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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Mar 07. 2022

공무원 사직 아직도 후회하지 않으세요?

선관위 동기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이번 대선에 격리자들의 사전투표 관리가 엉망이었다고 뉴스에서 연일 선관위 난타 중이다. 유권자들은 물론 후보자, 정당, 대통령까지 선관위를 향해 집중포화 중이다.

선관위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연일 매스컴을 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본선거일 당선자 공표까지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도 선관위가 온전할지 걱정이다.


관악산을 뒤로하고 홀로 외롭지만 당당히 서있는 중앙선관위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다. 

선거 때마다 직원들과 늦은 시간까지 사명감 하나로 전투적으로 일했던 곳. 몽글몽글 예전 기억이 난다.

볼 것도 없이 중앙선관위 선거과 법제과 홍보과 공보과 주요 부서 직원들은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을 거다.

선거과는 절차를 정비해야 하고 법제과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지 당장 법률 개정이 불가능하면 규칙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홍보과는 정비된 절차를 널리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고 공보과는 연일 발생하는 난타전에 대응하느라 하얗게 밤을 새우겠지. 그곳은 그런 곳이니까.


나는 임용되어 처음 구시군선관위에서 총선을 치른 후 중앙선관위 발령을 받아 한동안 일했다. 거기서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전우 같은 직원들도 생겼으니 개인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곳이다. 애초에 밥 벌어먹고 살려고 들어간 곳이 아니라 당시 지저분한 정치문화를 정화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희망했던 곳이라 더 애틋하다.

직원들은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중앙선관위는 발령내기 전에 소속 위원회 그 위 시도 위원회에 미리 다 수소문하기 때문에 평이 나쁘면 중앙에 갈 수 없다. 그럼 나도 나름 선관위 내부에서 발탁된 셈이라 감사해야 하나? 중앙에 입성하는 것은 승진을 보장받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도 물론 전입시험과 면접을 치렀지만 지금은 중앙위원회에 들어가기가 더 치열해졌다고 들었다. 


이번 사전투표 관련해서 부정선거라는 말도 나오던데 아마 그런 일은 없었을 거다.

21세기에 그런 바보 같은 짓은 불가능하거니와 선관위 자체가 공정함을 잃으면 우리는 끝이라고 여기는 고지식한 관료주의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아마도 처음으로 치르는 전국단위 선거에서 수많은 격리자 투표를 짧은 시간에 처리하느라 실수가 많았을 거다. 


중앙선관위 김세환 사무총장은 내가 당시 선거과에 있을 때 고참 사무관이었다. 내가 여성가족부로 부처 이동하기로 결정 난 즈음에 서기관으로 승진하셔서 축하드렸던 기억이 난다.

부처 이동 후에는 직접 우리 사무실로 안부전화까지 하셨다. 

능력 있고 처세에 능하고 위아래 직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 국 과장들에게도 신임이 두터웠던 분이다. 아무리 급해도 늘 차분하고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같은 부서 직원이었던 사람을 한 10년 지나 TV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으로 만나니 기분이 참 묘했다.

또한 사무차장은 당시 옆 부서 고참 사무관이었고 우리 부서와 관련된 일이 많아서 자주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 역시 무슨 사안만 발생하면 과장님이 제일 먼저 부르던 능력자였다.


생각난 김에 조직도의 각 부처 실국장, 과장들을 일일이 클릭해 보았다. 중앙선관위 근무 당시 사무관들이 실국장 자리에, 1기-2기 선배들이 각 주요 부서 과장에 포진해 있었다. 

선관위는 뿌리와 정통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즈음 시작된 공채들에 기회가 오곤 했는데 당시 공채 출신 선배들이 다들 한 자리씩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내가 다른 부처로 전입을 시도할 때도 이미 알고 있던 사안으로 당시 인사과장님이 몇 년만 기다리면 승진길 쭉쭉 열린다 그때는 승진시키고 싶어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리가 많이 난다고 나를 붙들었었다.

재외선거제도가 막 도입된 때라 정말 자리와 기회가 많이 생기던 시기였다.

나는 다 알고 있음에도 선관위의 관료주의와 여성 공무원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평가절하에 숨이 막혀 도망치듯 중앙선관위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난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중앙의 그 수많은 워커홀릭들 사이에서 숨 막히는 관료주의에 힘들어하는 직원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버티어 냈구나. 내가 이렇게 편히 숨 쉴 때 그들은 아직도 전투 중이었구나.

중앙위원회뿐인가? 대부분의 동기들은 구시군위원회 사무국장(서기관)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전방에서 몇 차례의 전투를 치른 후 다시 중앙에서 더 큰 일을 하게 될 거다. 원래 그렇다. 이렇게들 살고 있었구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워커홀릭들은 늘어났고 지금 언급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워커홀릭이었다.

중앙은 평상시에도 바쁜데 선거 때마다 몰아치는 폭풍이 어찌나 거센지 몸서리치게 무서웠다. 

그들의 성실함과 불굴의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그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실국장, 각 부서장들 익숙한 이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직급이 낮을 때는 동기들과 회사불평도 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데 이젠 그런 말 쉽게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겠다. 이젠 그런 직원들 다독여 부처를 잘 이끌고 가야 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이쯤 되면 그래 잘 나가는 선후배 동기들을 보니 후회가 되는가?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언제쯤 이 얘기를 안 할 수 있을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긴 시간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걸 견디고 지금도 견디며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그들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고 지금 그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큰 의미 아닌가?


나는 다른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이렇게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가를 반문하게 하는 사건들이 종종 생긴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누가 승진했다고 듣거나.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반추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폭포수처럼 예전 사람들을 모조리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은 그 위치에서 나는 내 위치에서 어느덧 폭풍은 지나가고 어느 정도 마음을 다졌을 테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후회하지 않고 다시 그 상황이 된다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아직도 폭풍에 휘둘리는 동기들이 있다면 그건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법륜스님 말씀을 빌자면 선택에는 잘한 선택, 못한 선택이란 없단다.

그저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다 하느냐가 있을 뿐이란다.

나는 명예와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엄마의 역할에 더 충실하고 좀 더 여유롭고 안락하게 살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시기상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과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가정에서의 내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사직할 때 후회할까 봐 두려웠던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앞으로 살면서 몇 번 더 내 선택을 반추할 일이 또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들 앞에서 후회할 날이 있기도 할까? 

이 정도 되면 이젠 어느 정도 다 정리되고 결정 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고 이 브런치의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 구독을 신청하고 많은 응원을 보내준 요인이기도 하고 또 여전히 궁금해하는 후보 공무원들의 '공무원 사직을 후회하지 않는가'에 대한 나의 마지막 답안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


다만, 나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사직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들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쉬어갈지언정 포기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반성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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