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거룩한 반복
딸이 떠난 이후,
스튜디오는 더 조용해졌다.
그전에도 조용했지만
그날 이후의 고요는
어떤 여운이 남아 있는 듯한 조용함이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누가 있었던 자리,
찻잔의 따뜻함이 아직 식지 않은 그 감각.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회원이 아무도 오지 않는 날에도.
그리고 혼자,
내 바레를 시작했다.
나는 어떤 동작들을 반복했을까.
엉덩이를 조이는 동작.
등을 곧게 펴는 정렬.
골반을 말아 넣는 짧고 정확한 움직임.
거울 앞에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뜨는 연습.
누군가 보기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흉내 내는 것’ 같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그건 흉내가 아니라 기도였다.
아무도 없을 때도
내가 나를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레의 핵심이었다.
움직임은 내게 언제나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관객, 회원, 딸...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르치기 위해,
남기기 위해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남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반복이라는 건
결국 나를 다듬는 일이다.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무너졌는지,
오늘은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는지를
몸으로 먼저 알아차리는 일.
스튜디오엔 음악도 없었다.
시간도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내가,
하루에 딱 50분 정도,
움직임이라는 언어로
나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간.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엉덩이 조이기 하나만 했다.
어떤 날은
거울 속 눈빛만 따라가다가
동작은 한 번도 못한 채
그대로 의자에 앉아 울었다.
그 날의 울음은
수련보다 더 깊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도 나는
“오늘의 바레는 끝났다”고 적었다.
반복은 완성을 위한 게 아니다.
반복은 나를 잊지 않기 위한 루틴이다.
그녀가 없고,
수업도 없고,
계획도 사라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잊지 않기 위해
움직임 하나를 매일 꺼내 들었다.
그건 나를 구한 동작들이었고,
이제는 더 이상 남을 위해 증명할 필요 없는
나만의 거룩한 반복이었다.
#운동 #바레 #로테버크 #스튜디오 #반복 #허리디스크 #회복 #감정 #움직임 #마음챙김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