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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Nov 21. 2022

오랜 친구를 손절한 건에 관하여

그동안 고마웠고 미안하다


며칠 전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단짝 친구를 손절했다


같은 반이었고 이름이 같은 것을 계기로 우리는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다

나는 상대가 누구든 무던하게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타입이었는데, 친구는 하도 개성이 뚜렷해서 또라이라고 극혐 하는 부류와 매력 있다고 사랑에 빠지는 부류로 나뉘는 극한의 호불호가 있는 타입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든지 말든지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친구가 너무 멋져 보였고, 넘치는 잡지식과 독특한 개그 코드로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함께 술을 마시고 클럽에 다니는 나의 몇 안 되는 일탈 버디 중 하나였고, 친구와 함께 있으면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으면서 내 밑바닥을 모두 보여줘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무척이나 좋아하던 친구를 갑자기 손절하게 된 이유는, 내가 미국으로 꽤 오랜 시간 떠났다가 돌아오면서 그동안 친구에 대해 애써 무시해오던 것들이 확연히 눈에 뜨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친구는 웬만한 기자들 뺨치게 온갖 모든 세상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듣기에 재미는 있었지만 그만큼 남 얘기를 즐겨했고, 특히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까내리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하니까 분명 어디 가서 내 이야기도 이렇게 할 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두 번째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만난 날 내가 영영 들어오게 된 거라고 하자,

“아쉽다. 내가 너 성공하면 등쳐먹으려고 했는데!“

왠지 듣는 순간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친구는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재산을 얼마나 불려줬는지를 이야기하며 자기가 하라는 대로 추천하는 종목에 투자를 하라는 권유를 하루 종일 했다.

돈을 받고 주식 투자를 대행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나를 대상으로 연습을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시키는 대로 투자했다가 돈을 잃으면 ‘왜 나한테 XX이야. 믿은 니가 XX이지’ 하는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날 이후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유를 하며 같은 권유를 여러 번 했지만, 친구와 돈으로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내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강요하는 모습에 ‘나를 정녕 호구로 보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다.


내가 아무리 밑바닥까지 보여줬다지만 이 정도로 멍청하게 보였나?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 친구를 그동안 나는 그렇게 좋아한 건가?


내가 끔찍이도 아끼던 친구들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을 나중에 깨닫고 현타가 온 일이 몇 번 있었다.

내 촉(gut feeling)이 이번에도 도망가라는 사인을 보냈고 이번에는 무시하지 않았다.


마지막 계기로 며칠 전 친구가 내게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무리의 단체 사진이었다.


“중간에 있는 쟤 죽었어 ㅠㅠ”


나는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친구에게 이름만 종종 전해 듣던 사람인데, 이 끔찍한 소식을 내게 왜 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래 이해하기를 포기한 친구였지만,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행동을 할 모습을 상상하니 이제는 내가 지구상에 없어지기 전까지 이 친구를 두 번 다시 안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관심이 없으면 굳이 손절까지 할 필요 없이 오는 연락만 받아주면 되는데, 많이 좋아했던 친구라 오히려 화가 더 많이 나고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손절도 내 마음의 입지를 많이 차지하는 사람한테 하는 거구나. 애증이 커지니 내 마음이 힘들어져서 포기하게 되는구나.


나에 대해 연인보다 많은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소중한 사람과 헤어진 기분마저 들지만,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과는 헤어지는 게 맞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최근, 나는 앞으로 인생에서 더욱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다만 내가 오해를 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은 변한다고 믿는 데다 내 친구는 똑똑해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기분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기다려 줄 용기와 인내심이 아직 나에게 없는 것이 변명 아닌 변명이다.


먼 훗날 언젠가 우리가 우연히 마주쳐서 허심탄회하게 그때는 그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때까지 친구와 내가 각자 서로의 자리에서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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