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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Oct 19. 2021

아빠의 혼자 여행

"아빠, 기차?"

"응 지금 기차. 부산 가려고. 응 응"

주무시다 깨신 건지, 몸이 아직 회복이 안 된 건지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으시다.

"아빠 좋은 거 많이 구경하시고 내가 용돈 좀 보내드릴 테니 먹고 싶은 거 사 드셔."

"그래 고맙다. 응 응"


아빠는 지금 여행 중이다. 혼자서

부산 영도, 감천마을, 울산, 경주 대충 계획은 이러하시단다.

하긴 오래 참으셨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아빠는 이번 코로나에 완전 직격탄을 맞으셨다.

좋아하는 만큼이나 끔찍이 조심하는 성격이라서 사람 조심, 장소 조심, 음식조심 한 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진짜 혹시나 만의 하나 모른다고 가까이 사는 손자 손녀 만나는 것도 극도로 조심하다 보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그래서 몸에도 이상이 온 걸까?


아빠는 추석 연휴 즈음 지독히 아프셨다.

명절 전날 엄마가 연락을 하셨다.

아빠가 아프시다고 열도 있고 몸살 기운에 입맛도 없고 얻어맞은 거처럼 온몸이 아프다 하신다고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연휴에 병원문 연 곳도 없을 텐데.

그렇게 조심하셨는데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

엄마 아빠는 겨우 당직 병원을 알아내어 주사를 한 대 맞았는데 이만저만하시다고 다행이라고 하셨다.

내 차로 모시고 싶었지만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약발도 다했는데 저녁 무렵부터 다시 아프시다고


두 분은 코로나 검사를 받으셨다. 검사받는 것보다 결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조마조마 했을 텐데

다행히 결과는 모두 음성.

다음날 아침 일찍 결과 문자를 캡처해서 사진으로 보내셨다.

혹시라도 사랑하는 자식들이 자기를 전염병 환자 취급할까 봐 얼마나 걱정하셨을지.

몸살감기에 걸리셨나 보다고, 코로나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다들 안도했다.


명절에 우리는 엄마 집에 가지 못했다. 일반 감기라도 혹시 감염되면 학교에 회사에 일이 복잡해지니 이번 명절은 쉬자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평일에 나 혼자 엄마 아빠를 만났다.

그 새 핼쑥해진 모습.

평생 운동으로 다부졌던 몸도 많이 오그라드셨다. 약간 붉은기가 돌던 얼굴은 눈에 띄게 허예졌고 검버섯도 보인다.

아빠가 이제 정말 늙어가는구나.


사람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아빠는 지하철에 일반석이 있어도 굳이 노약자석에 자리를 잡고 앉고 옆에 앉은 어르신에게 나이가 얼마냐 보기엔 이래도 내 나이가 70이 넘었다 젊음을 과시하기 좋아하셨다. 그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오랜만에 본 아빠의 모습에서 노약자석에서 얘기하던 노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아픈 직후라 그런 거겠지. 다시 운동하고 예전처럼 건강해지면 또 예전 모습 나오겠지? 생각해본다.


다행히 식사하시는 것 보니 입맛도 돌아왔나 싶게 잘 드신다. 이제 아픈 건 다 끝났나 보다. 기운만 차리시면 되겠다 그렇게 한시름 덜었나 했는데 며칠 만에 걸려온 엄마 전화

"아무래도 아빠가 코로나 우울증인가 보다. 집에 누워만 있고 잘 안 드셔서 내가 어딜 나갈 수가 없다. 어디라도 좀 다녀오시라 했는데 모르겠다. 가실지"


혼자 다니는 남자들은 청승맞아 보인다고 어딜 가든 꼭 엄마와 함께 가려고 했는데 이번은 웬일일까?

아빠는 지금 혼자 남쪽 지방으로 여행 중이시다. 부자는 아니어도 기차 여행할 정도 돈은 있으신데도 늘 돈 걱정하시는 아빠 맘 편하라고 여행비를 보내드렸다.

'아빠 요즘 우울하신가 보네. 좋은 거 많이 보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셔. 여행비 좀 보탰다고 억지도 돌아다니지는 말고 남으면 용돈 쓰시고.'

'고맙다. 맛있는 것도 먹고 잘 쓸게.'

'이제 확인했는데 많이 보냈구나. 고맙고 요긴하게 잘 쓸게. 딸 덕에 잘 먹고 잘 놀다 가야지'

아빠는 나에게 해 주신건 까맣게 잊으시고 자식들이 해주는 것은 늘 새로운 양 이렇게 좋아하신다.

잠깐의 여행이, 평소보다 조금 더 얹은 용돈이 아빠 우울증에 일시적인 효과라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아빠도 참 최선을 다하셨다.

한 달에 딱 두 번 쉬고 장사하는 나날 속에서도 딸자식 꿈이 기자 되는 거라고 그 휴일 하루를 반납하고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구와 나를 만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신 적이 있다. 나 자신은 정작 그리 진지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빠가 그걸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을 줄이야.

기약 없는 공무원수험기간 중에 학원비를 건네며 다시 한번 해보라고 용기를 준 것이 결국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긴긴 장고 끝에 16년 했던 공무원을 퇴직하고 가족에게 힘쓰기로 했을 때도 아빠는

'네가 잘 생각하고 결정했으리라 믿는다. 너는 잘하니까 가족들 잘 챙기고 잘 살아라.'

편지 한 장 건네며 나를 믿어주신 아빠

세상 어느 자식이 저 하는 꼴 생각하면 제 부모를 욕할 수 있을까?

없던 시절 그들이 최선을 다 한 만큼만 해도 성공이지 않을까?


그 아빠가 이제 많이 늙고 여기저기 아프시단다.

이번에 아프고 나니 내 죽을 곳은 마련해두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단다.

당신 부모님은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돌아가시고 나면 자식들이 다 알아서 하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아빠는 죽어서 있을 곳을 마련해 두어야겠다고. 오며 가며 자식들이 한 번씩 들를 수 있는 곳이 좋을 것 같다고


80년 가까이 살며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손자들을 보고 이젠 나라에도 가족에게도 의무보다는 보살핌을 더 필요로 하는, 이젠 서서히 죽음을 대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세상에서 부모가 한 명, 두 명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보내주신 여러 장의 사진에 씩 웃고 있는 아빠 모습이 천진하다. 한잔 하셨는지 포장마차에서 파전 한 장 앞에 두신 얼굴이 발그레하다.

부산 영도다리의 눈부신 빛과 자갈치 시장의 활기찬 힘을 받아 나이보다 젊다고 허세 부리던 아빠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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