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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Apr 22. 2022

박사학위 소유자는 왜 프리랜서 지식인이 되려고 하는가

아니면 비주류 연구자 라든가... 




내가 진지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자각할 때쯤부터 여성의 삶에 언제나 관심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여자로서의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자로서의 엄마의 인생은 어떤가, 내 여자인 친구들은 어떤 삶을 사는가, 또 여성으로 태어난 사회의 리더들은 어떤 것을 경험했는가. 



박사과정 2년차에 접어들 무렵 들었던 코스웍 수업 중에 나는 인생 책을 만나게 되었고, 그 책을 토대로 나의 박사 연구를 진행해갔다. 여성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연구,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연구였지만 막상 학계의 분위기는 무관심 그 자체였다. 교수님들도 다들 비공식적으로는 관심을 표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학계의 분위기가 이 세계에서의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비공식적으로는 인정받을지 모르나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엔 좀, 그런, 어떠한 위치. 내가 감명받았던 몇몇 여성 학자들이 있었다. 너무나 놀랐던 것은 그들의 환경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에겐 마치 연예인같은 그런 명저서를 써낸 여성 학자들도 별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좋은 대우를 받고자 함이 아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내게 현실감각을 깨우쳐 주었고, 학계와 대중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대중을 선택하겠다라는 어떠한 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었다. 학계란 정말 좁은 세계다. 다행히 운이 좋아 난 여성 연구를 하시는 지도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 교수님조차 하고 싶은 연구를 맘껏 하지 못하시고 실적을 위한 연구, 남이 은연중에 제시해주는 그런 연구를 하셔야만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학계는 내 마음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누가 뭐래도 난 하기 싫은 연구, 실적을 위한 연구를 억지로 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주류 페미니즘 연구자도 아니다.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싫어 자연스럽게 비주류 연구자로서의 삶으로 다가서게 되었다. 



나의 반골 기질일수도 있다. 주류 학계에 진입하려면 으레 해야하는 것들이 싫었다. 딸을 낳고 나의 최대 관심사는 내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되었다. 교수라는 포지션이 주는 무게와 파워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그런 것들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고도 많은 이들과 연결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또 나름대로의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듯 싶다. 개인적 명예는 필요없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또 딸을 낳지 않았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겐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책상앞 연구보다 중요하고, 실용적 대화가 학문적 대화보다 더 필요하다. 어쩌면 내 그릇이 거기까지인지도 모르겠다. 뭐 그럼 어때, 인생은 짧고 난 내가 하고싶은 걸 해야겠다는데.  



프리랜서 지식인이든 비주류 연구자든,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가다 보면, 길은 나올 것이다. 내가 어느 길에 서 있든 끊임없이 쓰고, 생각하고, 나누고, 경험하고, 공감하고, 발견하고, 살아간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간다면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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