 잃었을 때는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돈을 잃으면 내 돈이 아닌가 보다 한다.

친구가 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돈이 생겨도 그런가 보다 한다.

돈을 잃었을 때,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그랬을까?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는 정말 바보 천치야 하거나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나에게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이제부터 나는 부자야. 이젠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 이젠 꽃길만 펼쳐지겠구나. 야호!!

이렇게 흥분하지 않는다.


돈이라는 천의 얼굴을 가진 생물의 덫에 결려 허우적거리지는 말아야겠다.

사실 살면서 돈벼락을 맞거나 폭상 망한 경험은 없다.

그러나 살면서 소소한 경험으로 돈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한 훈련을 한다.

그래야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는다.




"아빠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빠도 오늘 종일 힘들었으니 법무사 보조한 값 받았다고 생각하셔. 나도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니..."


아빠는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마트에서 잔뜩 시장을 보았는데 그 짐을 들어주었다. 아빠는 끝까지 뭐라도 해주려고 했다.

이쯤 되면 이젠 내가 미안해진다.

결론을 이렇다. 아빠한테 용돈 좀 더 드려야겠다.

그날 최후의 승자는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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