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다.
알아서 학교 가고 숙제하고 아무거나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다.
참 수월하게 자라 주는 아이가 그저 대견하고 감사할 뿐이다.
최근 아이가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어학원에 가려면 작은 길 하나를 건너야 한다. 갈 때는 내가 같이 가는데 수업이 끝날 때까지 매일 그 근처에서 서성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요즘은 아이가 혼자 다니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엄마는 뒤에서 따라갈 테니 너 혼자라고 생각하고 한번 가보라고 하니 자신 있게 걷는 모양이 제법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갈 즈음 혼자 다니는 연습을 한다.
언제까지나 엄마손 잡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학교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조금씩 생활의 반경을 넓히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 혼자 다니기.
아이가 건너야 하는 도로는 일반적인 횡단보도가 아니고 어떤 건물의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작은 도로인데 폭은 한 개 차선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신호등이 없고 자가용에서 학원차량까지 드나드는 차량이 꽤 많다.
도로 바로 앞에 작은 카페가 있어 나는 요즘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고 작은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아이를 기다린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시선은 모니터에 두어도 주차장으로 드나드는 차량들이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사람보다는 차량이 먼저인 우리나라의 이상한 교통문화 때문에 사람들은 차량이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먼저 지나가라고 기다려주는 차는 없다.
그 이유는 내 차가 먼저라서가 아니라 그냥 빨리 빼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1시간 정도 지나면 아이가 가방을 흔들면서 쫄래쫄래 도로 쪽으로 걸어온다.
움직이는 차량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하도 강조를 해서 그런지 차량 하나 없는 도로를 건너기 직전 고개를 휙휙 돌려 확인하는 모습이 귀엽다.
이미 엄마가 여기 카페에 있을 거라고 말해 두어서인지 아이는 도로를 건너기 전 고개를 쭉 내밀고 엄마가 카페에 있는지 확인한다.
안전하게 길을 건넌 아이는 나에게 영어 가방을 맡기고 '엄마 안녕'하고는 총총히 가버린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가 혼자 길 건너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았다.
열흘 정도 지난 후부터는 카페에 가기도 하고 가지 않기도 했다. 물론 아이에게는 오늘은 엄마가 카페에 있을 거야. 오늘은 카페에 없을 거야. 미리 말해 주었고
그 후에는 카페에 있었지만 오늘은 카페에 없을 거라고 말해주고 아이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건널목에 서서 한 번씩 양쪽을 살펴보고 건너는데 그 모습이 당당한 것이 혼자 다니는 것에 자신감이 붙었구나 싶었다.
처음 집에 있으면서 학원 등하원 문자를 기다릴 때는 그렇게 마음이 졸여지더니 지금은 내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아이도 어디나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젠 혼자서 편의점도 가고 문구점도 다녀오겠다고 한다.
아이는 그렇게 또 한 번의 홀로서기를 했다.
우리 마을에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집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할머니 입장이라 걱정이 많았는지 초등학교 5학년인 손자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어릴 때는 할머니 손 잡고 잘 다니던 아이가 어느덧 할머니보다 훌쩍 켜져서는 창피한 듯 배배 꼬면서 할머니 손에 끌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의 홀로서기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 온종일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기를 거치고 어린이집,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며 그 시기에 필요한 홀로서기를 한다.
엄마젖을 먹다가 이유식을 거쳐 밥을 먹고, 기저귀를 떼고 화장실에서 배변을 하고 뒤처리까지 스스로 할 수 있게 훈련을 한다.
물병을 잡는 것, 빨대를 빠는 것, 컵에 물을 마시는 것, 숟가락을 잡는 것, 젓가락질을 하는 것. 모두 홀로서기의 과정이다.
이제 아이는 혼자 다니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이의 홀로서기는 나의 홀로서기이기도 하다.
내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온 아이. 애초에는 그 존재도 몰랐던 아이.
과거의 어떤 사건 하나만 달라도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텐데 우주의 어떤 기운이 아이와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만나도 처음에는 참 낯설다. 물론 지금은 아이가 내 삶에서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지만 그 아이에게 하나씩 능력이 생길 때마다 나는 하나씩 버리는 훈련을 한다.
그래서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처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 없이도 씩씩하게 잘 살았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홀로서기를 한다.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도 아이들을 놓지 못하고 투정 부리는 할머니가 되지 않도록 매일매일 훈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